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그런 거였을 거.. 이젠 아는 나이가 되었다
10대 때 내 인간관계는 한마디로 정의하면 참 가난했다. 지금도 안면인식을 잘못하곤 하는데 어릴 적에는 더 심했지 싶다. 동네에 100명 남짓한 동네 사람들이 누군지 단번에 파악할 줄 몰랐고 방사형으로 펼려지는 친구들의 언니 오빠 동생 엄마 아빠 파악도 느렸다. 친족사회에 가까운 시골살이 눈도 어둡고 눈치도 없고 느릿 거리는 성격이었고 심지어 우리 집에는 티브이도 잘 나오지 않았고 대중문화와 거리감이 있었고 엄마와 아빠는 티브이대신 그 깡촌으로 신문을 배달해 보았다. 사는 건 깡촌에 살면서 이상은 저기 멀리 산꼭대기에 있는 아빠 엄마 덕에 가끔씩 하던 문화생활들은 [엄마는 제빵을 배우셨고 우리 집엔 오븐이 있었다. 가끔 클래식공연, 야구관람, 영화관람은 친구들에 비해 속도가 빨랐다] 가끔은 내가 그들과 달라 공통분모가 없음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더 그냥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는 그냥 여기서 버텨야 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했다.
덕분에 내 교우관계는 단편적이고 편협했다. 졸업을 같이 했던 동창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특별히 한 명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고 친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만큼 열심히 정성껏 노력했다. 노력하지 않으면 얻어지지 않아서 귀찮지 않은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도 피드가 준 만큼 돌아오지 않았다. 어릴 때 이미 헛헛함을 알았는데 내가 이 헛헛함에 몸서리 치면 엄마가 인생은 혼자 사는 거라고 우울해 말라고 해주는 조언은 더 속상했다. 그래서 그때 서태지를 좋아했다.
나에게 태지는 친구이자 연인이자 멘토이자 길잡이였다.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단어만으로는 부족했다. 양방향 소통으로는 한 없이 부족한 관계였지만 들려주는 것들을 다 담고 싶었고 나는 그 속에서 변치 않는*[2집 너에게] 관계가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공백기간 신비주의 이런 건 이미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태지의 음악 속에 담긴 메시지와 매체를 통한 언어 속에서 용기를 얻었고 행동했고 거기서 희망을 얻었고 당당했고 자유를 구했고 떳떳할 수 있었고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 자랑스러울 수 있었다. 시대유감으로 음저협과 싸울 때 학교에 대자보를 붙이려고 총학을 찾아간 일이나 서명받느라 분주히 발로 뛰던 일들. 사회적으로 생긴 일에 같이 모금운동 하던 일들. 그리고 공연 후엔 뒷정리를 다하고 떠나는 자세들. 버펄로, 마니아로 혹은 팬 나쁜 말로는 빠순이로 규정되는 나의 정체성에 만족했다. 엄마 아빠 말고 인정받고 싶은 타인이 있다면 그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이렇게 잘 컸다고 이렇게 바르게 지내려고 노력한다고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자주 매체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먼 지인 같으나 나의 길잡이 나의 북극성으로 살았다. 남자친구를 사귀어도 콘서트는 보러 가고 내 무언의 관계 중 내 지인은 태지라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눈빛을 보면 뭔가 조금 알 거 같다고 철없는 말도 남발했다. 이 얼마나 위험한 발언이었는지 그때도 지금도 알지만 그래도 그렇게 무모할 수 있었었다. 좋아했고 사랑했고 존경했다.
2011년, 그와 L배우와의 재판 소식, 1월에 첫 아이를 낳았을 때 보다 더 많은 연락을 받았다. 너 괜찮니? 기사 봤어? 수많은 연락이 왔다. 내 상황이 상황이었던지라 육아하기에 참 바빴지만 생각은 정리해야만 했다. 태지닷컴에 실망과 좌절에서 분노와 공격으로 변한 사람들이 넘쳐났다. 나는 덤덤했다. 그럴 수도 있지라고 응대했다. 우리에게 당당함을 원했던 그의 당당함은 어디 있는지 씁쓸하기도 했지만 인간의 사생활이 가볍게 소모되고 대중매체와 법원을 통해 드러나는 사실은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그럴 수 있다고 그럴 수밖에 없는 거였다고 체념했다. 나는 울지도 않았고 약간의 감정동요를 제치고 아들에게 젖을 물리고 병원에 갔으며 아들의 심장 소리가 더 중요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유사-동지의 관계를 조금은 정리할 수 있었다.
고해성사 같은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1. 취향으로 더 이상 쓸 글이 없다.
2. 글이 자꾸 마른다 글은 쓰고 싶은데 글의 소재가 쩍쩍 마른다
3. 그럼에도 글은 쓰고 싶은데 한 바닥 써 내려갈 만한 소재가 이제 인간과 관련된 취향 밖에 없다.
4. 겨울이고 나는 이 시기에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별 나쁜 일 슬픈 일 속상한 일 아무것도 발생된 것이 없는데 한 없이 움츠러들고 울고만 싶어진다.
글로 늘어지게 설명하며 썼으나 이렇게 요약하니 보기가 좋다.
나는 인간관계가 어디쯤에선가 서로의 벽에 닿는다는 것을 안고 있다. 벽이 높고 길고 지루하게 계속되어도 그 벽을 인정해 주는 것이 인간관계 어디쯔음의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완벽치 않은 내가 어디선가 정답을 찾으려고 노력은 하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자주 헷갈린다.
아직도 나는 편협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한번 인연이 되면 그 인연을 소중히 여기려고 노력한다. 부질없다는 말로 점철되더라고 그러하다. 겨울. 바람이 인간의 한계를 다 걷어가는 겨울이 되면 인간관계에 대해서 새로 시작하는 새해와 나에 대해서 멍하게 생각하게 되는데, 요즘 내가 이유도 없이 우울했다. 나쁜 일도 없고 슬픈 일도 없고 속상한 일도 없고 아무런 일이 없는데 드는 이 감정을 보고 보고 또 바라보다가 오랜 인연이 생각이 났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이렇게 정리될 수 있는 인연들이 있다고 이 정도는 이런 거라고 내 취향은 이거밖에 안 되는 거라고 나를 열어 보이는 글이 앞으로 몇 편이나 더 가능할지 모르겠다. 100편을 앞에 두고 숲에 다달아 어떤 언어를 주워 집으로 돌아갈지 혼돈에 빠지고 말았다. 앞으로는 좋아하는 것에 대해 디테일하게 적어볼 예정이다. 그러려면 스팩트럼이 더 넓어야 하는데 걱정되지만...
그럼에도 올해 목표는 읽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꾸준히 쓰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기엔 세상은 급변하고 있고 주식창은 빠르게 움직이고 나만 돈복사없이 제자리 걸음으로 머무르는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은 움찔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나는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