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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PS! 대학병원 그만두면 편할 줄 알았지

by 유의미

첫 직장은 종합병원 내 외과 병동이었다. 메인 파트가 구분되어 있기는 했지만 병원 입장에서는 병상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 메인 병동이 자리가 없으면 서브 병동이나 자리가 빈 병동에 어레인지(환자 입원)를 한다. 그래서 사실상 메인이냐 아니냐의 구분이 모호하다고나 할까. 그렇게 임상 경력 3년을 채우고 나는 매너리즘을 느꼈다. 밤마다 섬망 뜨는 환자들, 나의 잘못이 아님에도 내 잘못, 내 책임으로 되어버리는 일들, 예를 들면 환자가 낙상해도 병원과 간호사 책임이 되어버린다거나 병원 시설의 컴플레인인데 내 책임이 되어버린다고나 할까. 서비스직의 최상단에 있는 간호사는 환자, 보호자들에게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일이 잦았다. 특히 신규 간호사 때는 그런 요령도 없었으므로 나의 잘못이 아닌데도 보호자의 말도 안되는 컴플레인을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연차가 올라가고 소화기내과 메인 병동으로 병동 확장 문제로 트랜스퍼 됐다(부서이동)



소화기 내과 병동은 술을 거하게 걸쳐서 간경화 췌장염 등으로 입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분들은 몰래 밤에 술을 먹고 들어와서 혹은 술을 먹지 않더라도 그 전에 먹었던 알코올의 총량이 끊어지면서 금단 증상이 나타나서였을까 꼭 남들 다자는 새벽에 사건 사고가 일어났다. 그래서 밤에 낙상 사고가 타 병동에 비해 잦은 병동이기도 했다. 그런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낙상 보고서 및 기타 보고서를 쓰는 것도 지겨웠다. 그 때 한참 남자친구와 결혼을 준비할 때라 그렇게 결혼을 가장한 핑계를 대고 시원하게 그만둬버렸다. 물론 그 뒤로 계획이 있기는 했다.




그러고 나서 첫째를 낳고 첫 복귀한 직장이 대학병원 외래 주사실이었다. 일과 관리자들이 힘들었지만 신약을 사용해볼 기회, 좋은 멤버들과 일하면서 합이 맞는다는 건 이런거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오버타임을 해도 온화한 파트장 선생님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그 사이 나는 둘째를 출산했고, 마지막으로 이직한 대학병원에서 더이상 다니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 이유는 계속 다니는 이상 글을 쓰거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병행하기란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가 시키는 일보다는 스스로 마음의 동기가 일어나야 에너지를 얻는 추진력을 내뿜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생각하는 걸 좋아하고 무엇인가 만드는 걸 좋아했다. 그런 점에서 대학병원 병동 간호사로 일한다는 건 이 모든 것들을 내려놓아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업무 강도 자체가 강한데다가 오프도 길지 않았으며 공부도 많이 해야했고 끊임없이 시간, 노동력, 내 영혼까지 갈아넣어야 평타 정도 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학생 간호사 때는 의학 드라마를 보며 막연히 수술실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국경없는 의사회에 들어가서 헬기를 타고 전쟁통에서도 수술을 서브하는 수술실 간호사가 너무 멋있어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드라마 였을 뿐, 결론적으로 나는 지원했던 수술실 간호사에서 탈락했다. 그 해 유독 신규 간호사들이 수술실 지원을 많이 했다. 그 이유로 주말 오프 보전, 보호자를 안만나도 된다는 것, 그래도 3교대 병동보다는 덜 유동적인 근무 환경, 당직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보다는 주간 근무가 많았으니까. 이런 점들 때문에 아마 동기들이 많이 지원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이직한 요양병원은 데이 멤버가 수간호사를 포함해서 4명이었다. 물론 베드수도 많기도 했다. 꽉차면 100베드였는데 지금은 병실 공사를 해서 풀로 차면 85베드 정도 된다. 타 요양병원 비해서는 멤버를 많이 주는 편이라 깜짝 놀랐다. 주치의는 총 4명 재활의학과 주치의 3명에 내과 주치의가 1명이었다. 메인 차지(책임 간호사 정도 생각하시면 될 듯: 인계하는 사람)가 있었고 수간호사가 미드근무(9A-5P)까지 근무를 했다. 나는 서브차지로 들어갔는데 재활3과와 내과를 내가 담당하게 되었다. 만약 메인차지1명에 서브차지2명이 들어가게 되면 메인차지가 재활1과를 보고 서브차지가 나머지 3개과를 나누어서 보는 시스템이었다. 팀널싱과 펑셔널이 섞인 그런 근무형태였다.




그런데, 이곳은 EMR과 종이 카덱스(인수 인계하는 챠트 정도 생각하시면 된다)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적 카덱스인지... 이미 내가 신규간호사로 입사했을 때 차트를 몇 달 잠깐 쓰고 EMR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카덱스는 학생 간호사 때나 구경할 수 있는 구시대의 유물 같은 것이었다. 연필로 쓰고 지웠다 했어야 했기 때문에 글씨를 알아보게 써야한다는등 분쟁의 소지도 있었다. 속으로 왜 이런 걸 써서 이중으로 일하고 있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적응기간이라고 생각하고 3개월 정도는 네네 하고 다녔다. 원래 성격이었으면 "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왜 이중으로 일을 해요? " 라고 말하는 스타일이라 참느라 고구마 백만개...




그러나 나빼고는 원래 카덱스를 써왔던 사람들이었기에 불편함을 모르는 것 같았다. 요양병원 나이대 자체가 높은 편이라 나는 다시 막내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경력직이지만 신규인 요양병원 막내 간호사의 삶이 시작됐다. 선생님들이 모두 일 안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한 명 빼고... 데이 선생님들이 알아서 일을 해주어서 근 3달은 거저 얻어 굴러가는 월급 루팡이 된 느낌이었다. 일을 할려면 잘 할 수 있었지만 굳이 나서서 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적응기간이니까. 그리고 어쩌다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 더 기대하게 되는 사람의 심리. 굳이 나서서 내일을 더 보태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못하는 척을 한 건 아니지만.. 선생님들이 일하신다하여 일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 중에서 목소리 크고 참 독특한 선생님이 있었는데 이 선생님과 나는 잘 지낼 수 있었을까?

그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다들 조용하게 말했고 노멀했다. 직장생활 하기에는 나쁘지 않는 환경이라고나 할까? 후에 나는 더 큰 빌런은 따로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 빌런은 누구? 커밍순. 궁금하시다면 다음주 연재 만관부~^^





© dariamamont,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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