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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Jun 20. 2024

알 수 없는 조 과장

조 과장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1년에 몇 개월씩 외국에서 떠돌아야 하는 S사에서 도망쳐 나와서 세 번째 회사로 이직을 했다. 세 번째 회사는 미국 회사였고 나의 직책은 프리세일즈였다. 세 번째 회사는 미국 본사 규모도 작았지만 한국 지사는 직원이 겨우 4명이고 제대로 된 사무실조차 없었다. 직원 수가 만 명이 넘는 큰 회사만 다녔던 나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운 도전이었.


아내가 일 년 내내 해외에서 떠도니 남편이 팔을 걷고 나서서 일자리를 알아봤다. 그 시절 어린아이가 있는 워킹맘은 헤드헌터를 통해서는 인터뷰조차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의 지인의 지인을 통해 세 번째 회사를 소개받았다. 회사 이름도 처음 들어보고 사무실이 없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지만 남편의 권유에 떠밀려서 무작정 이직을 했다. 그런데 출근을 하고 나서 보니 회사에 없는 것은 사무실만이 아니었다. 상식대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세 번째 회사에서 나는 조 과장을 처음 만났다.


조 과장은 나와 같은 프리세일즈 엔지니어 일하고 있었다. 그는 몇 개월 전에 입사했지만 나보다 두 살 어렸고 이곳이 첫 직장이라고 했다. 이십 대 중반의 신입 사원 과장이라니, 너무 이상했지만 조 과장의 채용 과정은 더 기이했다.


조 과장은 사에서 후원소프트웨어 경진대회에서 수상을 했고 이를 계기로 입사하게 되었다고 했다. 듣보잡 경진대회에서 상을 탔다고 아무 경력도 없는 사람을 과장으로 채용하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몇 주 동안 회사가 돌아가는 꼴을 지켜보고 나니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지사장은 회사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사무실 안에서 줄담배를 피다가 점심때쯤 외근을 간다고 사라졌고 다음 날 아침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부잣집 딸과 결혼을 해서 데릴사위로 살고 있는데 극성스러운 와이프와 장모를 피하기 위해 회사를 다닌다고 했다. 그런 지사장에게 프리세일즈 2명을 뽑으라는 지사가 떨어졌고 그의 눈앞 수상자 명단에 있었던 조 과장을 채용한 것이다. 채용 공고를 내고 인터뷰를 하는 것이 귀찮았던 지사장은  사람, 조 과장을 인터뷰한 후 그를 채용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지인의 소개를 통해 이력서를 전달받은 나를 채용했다.


지사장이 회사 일에 관심이 없으니 마케팅 한 명, 프리세일즈 두 명으로 구성된 직원들은 각자 알아서 일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수년 동안 비즈니스를 이끌어 온 탄탄한 총판사가 있었고 한국에서 이미 안정적인 매출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는 문제없이 굴러가고 있었다. 마케팅과 프리세일즈만 잘하면 영업적인 부분은 총판에서 실행했기 때문에 지사장의 무관심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직원 수가 겨우 4명인데 프리세일즈를 2명이나 채용한 것만 봐도 이 회사에서 프리세일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짐작할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외국 기업의 프라세일즈로 일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능력이 몇 가지 있다.


 1. 영어 : 외국 기업에서는 모든 의사소통이 본사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이루어진다. 우리 회사 본사는 미국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이 영어로 이루어졌고 영어 읽기, 쓰기 능력은 반드시 필요했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이메일을 본사와 주고받아야 했기에 영어 읽기와 쓰기 능력은 필수였다. 스피킹까지 잘하면 좋겠지만 스피킹은 필수 요건까지는 아니었다.


2. 기술 : 프리세일즈도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프로그래밍, 시스템 아키텍처 등 기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 다양한 고객사를 만나고 고객의 니즈에 맞춰 자사의 제품을 제안하려면 시스템과 아키텍처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3.  OA : 직장인에게 문서 작업 등의 기본 업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무 능력도 필요하다. 특히 규모가 작은 다국적 기업의 지사에는 HR, 회계 등의 지원 부서가 없기 때문에 경비 보고서 작성, 장비 구매 요청서 등의 부가적인 업무까지 혼자서 처리해야 한다. 따라서 문서를 작성한다던지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의 기본 OA 능력도 매우 중요하다.


