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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Aug 28. 2022

난공불락 공 부장

공 부장은 유년시절을 외국에서 보냈다.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3~4년에 한 번씩 이 나라 저 나라를 옮겨 다니며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남들 눈에는 부러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유년기의 공 부장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어를 겨우 배워서 프랑스에서 친구를 사귈 만하면 이탈리아로 떠났고 이탈리아에 적응할 만하면 또 다른 나라로 떠나야 했다. 의사소통이 안 되니 친구도 제대로 사귈 수 없었고 학창 시절 내내 외톨이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면서 살다가 성인이 되어 버린 공 부장은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해졌다. 어차피 몇 년 후에 떠나게 될 나라이니 애써서 적응하려 하지 않았고 혼자만의 세상에서 조용히 지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그는 홀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나라에서는 자신을 받아주고 환대해 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가끔씩 여행으로 방문했던 한국과 정착지로서의 한국은 너무나 달랐다. 한국에 오면 당장 취업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한국어가 서툰 그를 받아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부모님에게 큰 소리를 치고 한국으로 왔기에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는 닥치는 대로 이 일 저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 나갔다.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통번역이었고 통역사 경력이 쌓이면서 D사의 계약직 통역사로 채용이 되었다. 그의 업무는 영어가 서툰 한국 지사 직원들과 본사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것이었다. 이메일을 영어로 번역해 주는 일부터 본사 직원이 한국에 방문했을 때 통역을 해주는 업무까지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다가 D사가 한국의 고객사와 계약을 체결하게 되면서 공 부장도 정규 직원이 되었다. 고객사에서 전달된 요구사항을 영어로 번역하여 정기적으로 본사에 전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통역사는 정규 직원으로 채용될 수 없었기에 공 부장의 비즈니스 타이틀은 비즈니스 디벨롭 매니저(Business Develop Manager)로 정해졌다. 하는 일과 비즈니스 타이틀은 달랐지만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게 되고 한국에 정착하게 되어서 공 부장은 매우 만족해했다. 수년간의 외국 생활로 인해 한국 사람도 아니고 외국 사람도 아닌 그는 한국에서조차 친구를 사귈  없었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더 이상 이 나라 저 나라로 떠돌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렇게 통번역 일을 하면서 공 부장은 첫 직장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10여 년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 인원 감축 공지가 떴다. 매출 감소로 지사의 인원을 대폭 감원한다는 것이었다. 별다른 기술이 없는 공 부장도 감원 대상이었고 당장 다른 회사를 찾아야 했다. 생계가 걸려있으니 열심히 면접을 보기 시작했고 다행히 한 회사에 채용이 되었다. 그렇게 공 부장은 우리 회사, 우리 팀에 입사하게 되었다.


일손이 부족하던 우리 팀에 프리세일즈 엔지니어가 한 명 충원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공 부장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당시 혼자서 30여 개의 제품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업무를 분담할 수 있는 동료가 절실했다. 공 부장의 입사 첫날, 원들은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십 년 넘게 한국에서 일을 했다는데 여전히 한국말이 서툰 것이 이상했지만 그의 인상은 아주 평범했다. 경력 사원이지만 우리 회사 제품을 배워야 하기에 그에게 2달 정도 공부할 시간을 줄 라고 했다.


다시 두 달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런데 2달이 지나도, 3달이 지나도  부장은 여전히 실무엔 손을 대지 않으려 했다. 온라인 교육만으로 제품을 배우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 본사에 교육 프로그램이 있으면 보내달라는  온갖 말도 안 되는 요구 사항들을 내세우며 실전 투입을 미루고 또 미뤘다. 이렇게 6개월이 지나자 나도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신입 사원도 아니고 유사 분야 경력이 십 년이 넘은 사람을 뽑았다면서 왜 아직도 실무에 투입하지 않느냐고 상사에게 따져 물었더니 상사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공 부장이 교육을 받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경력사원을 뽑는 이유가 한국 지사에는 교육 시스템이 없기 때문인데 교육을 보내달라고 요구를 한다니. 상황이 그렇다면 본사 출장이라도 보내서 교육을 시키고 업무를 분배해 달라고 요구했다. 나의 요구가 관철이 되었는지 그 후로 공 부장은 미국 출장을 서너 번 다녀왔다. 그러나 출장을 다녀와서도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교육에서는 실무에 필요한 내용을 배우지 못했다, A 제품은 한 번도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등의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기술적인 업무는 하지 않으려 했다. 입사한 지 일 년이 넘었는데도 교육 타령을 하는 그가 한심해 보였지만 상사도 그를 어찌하지 못했다. 상사가 뭐라고 하면 그는 열 마디를 더 보태어 자신이 왜 업무를 할 수 없는지에 대한 괘변을 늘어놓았다. 그제야 알았다. 우리는 잘못 걸린 것이었다. 가끔씩 회사에서 이렇게 어이없는 사람을 뽑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경우를 일컬어 지뢰를 밟았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절대 일을 하지 않는다. 업무 능력은 없지만 자기 보호에 능하고 각종 법규에 대해 바삭하게 알고 있어서 함부로 해고할 수도 없다. 말로만 듣던 지뢰가 우리 회사에도 굴러들어 온 것이었다.


