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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성장 Mar 04. 2022

아파트 경비원이 된 사장님

할아버지는 자주 공허한 눈빛으로 담배를 태우곤 했다.


다가구 건물 지하 1층에 있었던 할아버지의 작은 공장은 언제나 옷 먼지로 가득했고, 아주머니들이 '드르륵' 하며 오버로크를 박는 공업용 미싱 소리가 가득했다. 나는 심심할 때마다 지하 공장으로 내려가 엄청나게 강력한 스팀이 뿜어져 나오는 다리미로 다림질을 하는 할아버지 옆에서 소일거리를 하고는 했는데, 열선으로 옷 속에 박음질할 택(tag)을 자른다거나 쪽가위로 옷의 실밥을 떼어내는 일 따위를 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15살까지 작은 섬유 공장을 운영하셨다. 할아버지는 청록색 프레지오(승합차)를 타고 옷감을 실으러 거래처를 돌고는 했는데, 낚시할 때나 입을 법한 주머니가 많은 조끼를 입고 큰 봉고차를 몰며 할아버지는 기차 화통 삶 듯한 목소리로 '서경이요!' 하고 외치고는 했다. 나는 그 모습이 퍽 멋져 보였다. 그러면 일사불란하게 거래처 직원들이 할아버지의 프레지오에 섬유 더미를 실었다. 조수석, 뒷좌석 가릴 것 없이 어찌나 꽉꽉 채워 넣었는지 나중에는 내가 탈 공간도 없었다. 그러면 나는 먼지 구덩이의 섬유 더미에 묻혀 공장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것은 내게 놀이와도 같이 신나는 일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꼭 KFC 치킨을 먹었는데, 나는 그래서 할아버지와 함께 거래처에 가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할아버지의 공장이 멈추었다. 할아버지는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았고, 하루 종일 방안의 조그만 TV를 벗 삼아 밤이고 낮이고 그 앞에만 앉아계셨다. 어릴 적 나는 왜 공장이 돌아가지 않는지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그런가 보다'했다. 생각해보니 종종 언제쯤 돈을 갚을 것이냐는 뉘앙스의 통화 내용을 들었던 것 같다. 공장은 부도가 났고, 할아버지가 평생 일궈왔던 사업은 망했다. 내 어린 시절을 전부 함께한 공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할아버지는 자주 공허한 눈빛으로 담배를 태우곤 했다. 그리고는 어느 새벽녘에 다시 출근하기 시작했는데, 편도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일자리를 구했단다. 할아버지는 새로 지은 아파트의 경비원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경비원이 된 후 봉고차를 처분하고, 옵션이 거의 없는 작은 깡통 경차를 마련하셨다. 180cm의 건장한 체격의 할아버지가 타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항상 큰 차를 몰고, 비록 작은 공장이지만 사장이라 불렸던 할아버지가 아파트 경비원이 되신 후로 급격히 눈동자의 빛을 잃고 체격도 차의 크기와 함께 쪼그라든 듯했다. 할아버지는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사람들에게 불친절해졌다. 종종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을 가끔 던지기도 하셨다. 할아버지는 사업의 실패와 함께 자신감 넘치던 모습도 함께 매몰시켰다. 나는 너무 어려 그런 할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날마다 왕복 3시간 거리를 지하철로 출퇴근하며 어떻게든 나와 할머니를 책임지려고 아등바등했던 할아버지는 이제 떠나고 없다. 그 일자리마저도 고령의 할아버지를 고깝게 생각해 할아버지는 여러 번 다른 곳에 이력서를 넣어야만 했다. 차마 말씀은 않으셨지만 경비원의 처우가 좋았을 리는 만무하다. 인식의 변화가 있고 직업으로 차별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는 지금에도 아직 아파트 경비원들을 향한 갑질 논란이 있는데, 그때는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스트레스와 좌절감이 쌓여 할아버지에게서 암 덩어리를 만들어 냈는지도.



퇴근 후 할아버지의 복잡한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괜히 내가 무슨 죄라도 지은 마냥 안절부절못했다. 할아버지의 자존감은 매일 뭉텅이씩 깎여나갔다. 50살이 넘은 세월의 격차를 진 나는 살아생전 그런 할아버지를 위로할 줄 몰랐다. 할아버지에겐 '이제껏 고생하셨으니, 남은 평생 걱정 말고 쉬세요.'라고 말해 줄 자식도 없었다. 내가 좀 더 자랐었다면, 할아버지의 상실감을 진정으로 안아주고 돌보아줄 수 있었을까? 떠올리면 안타까움에 괜히 하늘 한번 올려보게 된다. 잦은 그리움으로 할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할아버지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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