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분의 조언대로 백신을 맞고 타이레놀 한 알을 먹었다. 낮에는 괜찮아도 밤에 아플 수 있다고 해서 수업시간도 조절해 뒀다. 못 움직일 상황을 생각해서 빨래도 하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빵이며 유부초밥 재료며 채워놓고 식탁 걱정도 미리 해 놨다.
지역 사회에 확진자가 생기면 화상 수업으로 돌렸다가 다시 대면으로 바꾸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화상으로 해도 소홀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허리가 고장 나서 몇 주씩 고생하기도 했다.
겨울이면 손을 너무 자주 씻어서 쩍쩍 갈라지는 게 일상이었다. 집에 오면 손에 약을 바르면서 찢어진 옷을 기우는 마음이었다.
그동안 마음고생한 것을 헤아리자면 손가락, 발가락 가지고 될 일이 아니다. 게다가 나는 소심한 사람이다. 내게 수업받던 5학년 학생은 작년에 대학을 갔다. 그 아이의 동생이 지금도 나와 공부를 하고 있다. 한 지역을 이렇게 오래 수업하다 보면 자연히 많은 이야기가 생긴다. 그래서 학생 한 명, 한 명은 이름으로만 기억되지 않고 각각 다른 대본의 주인공으로 기억된다. 이런 귀한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 맞는 일인지 늘 고민이었다. 마스크 잘 쓰고 하자고 다독여 주신 여러 손길 덕분에 명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백신을 맞았어도 수업 가면 손부터 씻을 것이다. 당연히 마스크도 단단히 챙기고 거리두기도 잘 지킬 것이다. 그래도 분명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불안보다는 반가운 마음으로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