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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주치의 Apr 17. 2019

19.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그래... (1)

Epi.05. 강박, 육아, 아빠, 불안, 두려움, 부모,

"아빠도 아빠가 처음인디... 우리 딸이 아빠 좀 봐줘."                 응답하라 1988 中


민혁 씨는 그동안 누구에게도 내어놓지 못하고 그저 내면에 억압했던 감정들을 쉴 새 없이 쏟아냈다. 그는 그간 얼마나 힘들었을까.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을 안고서 뛰어가던 민혁 씨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민혁 씨는 자신의 잘못을 곱씹으며 수년간 자신을 고통 속에서 살게 하고 있었다. 아버지로서 자신은 낙제점이라고, 자신 같은 아버지를 둔 아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아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자신이 수많은 쇠사슬에 묶인 채로 사는 것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들이 자신처럼 쇠사슬에 묶인 채로 살 것 같은 불안이 다시 그를 덮쳤다. 자신을 용서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 또다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었다. 그 정도 했으면 이제 그만 자신을 용서해주면 안 되는 걸까.


'저도 당신도 아빠가 처음이었잖아요... 처음인데 우리가 어떻게 다 잘할 수 있었겠어요.'


아빠로서의 나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침묵하는 민혁 씨. 그리고 나는 입을 열었다.


Dr: “지금껏 자신을 비난하며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채 말이죠.”


민혁: “... 지금도 아들을 들고 뛰어가는 동안 숨쉬기 힘들어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아들 얼굴이 눈앞에 선해요. 선생님. 아이는 엄마가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까 자지러지며 울 수도 있는 건데 저는 왜 그랬을까요?”


Dr: “왜 그랬을까요? 이유가 있었겠죠.”


민혁: “... 저는 아들이 너무 자지러지며 우니까 뭔가 잘못되는 거 아닐까 두려웠어요. 3시간도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저 자신에게 화도 났고요. 아들을 달래기 위해 모든 걸 다 해봐도 왜 울음을 그치지 않는지 너무 답답했어요.”


Dr: “민혁 씨는 자지러지며 우는 아들이 잘못될까 두려웠고,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들을 보며 답답했었네요. 그리고 아들을 잘 달래지 못하는 자신에게도 화가 났고요.”


민혁: “... 네.”


Dr: “아들이 잘못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 공포, 그리고 아들을 달래주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분노... 이런 감정들이 결국 터진 거 아닐까요?”


민혁: “... 그래도 어떻게 아이 목을 졸라서라도 울음을 그치게 하고 싶은 생각을 했을까요? 정말 부끄럽습니다.”


Dr: “저는 민혁 씨가 그만큼 어찌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던 것 같은데요.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 그렇게 큰 잘못인가요?”


민혁: “... 잘못이 아닌가요? 아이 아빠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죠?”


Dr: “물론 도의적인 차원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이해해요. 하지만 이것이 민혁 씨가 수년간 곱씹을 정도로 아들에게 잘못한 것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싶어요.”


민혁 씨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 민혁 씨는 자신이 아들 목을 졸라서라도 울지 않게 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는데 대체 어떻게 잘못이 아닐 수 있다고 하는 거냐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인 후 다시 말을 이어갔다.


Dr: “예를 들어서 수일 동안 돈이 없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배가 고픈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빵집을 지나가며 빵을 훔쳐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비난하고 잘못을 물어야 하나요?”


민혁: “... 그건 아니겠.”


Dr: “그렇죠.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떠오르는 충동 또는 생각은 우리가 통제할  없으니까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행동이에요. 생각이 아니고요. 만약 민혁 씨가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고 아들의 목을 실제로 졸랐다면 그것은 아동학대고요. 죄를 지은 것이고 그에 대한 처벌도 받아야겠죠. 그런데 아들은 수 십분 째 자지러지듯이 울고, 자신은 아들이 울다가 저대로 실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상황에서 민혁 씨가 느끼는 무력감은 급격히 커졌을 것이고요. 아들의 고통에 무력한 상황에서 목이라도 졸라서 울음을 그치게 하고 싶은 충동적인 생각이 들었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일까요? 물론 도의적인 차원에서 민혁 씨가 힘들 수는 있지만 그런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는 이유로 세상에 다시없는 파렴치한 아빠로 자신을 인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민혁 씨. 생각은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은 죄가 아닌 것입니다. 당시 상황이 그러했을 뿐인 거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건 행동밖에 없다. 생각은 통제할 수 없다. 그런데도 민혁 씨의 표정은 여전히 어둡다. 사실 그는 생각뿐만 아니라 행동까지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혁: “... 그런데 저는 행동도 했는데요. 아들을 분유로 달래려고 했는데 분유도 안 먹고 뒤로 자꾸 고개를 넘기며 자지러지는 아들을 보며 순간적으로 팔에 힘을 주고 억지로 먹였어요. 제가 알아요. 순간적으로 제가 짜증이 났었다는 걸요. 그렇게 억지로 먹이다가 아들은 토하고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잖아요. 저는 제가 한 짓을 안다고요. 선생님.”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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