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3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와의 캠핑을 그리워하는 12살 아이의 관점으로 쓰였습니다.
캠핑의 시작
오래된 일인데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일이 있다. 동생이 태어나기 며칠 전이었는데, 수술로 동생을 낳았던 엄마가 동생을 낳으러 가기 전 날 붙잡고 울었다. 엄마는 동생 낳으러 가면 며칠간 집에도 못 오고, 동생이 생기면 동생도 챙겨줘야 하니 내가 속상할 수도 있다고, 이해해 달라고 했다. 엄마가 울어서 나도 덩달아 울었다. 그렇지만 괜찮다고 엄마한테 웃으며 말해주었다. 엄마가 우는 걸 더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생이 태어난 후 엄마는 한동안 병원과 조리원에 있었다. 나도 엄마랑 동생이 있는 곳으로 가서 둘을 만나봤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빨갛고 못 생긴 원숭이가 내 동생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그런 동생이 어디가 예쁘다는 건지 동생이 집에 온 이후로 집안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다들 날 보고 귀엽다더니 이젠 동생에게 귀엽다는 둥 예쁘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그리고 엄마는 정말 동생을 안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 둘을 고무줄로 묶어둔 듯 떨어질 줄을 몰랐다. 동생이 밉고 전과 달라진 상황이 썩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주중에는 어린이집을 가서 신나게 놀고 왔는데, 주말엔 어린 동생 때문에 집에만 있어 매우 심심하고 갑갑했다. 대체 동생은 언제쯤 나랑 놀 수 있을지, 지금 상태를 봐서는 그런 날이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런 속상한 마음을 알아준 건 할아버지였다. 자연과 여행을 사랑하던 할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매주 캠핑을 떠났다.
그렇게 우리는 금요일 낮이면 옷 한 벌과 칫솔을 들고 모험을 떠나게 되었다.
거침없이, 모험
할아버지는 예의 없는 행동과 차에서 창문 열기를 빼면 뭐든 하도록 허락해 줬다.
나는 자동차 앞자리에 타서 가는 동안 시원하게 트인 경치를 바라볼 수 있었고, 외투를 입거나 장갑을 끼지 않아도 괜찮았다. 종일 옷도 안 갈아입고 입고 간 복장 그대로 자고, 먹고 놀았다. 내가 집에 돌아올 때마다 엄마는 아들이 거지가 되어 돌아왔다면서 혀를 끌끌 찼다. 내가 봐도 좀 더럽기는 했다. 손톱엔 흙이 가득 들어가 좀비 손 같았고 발바닥은 하얀 곳을 찾는 게 더 어려웠다. 그나마 일찍 오는 날은 샤워를 했는데, 늦게 오느라 차에서 잠든 날이면 엄마가 자는 내 발을 물티슈로 닦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