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 중식이 <나는 반딧불> 中
반딧불은 여름 밤하늘을 수놓으며 빛을 낸다. 누가 보아도 반딧불이 빛을 내는 광경은 정말 아름답다.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마당에 앉아 멍하니 그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바라보곤 했었다.
밤에는 분명 빛을 내며 날아다니기에 어떤 곤충이나 벌레보다 아름답다. 빛을 내지 못하는 다른 벌레들에 비해 반딧불은 특별한 존재다. 하지만 낮이 되고 햇볕이 내리쬐면 그 빛은 금세 사라지고 없다.
낮에 보이는 반딧불은 더 이상 반딧불이 아닌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 수 없는, 개똥벌레다.
난 내가 정말 특별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어렸을 때는 좁은 세상 속에서 내가 엄청나게 머리가 좋은 줄 알았고, 조금 더 컸을 때는 내가 엄청나게 잘생긴 줄 알았다. 그보다 더 나이를 먹자, 난 내가 스스로 남과 달리 그릇이 참 넓은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난 내가 어떤 이미지를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꾸만 나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게 만들게끔 어떤 하나의 특별한 이미지를 구현해 냈다.
반딧불도 그랬을 것 같다. 빛을 낼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알았지만 스스로를 벌레라 생각하지 않고 반짝이는 별이라 생각을 했다. '별'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
난 내가 빛나는 별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나도 부인할 수 없는 흔하디 흔한 개똥벌레다. 지구라는, 우주에 떠 있는 창백한 푸른 점 하나. 그 점을 반복해서 파고들면 '나'라는 존재가 겨우 보일까.
나도 반딧불처럼 남들과는 다른 어떤 것이 분명 나에게 존재한다. 하지만 그 다른 어떤 것이 곧 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가 키가 남들보다 크다고 해서 내가 곧 키다리 아저씨가 되는 것이 아니다. 키다리 아저씨라 불리는 것은 타인과의 비교에 의한 타인의 시선에서 비롯된다. 그 시선이 곧 나의 시선이 되어 버린다.
결국 '나'를 의미하는 것은 타인의 시선을 차단한 나의 시선에서 나온다. 내가 어떤 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개똥벌레는 어쩔 수 없는 개똥벌레다. 아무리 빛을 뿜어내도 빛나는 별이 아닌 여전한 벌레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스로 눈이 부실 수 있는 것은 개똥벌레 자신만이 알 수 있는 노릇이다.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 중식이 <나는 반딧불>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