그 이후로도 쭈욱 공 부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골라서 했다.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고 공부를 해야 하는 일들은 전부 내게 쏟아졌다. 참다못해 항의를 했지만 상사는 도리어 내게 도와달다고 하소연을 했다. 참 희한한 일이었다. 필요 없는 사람이면 내보내면 될 터인데 우유부단한 상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나와 김 부장 사이에서 쩔쩔 매고 있었다.


나는 공 부장을 지켜보면서 직장 생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일을 열심히 하고, 일을 잘한다고 좋은 처우를 받는 것이 아니었다. 보상은 자신의 요구를 주장하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졌다. 인사 평가는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상사는 골치 아픈 사람에게 포상과 성과급을 나누어 주었다. 항의하러 왔다가 말도 제대로 못 한 채 돌아서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 어떤 보상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저 공 부장이 못하겠다고 한 골치 아픈 일거리들만 잔뜩 쏟아질 뿐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나는 공 부장같이 행동할 베짱이 없었다. 입사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새로운 기능이 나올 때마다 미국에 가서 제품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프리 세일즈의 기본 업무인데도 아직 준비가 안 돼서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뻔뻔함이 내게는 없었다.

그러나 공 부장은  모든 것을 서슴없이 했다. 입사 5년 차가 되었을 때도 입사 10년 차가 되었을 때도 교육을 받지 못해서 아직 제품을 잘 모른다는 말을 고객 앞에서, 상사 앞에서, 동료 앞에서 서슴없이 내뱉었다.


나는 그의 기이한 성격유년시절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다. 평생 외톨이로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 삶을 살았으니 아마도 그는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공 부장은 아직도 내가 퇴사한 회사를  다니고 있다. 아마도 그는 지금쯤 근속 11주년을 채웠을 것이고 몇 년을 더 다녀서 근속 20년도 채우고 정년을 꽉 채운 후 은퇴할 것이다. 공 부장처럼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었더라면 나도 근속 30주년을 너끈히 채울 수 있었을 것 같다.


공 부장은 난공불락이었다.

그는  어떤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았다. 일전에 그보다 한참 어린 동료가 그에게 무자비하게 욕설을 퍼붓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동료 공 부장과 같이 일을 하다가 화가 났던 것 같은데 회사에서 지켜야 할 선을 넘은 공격이었다. 그러나 공 부장은 후배의 예의 없는 말투와 폭언에도 평화롭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정한 테투리 안에서 자신의 업무 영역을 정했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일을 했다. 할 줄 아는 것이 무언지 궁금할 정도로 무능력했던 그는 처세술과 사내 정치에는 능통했다. 10년 동안 우리 팀에도 가끔은 원리원칙을 준수하는 상사가 부임하기도 했다. 그런 상사가 그의 무능함과 나태함을 지적하면 그는 상사보다 높은 사람을 섭외해서 자신을 보호하도록 조치했다. 사내에서 불링(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고 본사 HR에 보고하여 상사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은퇴하고 나서 되돌아보니 그에게 처세술을 배워 볼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나 같은 사람은 단 하루도 공 부장처럼 살 수 다는 것을.


세상에는 참으로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25년 간의 직장 생활 동안 나는 정말 이상하고 희한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 이상한 사람들 중에서 공 부장은 Top of Top이었다. 오늘은 문득 이런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지, 다른 회사에도 존재할지 궁금해진다.


공 부장 유형의 또라이 대처법

공 부장 같은 유형의 사람들은 자신이 기생할 숙주를 귀신같이 알아본다. 그들은 숙주를 찾아서 기생충같이 빌붙어서 피를 빨아먹고 살아간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모든 업무를 희생양에게 미루고 자신은 요리 저리 숨어 다니며 여유를 즐긴다. 한번 숙주로 선택되면 피를 다 내어줄 때까지 떨어져 나가지 않으니 절대 그에게 선택되지 말라. 그리고 그와 싸워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지 말라. 그는 어떤 자극에도 꿈쩍하지 않도록 훈련되어 있기 때문에 당신은 절대 그를 이길 수 없다.


공 부장의 숙주가 되지 말 것. 그리고 절대 그와 싸우지 말 것. 이것이 공 부장 같은 유형의 또라이를 만났을  추천하고 싶은 대처 방법이다.






    

이 글은 실화에 기초해서 작성된 에피소드이지만 제 기억을 바탕으로 재건되었고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각색된 부분도 있기에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 사용된 '공'씨 성은 실제 이름에서 따온 것이 아니라 난공불락에서 한 글자를 따온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성이 아니라 가상의 성씨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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