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부모님 다 계신데 왜 그러는 거냐
기억도 가물한 초등학교 3학년, 유일하게 내가 못 잊는 사건이 있다. 어느 날 단짝 친구에게 슬쩍 '사실은 우리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다'라고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그 애는 우리가 조금 다투자마자 곧바로 '아빠도 없이 할머니랑 사는 불쌍한 주제에' 하며 내 약점을 파고들어 공격하더니 심지어 같이 다니는 무리에 소문을 퍼뜨려서 나를 더욱 곤란하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3학년이면 이 세상에 태어난 지 10년도 안된 아기인데. 분명 성악설이 맞다.
아무튼 초딩 시절, 그 정신연령 나름 엄청난 배신과 편견의 시선을 겪어보니 '내 가정은 남들과 다르고 이게 말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똬리를 틀고 자리잡았다. 당시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은 연세에도 나를 애지중지 키워주는 상황이었는데, 부모 대신 나를 잘 보살피려 무던히도 노력하셨다. 그런데 나는 내가 속한 가정이 남들이 정해놓은 '정상적 범주'에 들지 않아 부끄럽다 여겼다. 그리고 이 사실은 감춰야겠다고 생각했다. 말하는 순간 약자가 되어버리고 무시를 당할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은 평생 지긋지긋하게 나의 발목을 잡아댔다.
그러다 보니 나는 항상 초중고 시절 가족관계를 조사하거나 등본을 떼오라는 말이 싫었다. 혹시나 같은 반 친구들이 내가 아버지가 없다는 걸 알게 될까 봐 걱정됐고, 선생님이 날 가엾게 보지는 않을까 신경 쓰였다. 아버지가 없다고 하면 대부분의 선생님은 나를 교무실로 불러 '할머니, 할아버지랑은 잘 지내고?' 하며 측은한 목소리로 묻곤 하셨다. 그게 싫어서 나는 새 학기가 되면 아버지가 있는 척했다. 가족관계 조사서에 아버지의 생년월일과 생전 다니셨던 회사 이름을 적어냈다. 몇 번 해보니 어차피 이렇게 적어내도 잘 확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어설프게 솔직했을 때 더욱 주목을 받고, 내가 원하지 않는 동정을 받았다.
조손가정, 한부모가정의 자녀에게 이런 '불쌍한 아이' 프레임은 치명적이다. 저 때 느꼈던 주위의 시선들 때문에 나는 남 눈치를 많이 살피고, 다혈질의 방어적인 성격으로 자랐다. 누가 내 가정사를 알면 나를 깎아내리고 불쌍히 여길까 봐 늘 신경이 곤두섰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대체 내 아버지가 천재지변 같은 사고로 돌아가신 게 뭐가 부끄러울 일이고, 먼저 간 아들의 하나 있는 자식을 책임지고 기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무슨 잘못이 있는가? 오히려 대단한 일이고 존중받아 마땅하다.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이혼가정 등 이런 단어들은 가정 내부의 디테일한 요소(정서적 유대감, 경제적 안정 등)는 싹 무시하고, 그냥 아이를 '아버지 혹은 어머니 없는 불쌍한 아이'로 정해버리는 마법이 있다. 실제 가족 구성원의 부재로 경제적 정서적 불안정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런 문제는 비단 한부모 가정과 조손가정에게만 국한된 사실은 아니다. 그래서 섣불리 넘겨짚고 편견을 가지면 안 된다. 나는 오히려 너무 어릴 적 아버지를 잃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아버지가 없는 상태가 나한테는 자연스러운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별로 정서적,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의 시선으로 인해 마음이 뒤틀리고 더욱 어려워졌다.
다행히 최근에는 더 다양한 가정의 형태가 생겨났고, 점점 이를 받아들이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를 처한 상황으로 비난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속단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 당연히 그 노력에 나도 포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