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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별빛 Apr 21. 2021

"호주 어부,  낚시가 이민에 미친 영향"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단출한 여행자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그 무엇이 차 트렁크에 실려 있었다.
처음에는 개이치 않았는데, 사실 그건 그에게 아주 중요한 물건이었다.

가늘고 긴~ 낚싯대!!

해안도로를 따라 호주를 반 바퀴 돌며 그는 간을 보고 있었다. 이민 올까? 그리고 가장 기본적으로 '이 나라에서

뭐 먹고살지,  어디에서 살지'의 고민을 가뿐히 제친 것은
참 어이없게도  '호주는 물고기가 많이 잡힐까?'였다.

그 단순 명료한 이민 이유가 그를 이 땅에 뿌리내리게 했다. 정말 징글징글한 낚시 사랑이었다.

시드니와 캔버라, 그리고 지금의 멜버른까지 호주에 사는 14년 동안 우리는 세 곳의 굵직한 도시를 이동하며 살았다.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지금 살고 있는 멜버른으로
이사 왔을 때 그는 영국의 변덕스러운 날씨를 빼닮은

멜버른에 침통해했다.
무엇보다  내만에 속한 지형 특성상 물고기가 많지 않았다.

사계절 내내,  바위 낚시 (Rockfishing)를 즐기던 남편이었다. 던지는 족족 짜릿한 손맛을 봤던 기억이
그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한날, 따뜻한 북쪽 도시 브리즈번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가
호주 안에서도 2시간가량 시차가 나는 퍼스에 가는 건  어떻겠냐고 되지도 않을 말을 내뱉었다.
나는 귀를 덮었다.

그는 몇 날을 무기력해하다 번뜩 말했다.
물고기가 낚시 바늘을 물지 않는다면 직접 바다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겠노라고...

거친 파도가 휘몰아치는 차가운 물속에 숨을 참고 들어간다니 "니가 제주 해녀라도 되는 줄 아느냐고"
펄쩍 뛰었지만 그는 결국 내 고집을 꺾고

작살낚시 (Spearfishing)로 낚시 종목을 바꾼다.



모든 취미는 성장과 진화를 거듭한다.
실력에 따라 장비가 업그레이드되듯,
그의 우울도 작살 낚시로 차츰 회복되어갔다.

그는 긴 장총 모양을 한 짝대기를 들고 7미터 바닷속을
들어가 진짜 스냅퍼 (참돔), 드러머 (긴 꼬리 벵어돔) 갑오징어, 문어, 전복 등을 잡아 왔다

그리고 낚시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씩 꿈꿨을

낚시의 끝판왕!!
그 야망과 로망의 최전선이라는 배를 장만하게 된다.


6인이 탈 수 있는 통통배는 그의 애마가 되어

더욱 풍요롭게 스냅퍼, 킹 피시 등을 실어 날랐다
랍스터를 잡는다고 새벽부터 일어나 호들갑을 떤 날도 있었지만 그 운명적 만남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4월부터 문어가 많이 잡힌다.  며칠 전, 아이 키만 한 대왕문어를 잡아왔다.
문어 다리가 정말 굵직했다.
해물탕, 생선회, 오징어튀김으로 푸짐한 한상을 차렸다.
집안 곳곳 고소하고 신선한 바다향이 넘실됐다.



어느 날, 회사에 다녀온 그가 또 문어를 손질하고 있었다.
젖은 머리, 소금기 가득한 작업복, 물기 가득 바닥에 널브러진 아이스박스를 보니 도통 일하고 돌아온

사람 같지 않았다.

그가 멋쩍게 웃으며 묻지도 않은 말을 변명처럼 늘어놓았다.

 " 마침 바닷가 근처에 일이 있어 갔는데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날이 너무 좋더라고...
   잠깐 들어갔다 왔어.... "

순간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뭐지.. 이 사람!

나를 독박 육아로 밀어 넣은 얄궂은 남편의 낚시를
솔직하게 대면해 보았다.
낚시는 과연 이 사람에게 무엇일까!
어쩌면 그는 낚시에 있어서 "찐" 은 아닌가.

좋아하는 걸 뛰어넘어 그냥 몸이 먼저 반응해버리는
열정을 넘어선 본능.
그냥 낚시가 인생이 되어 한 몸으로 붙어버린 삶.

그가 호주 어부가 된다면 난 그를 응원할 수 있을까
아직 단호하게 Yes를 외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결국 그를 지지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걸

마치
본능을 거스를 수 없듯...
자연의 섭리를 거역할 수 없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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