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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 May 02. 2023

화장실만 다녀간 태권도복 아이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 2

느지막한 오후. 카페에는 손님이 많지 않아 여유로운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때, 한 남자아이가 들어왔다.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키가 작은 남자아이였다. 태권도복을 입은 채로 가방이며 신발주머니며 짐을 꽤 많이 들고 있었다. 남자아이는 카페에 들어와 주문은 하지 않고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화장실 가려면 어디로 가야 돼요?”


귀여운 말투였다. 꼬마 남자아이가 귀여운 목소리로 물으니 얼른 대답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아이는 화장실이 급했던 것 같다. “저기 안쪽으로 쭉 들어가면 돼요.” 대답해 주고는 생각했다. 어쩌면 카페에 온 손님이 아니라 화장실만 다녀가려고 온 손님일지도 모르겠다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사이 또다시 귀여운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책상에 가방들…”


소심하게 묻는 듯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카페 bar 너머 아래에서 들려온 아이 목소리라 질문을 다 듣지는 못 했다. 나는 내 추측대로 문장을 완성해 대답했다.


“여기에 가방 두고 다녀와도 돼요.”


다행히 아이가 듣고 싶은 대답이었던 것 같다. 그제야 아이는 빈 테이블에 가방과 신발주머니 같은 짐들을 두었다. 사실 그 장면을 모두 보지는 못 했다. 하지만 아마도 그랬을 거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린 뒤 화장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말이다. 가방을 두고 가도 되냐고 허락을 받다니. 왠지 이 아이의 엄마, 아빠는 좋은 사람일 것 같았다.




얼마 뒤, 내가 다른 손님이 주문한 음료를 만들고 있을 때 뒤쪽 너머로 다시 한번 귀여운 목소리가 들렸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카페 뒷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나 나의 추측대로 남자아이 손님은 화장실을 들리기 위해 카페에 왔던 거다.


사실, 맨 처음 나를 불러서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던 목소리에서 나는 이미 아이의 마음을 알아챘다. 어린아이들도 다 안다. 카페는 돈을 내고 무언가를 사 먹어야 하는 곳이라는 걸. 하지만 아이는 화장실이 급했고 카페에는 화장실이 있다는 걸 알았을 거다. 아마도 아이의 부모가 이전에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만약 혼자 길에서 화장실이 급하면 가게에 들어가서 물어보고 다녀오라고 말이다. 아이의 태도는 분명히 느껴졌다. 조금 소심하지만 예의 바르게 화장실 위치를 묻고, 가방을 놓고 다녀와도 되는지 허락을 받고. 나갈 때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고. 누군가는 카페에 화장실만 쓱 이용하고 나가는 손님은 좀 그렇지 않냐고 눈살을 찌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남자아이는 처음부터 조심스럽고 미안한 듯한 마음을 가지고 카페에 들어온 듯했다. 그래서 나는 저절로 이 아이를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대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가끔은 어른도 어떤 상황에 어떤 태도가 필요한지 모를 때가 있다. 당연하지 않은 걸 당연하다고 여길 때가 있고,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할 때 당당한 태도를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어린아이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무언가를 부탁할 때 어떤 태도를 가지면 좋은지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했다. 작은 체구에 이런저런 짐들을 든 채로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던 아이의 귀여운 모습이 자꾸 생각난다. 어떤 부탁이든 다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달까. 순수하고 조심스러웠던 이 아이의 태도를 잊지 않고 싶다. 이 아이는 나를 어떤 어른으로 기억할까? 부디 상냥하고 너그러웠던 어른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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