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실에서 만난 환자들(3)

CRPS 환자편(1)

by 유의미

대학병원 내 통증 클리닉이 있었다.

통증 클리닉이라면 허리 통증으로 인한 신경차단주사 등을 맞는 과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CRPS(복합 통증 증후군) 환자들도 통증 클리닉 외래에 왔다.

주사실 고정 멤버는 3명 정도 있었다.

이 분들은 내가 가끔 아이 때문에 응급실에 가면 만나기도 했다. 그만큼 병원에 자주 왔다는 의미






통증 클리닉이 오전 진료가 있으면 아침에 오셨고 오후 진료가 있으면 오후에 오셨다.

그런데 수납하고 진료받고 늦게 오는 경우 우리의 퇴근도 늦어지므로

그렇다고 마약성 진통제를 빨리 줄 수도 없었다. (나도 허리디스크로 두 앰플 정도 맞아봤는데

일시적으로 쇼크가 왔다. 호흡곤란 및 의식이 저하되는 느낌?!) 그럴 때는 밉상이었다.






이 분들이 정기멤버였다면 비정기 멤버들도 있었다.

사실 정기멤버보다는 비정기 멤버들이 우리 입장에서는 상대하기 더 어려운 환자이기도 했다.

그나마 정기멤버들과는 라포가 형성됐고 우리는 그 분들과 거리를 두려고 했으나

그 분들은 우리를 좋아해주셨던 것 같다.






매번 음료수를 사오는 A님이 계셨고, 우리의 속마음은 음료수 안 사와도 되니

우리 퇴근 시간이나 보전해줘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다고 막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것 외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잘 베풀고 참 자기 앞가림 잘하는 분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트장 선생님 말로는 공인중개사 시험도 공부해서 합격했다고 했다.

CRPS 환자의 극심한 통증을 생각하면 질환을 앓으면서도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했다.





A님은 자동차 사고가 나서 CRPS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아직도 보험회사에서 매달 일정금액을

받는다고 했고 자기 앞가림을 잘해서 생활하기에 어려움이 없는 분이라고 들었다.

주사실에서도 항상 어딘가에 컴플레인을 하는 전화를 했던 분으로 기억남는다.

인형 뽑기에 꽂혀서 인형 엄청 많이 뽑기도 했다. 하나에 꽂히면 끝까지 파고드는 성향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우리와는 잘 지냈다.






이 분도 하도 주사를 맞다보니 혈관 확보가 어려웠고 나중에는 PICC(말초 중심정맥관)

카테터를 삽입했다. 그러다가 이 PICC도 막혀서 몇 번 뚫으러 다른 병원에 가기도 했다.












B님의 첫인상은 범상치 않다였다.

젊은 여자분이었고 나보다 3~4살 정도 많았다.

이 분의 첫인상은 자기 혈관 별로 없으니 여기다 보통 많이 놓더라 했다.

주사실에서 일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침대를 칠 때가 있었는데 침대 치는 것에 민감했다.

CRPS는 가만히 있어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심한 통증이라 하니 이해는 갔다.

이 분도 그런 환경적인 부분에 예민했다. 그 때는 CRPS에 대한 지식이 없을 때라 잘 모르기도 했다.






본인은 이런 거 주의해주면 좋겠다고 앞으로 자주 볼 사인데 서로 조심하자고 하며

잘 지내보자고 했다. 그 때 당시는 선전포고처럼 느껴져서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싶었다.

그리고 그다지 잘지내고 싶지 않았다. 약간 JS 같은 이미지였다.

이 분 역시 지속적인 마약성 진통제 투여로 혈관이 별로 좋지 않았다.

군데 군데 손등에 굳은 살, 주사 맞았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놓다보니 자연스럽게 이 분의 혈관에 맞게 잘 찾게 됐다.

그래도 주사 놓는 것 가지고는 컴플레인 하지 않았고 첫인상처럼 JS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1주일에 5번 정도 봤기 때문에 애증의 관계라고나 할까.






언젠가는 너무 아프다면서 마약성 진통제를 너무 빠른 간격에 용량이 평소보다 많이 들어갔는데

의식이 약간 쳐져서 통증클리닉 교수님을 콜하고 모니터링을 단 적도 있었다.

이래서 마약성 진통제가 무섭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고 30분 정도 안정한 후에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CRPS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 이유는 1주일에 5일(월~금)을 보므로 (왜냐하면 통증클리닉이 주 5일 진료가 있으니까 ㅎㅎ)

한참 일해야하는 나이인데 B님은 통증이 너무 심해서 일도 못하고 병원 가는 것도 엄마 눈치보면서

다닌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같은 또래여서 안타까웠다.






또 어느 날 안 보이면 무슨 일있나 싶기도 하는 우리는 애증의 관계였다.








© dariamamont,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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