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여 Oct 04. 2022

네 삶 너머의 영원한 흐름


모든 이분법들은 애초부터 공존한다. 예로, 삶과 죽음은 서로 다른 객체가 아닌,  영화  외계의 비행 물체처럼  단면은 평면  단면은 곡면, 수직으로도 수평으로도 떠있으며, 바닥에 닿기도 하고 하늘로 상승하기도 하며, 모습을 드러내 거대한 돌처럼 보이다가도 이내 바람처럼 스윽 사라져버리는, 무이기도 유이기도  원래부터 하나인 이면이다. 영화 <컨택트> 양분되어야  사실이, 과거와 미래의 공존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도래했음에도 삶은 지속되는가에 집중한다.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은 인간이 질서를 영위하기 위해, 시야와 방향을 통제하기 위해 존재한다. 언어도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한다. 애초에 생활 방식을 규정할 수 있는 통제 수단인 언어는 해답이 되기도 하고, 질문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생각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마저 바꾸는 힘이 있다. 그것이 사피아 워프의 가설이다.


규정된다는 것도 결국 언어의 영역인데, <컨택트> 생각나네요. 언어가 다른 차원의 사유를   있다는데, 그렇다면  속에 가능성과 제한성이 정말 공존할  밖에 없겠어요.”


시간의 개념으로 생각해보면, 사고하는 방식이 바뀌므로 시간을 인식하는 방법도 변화하는데 현재, 과거, 미래가 공존하게 된다는 가정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만약 자신의 삶과 죽음,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가 마치 동시간대처럼
구분 없이 존재한다면, 우리에게
선택이라는 행위가 여전히 가능할까?

라는 질문이 굉장히 두렵고 신선했어요.”


모든 여정을 알고,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면서도 과연 선택이라는 것이 유의미할까요? 그것만큼 두려운 결정은 없을  같아요. 죽음을 알더라도 선택하는게, 가능할까.”


양자이론과 중력이론을 결합한 루프양자중력이라는 개념으로 블랙홀을 재규명한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20세기의 위대한 이론가이자 아인슈타인의 친구였던 쿠르트 괴델(Kurt Gödel)의 이론인 ‘닫힌 시간선(closed temporal lines)’을 소개한다. 미래로 갈수록 시공간의 동일한 지점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해당 이론은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하다는 논지를 뒷받침한다. 로벨리는 이 이론에 논리적인 모순이 없음을 강조하면서 자유로운 미래에 대한 혼란스러운 상상으로 사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로벨리는 자신의 이론을 덧붙여 과거-현재-미래 순서로 흐르는 시간이 사실은 '연속으로 놓여있는 선’이 아니라 '흩어진 점’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우리가 기존에 알던 시간의 기본 구조는 그저 표준화된 장치일 뿐 그 이상이 아니다.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편견에 불과한 것이다.


선택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현재, 지금  순간이라는 요소가 중요한 시간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의 구분이 무의미하며, 연결되어 있고, 현재는 그저 과거와 미래 사이의 확장된 구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비극적인 로맨티스트,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 과거와 미래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는 없으며, 시간의 흐름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우주의 불가사의한 불가능성이 희미하게 반영된 것이라 주장했다. ,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오직 세상을 보는 우리 자신의 희미한 시각에서만 발생하며, 시간이 작용하는 수십억 분자들의 움직임을 정확히 관찰하고 염두에 둔다면 미래가 과거처럼 펼쳐질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원한 흐름 대해 시인 릴케(Rilke)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영원한 흐름은 언제나 과거와 미래를 통해  안에서 모두를 압도하면서 모든 시대를 이끌고 간다


영화 <컨택트(Arrival)>의 루이스 뱅크스 박사 (에이미 아담스)는 새로운 언어를 통해 시간을 다시 이해하게 된다. 영원한 흐름을 인지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녀는 과거와 미래의 공존을 경험한다.


우리에게는 선택으로 여겨질 순간들인데, 그저  다른 분자운동처럼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예견된 고통과 슬픔과 사랑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루이스를  경외감이 들었어요. 연속 선상의, 일관된 흐름으로서의 시간을 초월하면 저런 표정을 지을  있는 걸까? 그녀는 어떤 걸음을 걸을까? 무슨 생각과 감정을 느낄까? 사람이 경험할  있는 경지의 것일까? 하는 마음이었어요.”


선택이 중요하지 않음은 광활한 우주에 우리가 합리적으로 규정할  있는 ‘현재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와 미래의 차이가 유의미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생과 죽음, 만남과 이별의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구분을 넘어선 이야기가 존재한다고 푸른 고요하고 잔잔하게 울고 있었다.


“아직도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대사가 주는 울림의 차이를 잊지 못해요.”


우리는 시간에 너무 매여있어,  순서에.
이젠 시작과 끝이 의미가 없어.
  너머에도 너의 이야기는 존재하니까.


 너머의 삶이 존재한다고 믿어요?”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서요.”


이전 11화 당신을 향한 비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