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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현주 Jan 19. 2024

나르시시스트 장려하는 사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언뜻 보기에는 공감 능력을 가지라고 하고, 타인을 배려하라고 하는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중적인 목소리가 존재한다. 바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을 이겨 살아남고 성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것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사회에서 장려하는 것처럼 보이는 공감을 중요시한다. 반면 나르시시스트들은 돈 안되는 공감 따위에는 신경쓰지 않는다. 오로지 세상에서 권력을 가지고 생존하는 것에 모든 신경을 집중한다.


흔히 세상에는 (혹은 문학적 메타포에) 선과 악, 빛과 어두움이 존재한다고 한다. 예민한 사람들은 선한 원칙들에 주목하여 올바르게 살아가려 노력하지만, 나르시시스트들은 악한 원칙에 주목하여 어떻게든 성공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보면 사실 나르시시스트들이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이거나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생존이기에 다른 모든 것을 그것을 위해 희생시키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에 있어 내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 사회는 안타깝게도 예민한 사람들보다는 나르시시스트의 편에 보다 가깝게 서있는 듯 하다. 사람의 됨됨이나 배려심보다는 그 사람이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는 나르시시스트들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정당화하고 성찰하지 않게 도와주는 것 같다. 그러니까 자기애성 인격 장애 유형은 한국에서 크게 비난받지 않고 오히려 공공연하게 장려되는 삶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사회학과 인류학을 석사와 박사 과정에서 공부한 나는 이러한 면을 어렴풋하게 인지했지만 진짜 내 삶에서 제대로 깨닫지는 못했던 것 같다. 사는게 뭔가 힘들고 이해가 되지 않아서 시작한 사회 공부와 인간 공부였다. 하지만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 혹은 악성 나르시시스트들을 만나고, 무너지고, 회복해가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내가 살아가는 사회가 어떤 곳이고 어떤 것이 나를 괴롭혀왔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한국은 삶의 방식이 굉장히 획일적인 편에 속하는 사회이다. 나이에 따라 해야하는 일들이 정해져 있다고 믿고,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에 대해 굉장히 압박을 주거나 불안감을 느낀다. 남들보다 예민한 사람들에게도 유난을 떤다며 전혀 배려 없이 손쉽게 공격하며 부정적으로 몰아가기 일쑤이다. 생존과 성공을 위해 할 것들이나 빨리 빨리 해도 시원찮을 판에 정신차리고 참고 견디라는 메세지가 도처에 널려있다.


그래서 예민한 사람들이 더더욱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들을 표현하기 어렵다고 느끼며 자라나기 쉽다. 자신들이 최우선으로 여기는 가치들이 아닌 것에 치여서 자꾸 비난받고 무시받는 상황들이 반복될수록 무의식의 깊은 곳들에서 해결되지 않은 의문들과 슬픔들이 쌓여간다. 우선하는 가치가 다른 상태에서 세상에서 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혼란을 느끼는데, 이 가운데 자신을 제대로 배려해주지 못하고 잘 알아주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남들을 배려하려고 하면서 자신을 잘 배려하지 못하는 예민한 사람들은 나르시시스트와 악성 나르시시스트들이 최고의 타겟으로 삼는 대상들이다. 이들은 생존 원칙이 아니라 공감 원칙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대하기에 이들이 중요시하는 가치만 알아주는 척하면 현실적인 장벽도 꽤나 낮은 편이기 때문이다. 예민하게 타인들의 상황과 감정을 살피며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라니 나르시시스트 입장에서는 사기 치기 딱 좋은 먹잇감이다.


특히 한국처럼 나르시시스트들이 살아가는 원리가 오히려 장려되는 듯한 곳에서는 대상만 발견하면 공감자에 대한 낚시와 착취는 너무나 손쉽게 정당화된다. 나르시시스트들은 남탓과 책임 전가에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들이다. 원래부터 배려나 존중을 받지 못하던 공감자들은 착취자들의 교묘한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는 훈련도 잘 되어있지 않아서 더 곤란한 상황에 빠지고 헤어나오기 힘들어한다.


다행이라고 하기까지는 뭐하지만 몇년 전 내가 악성 나르시시스트에게 심한 가스라이팅을 당한 무렵, 이러한 주제들을 다루는 책들이나 컨텐츠들이 조금씩 부상하기 시작했다. 연관되어 이들에게 주요한 타겟이 되는 예민한 사람들, 공감 능력이 높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기 시작했다. 2022년, 메리엄 웹스터 사전은 타인의 심리를 교묘하게 조작해 지배하는 정신적 학대를 뜻하는 “가스라이팅”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기도 하였다.  


여전히 나르시시스트들의 이중성과 위험성에 대한 학문적, 대중적인 인식은 턱없이 부족한 편이다. 예민하고 공감 능력이 높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두렵지는 않다. 세상과 사람을 믿기 힘들어 불안해하고 고통받던 긴 시간들이 있었다. 그런 시간들을 잘 이겨내온 덕에 이제는 누가 나를 오해한다 하여도 내가 나를 제대로 알아봐주려고 노력한다. 내 안의 빛이 켜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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