지구별 안내자

뒷산에 올라가야겠다. 머릿속이 복잡하기도 하고 기분도 꿀꿀하고 여러모로 몸과 마음이 개운하지 않다. 집에서 가까운 뒷산(언덕)이 있어서 기분전환을 위해서 가끔 오른다. 이런 기분일 때는 혼자 가면 좋겠지만 오늘은 신랑이 휴일인데 도 출근을 해서 아이 둘을 데리고 가야 한다. 복잡한 머릿속이 정리될지 모르겠지만 우선 챙기고 나선다. 아이들과 나가는 길은 항상 준비물이 많다. 물과 음료들을 챙기고, 간식도 필수다. 다행히 김밥은 전화로 주문하고 매장에서 픽업을 했다.


요새 드는 생각은 역시 나는 결혼과 육아가 맞지 않는 사람이구나를 너무 늦게 알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결혼생활을 하기 너무 모난 사람이거나 성격 파탄이거나 한 거 아니다(이거 내 생각이니?? 허즈번드 소환해야 하나? 각 상황에 각각의 이유가 있을 뿐이다.ㅎㅎ), 또 아이들에게 이상한 엄마도 아니다(아이들이 나를 너무 좋아하는 걸로 봐서는 그렇지 않을까?)


그저 결혼과 육아가 버겁고 힘겹다. 정신적으로 고갈되는 느낌인데 이 고갈을 채우는 방법을 아직 못 찾은 것 같다. 내 옷이 아닌 다른 옷을 입은 것처럼 아무리 다시 옷매무새를 가다듬어도 딱 맞아지지가 않는다. 사실 결혼과 육아가 내 체질이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그냥 누구나 하는 결혼과 육아를 너만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종의 자만심이었다. 남들 다하는데... 나라고?? 그러나 이런 오만함이 지금에서야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넌 외국 나가서 외국인이랑 연애하면서 살아,
한국에서 결혼하고 살기 힘들어~
결혼은 너랑 어울리지 않아.
자유롭게 살아.



이 말이 그 당시엔 내가 적응력이 없고 부족하다는 이야기인가? 그 당시엔 남들이 하는 이야기에 색안경을 끼고 듣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보니 그냥 나의 자유로운 성향에 제도의 답답함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이야기한 거다. 나는 반면에 결혼과 육아라는 제도에 편입되면 평범한 삶을 사는 것으로 보일 거라 생각했고,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고 덤빈 거다.


아이들은 너무 예쁘다. 그렇다고 나의 힘듦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리가 무거운데 아이들은 나의 심란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조잘거리며 쫓아온다. 머리를 맑게 하기 위해 산행을 선택했는데 결과는 참담하다. 가는 길에 우리 묵언 수행을 하면서 가자고 제안해 보지만 씨알도 안 먹힌다.


둘이 얘기 하면 좋으련만… ㅎㅎㅎㅎ 둘 다 나한테 질문을 쏟아낸다. 질문에 답을 해주다 지쳐서 쉬는 타임을 가지기도 하고, 쏟아지는 질문에 좀 쉬었다 대답하겠다고 화를 내보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나의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결국 산에 오르고 김밥을 먹고 간식을 먹고 그 사이 음료를 먹는 과정에도 나의 귀는 단 1초도 쉬는 시간이 없다.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는 느낌이다. 아니 아예 먹통이 되어버렸다.


에라이…. 오늘의 산행은 글러먹었다. 정리되기는커녕 그냥 땀범벅이다.

그렇게 산의 내리막길로 들어선다. 이젠 달래고 어르고 할 이유도 없어졌다. 그냥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성심성의껏 대답하는 것이 속이 편했다. 내리막 길에는 오르막 위치에서 볼 수 없었던 잔잔한 계란 꽃과 각종 들꽃들이 피어 있다. 아이들은 들꽃을 한가득 뽑아(?) 뿌리 채 선물해줬다. 웃음이 나기도 했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엄마 선물이라며 노래를 부르며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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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포자기해서 그런지 이제는 질문을 듣는 것이 좀 덜 괴로웠다. 질문의 늪 같았던 산행이었는데 의외로 아이들과 몰입하여 대화하기 시작하자 어느 순간 머릿속이 맑아진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 그 문제에 몰입해서 고민하는 것보다 그 고민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지니 문제의 크기가 훨씬 줄어드는 것 같았다. 실로 뭐가 문제인지도 정확히 몰랐다. 문제 해결을 위한 쓸데없는 걱정이나 불안감을 이고 지고 만들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자주 하나님에게 물어본다. 왜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까? 매일매일 내가 잘해나갈 수 있을까? 나에게 이처럼 어울리지 않은 옷이라는 걸 하나님은 알지 못하셨을까? 감당할 만큼의 일들만 일어난다는 성경구절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매일이 버거운지...


이런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아마 아이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와 가슴에 스미듯 올라온다. 내 성격상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참 무심했을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과 애정을 가질 이유도 없고, 누군가의 아픔을 공감하기도 어려웠을 것 같다. 또 참을성과 기다림이라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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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돕는 안내자인가? 오늘 하루 끊임없는 질문의 늪에도 불구하고 새삼 아이들에게 고마워진다.


나는 그렇게 아이들로부터 도움을 받아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구나…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나에게 세상 사는 법을 다시 한번 하나씩 가르쳐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한 명으로는 내 자유로움과 이해력을 잠재우기에 부족해서 두 명이나 보내주셨나 보다. 두 명의 케어를 받으면서 다시 세상 사는 법을 익히는 시기인가 보다. 아이들로부터 그렇게 나는 물들어가고 있다.


Thank you for 지구별 안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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