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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May 17. 2024

이 구역의 미친 X, 황 부장

황 부장은 한마디로 이 구역의 미친 X이었다.


황 부장은 회사 내의 그 어느 누구와도 사적인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혼자였으며 점심시간이 되면 연기처럼 사라졌다. 동료들은 대체 그가 점심을 어디서 먹는지, 누구와 점심을 먹는지 궁금했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5년 넘게 그와 같이 일한 직원들조차 그가 어디에 사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취미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황 부장은 회의에는 꼬박꼬박 참석했지만 회식이나 워크숍 같은 행사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고 오지 않았다. 서로 같은 회사에서 일했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처럼 그는 다른 사람들과 섞이지 않고 지냈다. 그리고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이상한 기운 때문에 직원들 또한 그를 가까이하려 들지 않았다.


사회생활은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은 황 부장의  담당 업무는 라이선스 컨설팅이었다. 라이선스 컨설팅은 회사의 제품을 불법으로 사용하는 고객에게 적절한 라이선스를 구매하도록 제안을 하는 업무로 좋게 포장하면 컨설팅이지만 불법 소프트웨어 단속이 주 업무였다. 불법으로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고객을 찾아가서 라이선스를 구매하도록 하는 일, 그것이 황 부장의 업무였다.


직원 수가 스무 명 남짓한 외국 회사 지사에서 라이선스 컨설턴트는 황 부장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모두에게 생소한 라이선스 컨설팅에 대한 업무 지침이 제대로 존재할 리 없었다. 물론 본사에서 만든 가이드라인이 있었지만 소프트웨어 불법 사용에 대한 법률적 해석은 나라마다 다르고 취할 수 있는 조치도 법에 따라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에 컨설턴트가 알아서 처리해야 할 업무 비중이 높았다. 그 아슬아슬한 틈새를 파고 들어서 황 부장은 자신의 똘끼를 200% 발휘하고 있었다.


직원들이 황 부장을 피하게 된 것은 그가 고객과 통화하는 내용을 들은 이후부터였다. 황 부장은 라이선스 불법 사용을 통보하면서 절대 언성을 높이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상대방은 점점 더 언성을 높이고 화를 내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황 부장이 나긋한 목소리로 조근조근 고객을 협박하면 어떤 고객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어떤 고객은 화를 내면서 수화기를 집어던지기도 했다. 황 부장은 항상 회의실이 아닌 뻥 뚫린 사무실 한복판에서 고객과 통화를 했기에 직원들은 그가 어떻게 일하는지, 어떻게 해마다 200% 넘는 실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황 부장의 협박은 언제나 먹혀들었다. 그는 고객이 빠져나올 수 없도록 불법 사용에 대한 모든 자료를 수집한 후 전화를 걸었다. 빠져나올 수 없는 그물에 가둔 후 고객사를 조근조근 협박했다. 그는 항상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서만 연락을 했고 절대 고객을 만나지 않았다. 고객사가 만나자고 사정을 하거나 윽박을 질러도 황 부장은 절대 응하지 없었다. 황 부장이 일하던 시절은 기업의 소프트웨어 불법 사용에 대한 인지가 부족하던 시절이라 대부분의 기업은 법무팀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협박은 항상 먹혔다. 코너에 몰린 고객은 필요한 라이선스보다 훨씬 많은 양의 라이선스를 구매했고 그렇게 그는 해마다 200% 넘는 실적을 달성했다.


황 부장은 집요하고 치밀했다. 그리고 라이선스 컨설팅은 황 부장의 적성에 딱 맞았다. 한번 타깃으로 정한 고객은 절대 포기하는 법이 없었고 몇 년 동안 최고의 실적을 달성하고 보너스까지 두둑하게 챙기고 나면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 단속을 하고 때로는 고객과 싸워야 라이선스 컨설팅이라는 직책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에 황 부장은 언제든지 마음에 드는 회사로 이직할 수 있었다. 그는 회사를 옮겨서 같은 업무를 반복했다. 어떤 고객사는 다른 회사로 옮겨서 다시 그를 협박하기 시작하는 황 부장의 전화 목소리를 듣고 기겁을 했다고 한다. 이미 황 부장의 집요함에 당해 본 고객에게 그의 두 번째 협박은 훨씬 잘 먹혔다. 그는 라이선스 컨설팅 업계에서 승승장구하며 승진을 거듭했다.

 

세월이 흘려서 기업들도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 근절하고 혹시 모를 법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자체 법무 팀까지 갖추게 되자 황 부장이 할 일은 사라졌다. 이제 소프트웨서 회사의 라이선스 컨설팅 부서는 정말 컨설팅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원했다. 협박과 폭언이 장기인 황 부장은 더 이상 라이선스 컨설팅 적임자가 아니었다.


그렇게 그는 IT 업계에게 사라졌다. 몇 년 전 고객사를 방문했을 때 대체 황 부장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보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고객은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황 부장의 전화 목소리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황 부장은 지금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그는 어딘가에서 비슷한 짓을 하고 있을 것이다. 회사에는 항상 또라이가 필요하고 그는 귀신같이 그것을 찾아낼 테니까.




이 일은 십여 년 전에 일어난 일이고 라이선스 컨설팅이라는 이름으로 불법 소프트웨어 단속을 하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이니 라이선스 컨설팅이라는 직업에 대한 오해가 없기 바랍니다. 이제는 라이선스 컨설팅 업무 지침이 잘 정리되어 있고 대부분의 회사에서 체계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표지 이미지는 AI 이미지 생성 기술을 사용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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