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성장 Mar 12. 2022

가출한 할아버지를 데리러 가는 길, 80km

노인은 누군가 자신을 애타게 찾아주기를 바란다.


할아버지 핸드폰도 집에 놓고, 연락이 안 된다.
아무래도 경찰에 신고해야 할 것 같다.



오후 8시쯤 퇴근 준비를 하는데, 전화 너머로 할머니에게 '할아버지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새벽같이 나간 할아버지가 아직도 연락이 없고, 핸드폰까지 방에 놓고 가셨단다. 갑자기 걱정이 밀려와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우선 밤 10시까지만 기다려보자. 초조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퇴근했다. 전에도 할아버지는 가끔 핸드폰을 두고 지하철에 몸을 실어 종점과 종점을 오가다 돌아오신 적 있으시니까. 그래도 해가 질 때쯤이면 늘 돌아오셨는데, 어쩐지 이번에는 늦은 시간까지 기별이 없었다. 불안함이 마음이 자꾸 솟았다. 10시까지만 기다려보고 그래도 돌아오시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할 참이었다.



핸드폰을 부여잡고 혹시나 연락이 올까, 동동 걸음을 치다 밤 9시 반쯤 결국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경찰관이 일단 평소에 가실만한 곳, 짐작 가는 곳이 있는지, 건강 상태(정신)는 어떠하신지 몇 가지 질문을 했다. '할아버지는 치매가 없고, 그리고... 그리고 가실만한 곳은...' 그 순간 말 문이 막혔다. 평소에 어딜 가시지? 뾰족하게 짚히는 곳이 없었다. 우선 기억나는 대로 최근의 종적을 전부 말씀드렸다.



애타게 찾아 헤맸던 할아버지는 인천공항에 있었다. 할아버지의 태블릿 PC가 공항 와이파이에 연결되었고,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카카오톡을 보내왔다고 했다. 지금 인천공항에 있노라고. 여기서 하룻밤 머물겠다고 하셨단다. (인천공항은 우리 집에서 80km나 떨어진 곳이다.)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이미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터라 인천공항에 있는 관계자에게 사건이 인수되었고, 민원이 들어온 이상 그분들도 할아버지를 그냥 공항에 둘 수는 없었다. 보호자가 와서 데리고 가야만 한다. 어쨌든 나는 지금 바로 공항으로 출발해야 했다.



나는 당시 할아버지의 작은 경차를 타고 다녔는데,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의 어두운 밤길과 80km의 먼 거리가 내겐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할아버지는 내게 집에 가지 않겠다고, 찾아오면 다른 곳으로 가버릴 것이라고 계속 화를 냈다. 나는 공항 직원분에게 연거푸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금방 갈 테니 그때까지만 할아버지를 잘 지켜봐 달라'라고 부탁을 했다. 눈물바람 섞인 목소리에 오히려 공항 직원분이 걱정 말라며 나를 위로하셨다. 예상은 했지만 가는 길이 너무 어둡고 휑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작은 차의 핸들이 바닷바람 따라 휘청거렸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억울한 마음이 계속 고개를 들었다. 집에 안 가겠다고 우기는 할아버지가 미웠다.



나는 인천공항에 도착해 다급히 주차를 하고 달음박질해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할아버지는 공항의 길게 늘어진 대기 의자에 앉아있었다. 할아버지 주위엔 두 분의 공항 직원이 함께였다. 나는 안도감과 동시에 분노가 치솟았다. 화가 나서 눈물이 다 났다.



"왜, 왜 여기 있어? 할아버지가 노숙자야?
집이 없어? 대체 왜 이러는 건데!" 


할아버지는 내 타박에 말없이 머쓱하게 웃었다. 나는 할아버지를 봐주신 공항 직원분들께 연거푸 고개 숙여 인사하고, 집에 가자고 할아버지의 가방을 채가듯이 뺏어 들었다. 할아버지의 가방에는 생수병 한 통과 집에서 챙겨 나온 것 같은 오래된 과자 봉지가 들어있었다.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멀찌감치 뒤에서 나를 따라오셨다. 나는 중간중간 고개를 돌려 할아버지가 혹시나 사라지진 않았는지 계속 확인했다. 할아버지를 찾아 긴장이 풀리는 동시 피로감이 몰려왔다. 주차장에 도착해 할아버지는 몸을 굽혀 뒷좌석에 탔다. 집에 가는 길 내내 긴 침묵이 이어졌다. 어색한 공기를 깨고 할아버지는 "우리 손녀가 운전을 참 부드럽게 잘한다. 최고네." 하셨다. 나는 뭐라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할아버지가 내게 미안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시간을 넘게 달려 집에 도착하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고, 시계는 새벽 2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다음 날 또 출근해야 할 생각에 괴로워하며 쓰러지듯이 잠들었다.






이상했던 건 가출 사건 이후로 할아버지가 조금 밝아졌다는 사실이다. 할아버지는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업무 중인 내게 전화해서 안부를 묻곤 하셨다. 묘하게 긍정적(?) 이어진 할아버지의 변화가 얼떨떨했지만 내심 좋았다. 자주 우울해하던 할아버지가 기운을 차린 것 같아 조금 안심도 되었고.



할아버지는 아침에 눈을 떠도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그나마 다니셨던 직장(경비원)도 노인인지라 기력이 약해지니 눈칫밥에 밀려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바쁘게 삶을 살아냈는데, 한 순간에 시간이 남아도는 것은 생각보다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대학 졸업 후 나도 독립했고, 노인 복지로 연금도 나오니 넉넉하진 않았지만 할아버지가 다시 일터로 나가지 못해도 어느 정도 두 분 내외가 생활이 가능했다. 그러나 할아버지에겐 먹고사는 문제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는 것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우울감으로 찾아왔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누군가 자기를 애타게 찾아주길 바랐다. 그래서 말도 없이 숨어버린 것이다.



인천공항 가출 이후로 종종 행선지를 말하지 않고 외출하던 할아버지는 다시는 말없이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수시로 전화, 카톡을 남발하며 절대로 핸드폰 없이 어디 가시면 안 된다고 잔소리를 해대서일까, 또는 자신이 사라지면 쫓아와서 데리고 갈 젊은 손녀가 있어 마음의 안정을 찾으신 것일까. 이유가 어찌 되었든 노인에게는 어린아이와 같은 섬세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소년 가출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노인 가출도 정말 비일비재하다. 치매 노인은 물론이고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봐도 가족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또는 쓸모 없어졌다는 좌절감에 어디로든 나가버리는 노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무너지는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바로 엊그제 일어난 것 같이 생생한 할아버지의 가출은 벌써 2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우리는 그 시간 동안 할아버지를 떠나보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고, 나는 그와 반비례해 계속 커져만 갔다.



이전 08화 아파트 경비원이 된 사장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