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사는 버스도 다니지 않는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지원하고 희생한 부모님 덕분에 개천에서 용 났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고 SKY 대학에 입학하였다. 졸업 후에는 글로벌 기업에 입사하였고 서른이 되는 해에 결혼하고 강남에 신혼집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아서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겉으로 보기에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지만 지이사는 항상 돈에 쪼들렸다. 그는 자식을 뒷바라지하느라 모든 것을 다 바친 부모를 책임져야 했고 아내와 자식들도 부양해야 했다. 비싼 강남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지이사의 월급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지만 그는 자식들이 최고의 교육을 받기를 원했다.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다녔지만 월세와 병원비, 학원비, 그리고 생활비를 대느라 지이사의 통장 잔고는 항상 마이너스였다.
어느덧 직장 생활 20년 차가 넘었고 돈을 더 벌려면 임원이 되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는 매번 진급에서 미끄러졌다. 연거푸 승진 심사에서 탈락하자 지이사는 실패의 원인을 회사 탓으로 돌렸다. 남녀평등 조항 때문에 능력도 없는 여자 동기가 승진하고 자신이 밀려났다고 생각한 지이사는 회사를 원망하기 시작했고 입사 23년이 되던 해에 회사를 떠났다.
그 어떤 조건보다 월급이 가장 중요했던 지이사는 작은 외국 기업을 두 번째 회사로 선택했다. 그의 새로운 직책은 직원 수가 열명도 채 안 되는 미국 회사의 영업 총괄이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회사였고 사무실도 변변치 않았지만 급여가 두 배로 올랐으니 아무 상관없었다. 그는 손바닥 만한 회사에서 자신보다 열 살 어린 지사장을 보필하며 2년을 버텼다. 자존심이 상하고 울화가 치미는 일이 한두 번 아니었지만 모든 것을 인내하며 기회를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그에게 기회가 왔다. 지사장이 다른 회사로 이직하면서 그가 지사장이 된 것이다. 권력을 거머쥔 지이사는 그가 당했던 모든 수모를 하나씩 앙갚음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지이사는 첫 직장에서 자신이 당했던 남녀 차별에 대한 보복을 시작했다. 남녀 불평등 조항을 만들어 여직원들에게 불이익을 주기로 한 것이다. 여직원들은 남자 직원들보다 진급이 어렵도록 승진 제도를 바꾸었고 영업부서나 기술 부서에는 아예 여직원을 채용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규정이라며 여직원들이 반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직원 수가 몇 명 안 되는 지사에서 그는 왕이며 독재자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지이사를 대놓고 무시하던 박 부장과 이 과장을 해고하였다. 고분고분하지 않고 눈에 거슬리던 마케팅 김 차장도 해고했다. 해고 사유는 몇 년 전 공개 석상에서 자신에게 반대 의견을 냈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한 죄밖에 없는 직원들은 어이없이 해고를 당했다. 무시당할 때마다 온화한 웃음으로 회답하던 지이사는 마음속에서 칼을 갈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2년 동안 당했던 모든 무시와 핀잔을 기억하고 있었고 하나씩 되갚았다.
지사장이 되자마자 순식간에 3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공석을 자신의 후배들로 채웠다. 본사에는 공정한 절차를 통해 채용했다고 보고했지만 인사부도 없는 한국 지사에서 채용은 100% 지사장 권한이었다. 공석을 채운 3명 모두 지이사의 후배였던 것은 누가 보아도 이상했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지이사는 마음에 안 드는 직원들을 해고하고 자신의 지인으로 빈자리를 채워 나갔다.
과반수가 넘는 인원이 지이사의 후배로 채워졌고 수년간 형님, 동생 사이로 끈끈이 다져진 그들은 회사에서도, 퇴근 후에도 항상 몰려다녔다. 회사의 모든 중요한 결정이 술자리에서 혹은 주말 산행에서 결정되었으며 무리에 들지 못하면 어떠한 정보도 받을 수 없었다. 이러한 혼란 속에 기존 직원들도 하나둘씩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고 지이사는 자신의 군단을 구축해 나갔다. 글로벌 외국 회사였지만 개인 회사인지 동창회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지이사의 왕국이 탄탄하게 구축되었다.
회사는 지이사의 손아귀 안에서 놀아났다. 지이사에게 점수를 따야 승진할 수 있었고 좋은 부서에 배치될 수 있었다. 몇몇 직원들이 부당하다고 항의를 했지만 지이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권력의 맛에 취한 지이사는 점점 더 용감해졌다. 그는 하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 회사 돈을 악용해서 혹은 파트너사를 협박해서 누리기 시작했다. 그는 매주 골프를 쳤고 운전기사까지 고용했다. 이 모든 것들은 불법이었지만 감히 지이사를 지적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몇 년에 걸쳐 탄탄하게 구축된 지이사의 왕국은 도무지 무너질 것 같지 않았다. 마침 경기가 좋아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지사의 매출은 해마다 성장했고 눈에 보이는 성과 덕분에 본사에서는 그의 왕국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었다.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던 그의 왕국은 어이없게도 안에서부터 붕괴되었다. 회사를 지인들로 채우고 아첨과 아부에 의해 모든 결정을 내리니 내부에서 다툼이 일어났다. 충성을 다했는데 자신의 몫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측근 한 명이 본사에 투서를 보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이사의 행패를 지켜본 수하의 고발로 빠져나올 수 없도록 모든 증빙 자료가 제출되었고 투서가 보내진 바로 다음 날 지이사는 해고되었다.
지이사를 따르던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모두 등을 돌렸다. 그의 왕국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것을 보면서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권력이 있을 때는 무조건 충성을 외치던 그들이 하루아침에 지이사를 버리는 모습은 씁쓸했다.
나는 지이사가 처음 입사하던 시절부터 그를 지켜보았다. 총판 사장님들을 만나서 총판 간의 다툼을 중재하고 영업 사원들 간의 알력 싸움을 중재하던 시절의 그는 딱 맞는 옷을 입은 듯했다. 술을 좋아하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그에게 영업 총괄직은 맞춤형 옷 같았다. 그러나 지이사의 그릇은 딱 거기까지였기에 그가 욕심을 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항상 문제가 발생했다. 첫 번째 직장에서 지이사가 임원이 되지 못한 것은 그의 무능함 때문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남의 탓으로 돌렸던 것이다.
같은 회사에서 무려 5년 넘게 지사장 노릇을 했지만 나는 한 번도 그를 지사장으로 부르지 않았다. 지사장 감이 아닌데 어쩌다 그 자리에 올랐다가 끌려 내려온 그는 내게 영원히 지이사이다.
지이사 유형의 또라이 대처 방법
지이사 같은 유형의 또라이를 대처하는 방법은 딱 두 가지밖에 없다. 치사하고 아니꼽지만 아첨을 하고 수발을 들면서 무리에 들어가거나 말도 통하지 않고 논리도 통하지 않는 그의 왕국에서 도망가는 것.
도망가지 않고 버티면서 정의는 언젠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던 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깨지고 다치면서도 외로운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던 나의 청춘이 안타깝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쓸데없는 싸움에 내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당장 사표를 낼 것이다.
21세기에 미국 회사를 다니면서 지사장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여자가 왜 차를 끌고 다니냐는 말을 들었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남자 직원들에게만 주차권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고 이의를 제기했던 내게 지이사가 했던 말이다. 당시 나는 부장 직급이었고 외근이 많은 직책을 맡고 있어서 HR에 이슈를 제기했다가 지이사가 재임하는 5년 내내 승진자 명단에 오르지 못하는 불이익을 받았다. 또라이가 통치하는 회사에는 정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