신입 사원인 조 과장은 위 세 가지 요건 중 그 어느 능력도 갖추지 못한 채 과장으로 채용이 되었다. 그리고 직원 수가 겨우 4명이었던 지사에서 그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반적으로 직원 수와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업무 량은 반비례하기 때문에 다들 자신의 업무만도 벅차서 조 과장을 도울 여력이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조 과장은 혼란 속에 있었을 것 같다. 조 과장은 본사에서 영어로 전달되는 이메일과 문서를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체 프리세일즈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덜컥 과장으로 채용이 되었다. 영문과를 나온 조 과장에게 제안서도 쓰고 고객 미팅도 하고 세미나도 하고 잡지에 글도 기고하라고 하니 그는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면 처음부터 다시 채우면 된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거나 신입 사원으로 한걸음 한걸음 단계를 밟아가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 과장은 잘못된 선택을 했다. 그는 자신이 이 회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 그리고 할 수 있는 일만 골라서 하기로 했다.


당시 우리 회사의 제품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어서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많은 사람들이 사용법을 배우고 싶어 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상파 방송에서 TV 강연을 요청했고 조 과장은 이것을 수락했다. 방송 강의는 초급자를 대상이었기 때문에 경진대회를 준비할 때 공부한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강의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TV에 나오니 출세했다며 추켜세워주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쭐해진 조 과장은 다른 일은 다 제쳐두고 방송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회사에서 시키는 모든 일은 방송을 핑계로 미루고 또 미뤘다. 일반적인 회사라면 이런 일은 불가능했겠지만 당시 우리 회사는 상식이 통하는 회사가 아니었다. 만행을 규제해야 하는 지사장이 회사에 관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조 과장은 2년 넘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회사를 다녔다.


그러나 태평성대는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본사에서 지사장의 업무 태만을 눈치채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지사장이 해고되었다. 그리고 새로 부임한 지사장은 첫 미팅에서 바로 조 과장이 이상하다는 것을 파악했다. 지사장은 조 과장의 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3개월 동안 다양한 업무를 지시했고 그는 그 어느 하나도 수행하지 못했다. 자신의 위태로움을 느낀 조 과장은 눈치를 보며 지사장을 피해 다녔다. 회의를 할 때마다 지사장은 조 과장의 무능함을 지적했고 직원들도 조 과장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껄끄러운 관계가 지속되던 어느 날, 조 과장은 유학을 간다며 회사를 떠났다.


이십 년도 넘는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나는 조 과장을 잊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무능하고 부족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영어를 못해서 회사에서 보낸 이메일과 기술 자료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푸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당시 나도 외국 회사에서 일해본 경험이 많지 않아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조 과장이 영어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온라인 영어 강의나 교재를 그에게 추천해 주었지만 그와 함께 일하는 2년 내내 한 번도 그가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는 결혼을 일찍 했고 아이가 있어서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대기도 했고 외벌이라 돈이 없어서 학원을 다니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회사에서 반드시 필요한 능력을 배우기 위한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그의 말은 그저 궁색한 변명으로 들렸다.


무능을 개선하기 위한 시간과 여유가 없다면 그곳에서 내려왔어야 하는데 조 과장은 가진 것은 놓지 않았다. 영어를 못해서 힘들다고 푸념했지만 영어 공부는 하지 않았다. 문과라 기술을 모른다고 호소했지만 기술 공부도 하지 않았다.


대체 그가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나는 여전히 그를 이해할 수 없다. 그가 처음으로 경험한 외국 회사는 마치 명품 같았을 것이다. 높은 연봉, 자유로운 출퇴근, 방송 출연과 책 출판의 기회까지 주어졌으니 그는 그 자리를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업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그 자리를 지키야만 했을까? 모든 것을 누리고 싶다면 적어도 노력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고 회사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을까?  


이십여 년이 지난 후 서점에서 우연히 조 과장의 책발견했다. 그는 여전히 책을 내고 방송 출연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과거를 아는 나는 그의 글도, 그의 책도, 그의 방송도 모두 신뢰할 수 없었다.

서점에 버젓이 진열되어 있는 그의 책을 산 사람들을 위해 부디 과장이 이전과 달라졌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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