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의미 Dec 03. 2023

주치의가 퇴사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1)

빨간 딱지 과장님의 퇴사 

그렇게 내과, 재활의학과3과를 본지 얼마안 된 어느 날, 내과 주치의가 그만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약간 불통이기는 했지만 환자들의 얼토당토한 요구를 다 들어주는 스타일은 아니여서 좋았었다. 맺고 끊음이 분명한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미리 내놓은 PRN 오더를 쓸 수 없었고, 정규처방 같은 경우에는 이 과장님 아이디로 처방입력이 되서는 안됐다. 그래서 새로운 과장님이 오면 정규처방을 받아야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새로운 과장님이 왔고, 가정의학과 과장님이었다. 엄청 순둥순둥한 이미지였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그런데 이 과장님은 맺고 끊음이 분명하지 않았다. 환자 상태가 안 좋으면 '이럴 때 어떻게 해야하지?' 라며 혼잣말인지 나의 의견이 궁금해서 묻는 말인지 모를 말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처방 내주세요 라고 하면 요청하는대로 잘 내주는 과장님이었다. 한마디로 착했다. 일 잘하고 4가지가 없으면 두고두고 씹히는데 그런 스타일은 아니셨다.




또 기억에 남는 게 입사후 한 달, 원무과를 포함한 모든 병동에 간식을 돌렸다. 이렇게 돌린 과장님은 처음이라며 수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참 사람 괜찮으시다 하면서. 조금 답답한 점은 있더라고 이런 게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말이다. 물론 맞는 말이기는 했다. 그러나 어느날부터 가정의학과 과장님은 살이 쪽쪽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제로 봤을 때도 아파보였다. 너무 아파보여서 어느 날은 " 과장님 수액 한 대 놔드릴까요? " 라고 말할 정도. 과장님은 "퇴근하고 병원 가봐야죠."라고 말하면서 한사코 거절하시기는 했다. 결국 착한 과장님도 건강상의 이유로 그만두게 되었고, 그 이후로 페이닥터(아르바이트 개념 닥터)가 왔고, 나이가 연로하셔서 처방입력은 못하고 구두 처방으로 주신다고 했다. 그 구두처방을 심사팀에 이야기하면 심사팀이 입력해주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성실하게 회진을 다 도셨고, 천천히 환자들의 얼굴을 익히셨다. 짧게 근무하셨지만 그럼에도 참.. 의사다 싶었던..




그래서 드디어 새로운 과장님이 오셨는데, 재활3과 과장님, 가정의학과 과장님이 아예 뉴페이스로 배치되었다. 가정의학과 과장님은 손바닥을 펴면서 "안녕들 하십니까?" 라는 말로 인사를 시작하는 분이었다. 후에 이야기 하겠지만.. 같이 일하기 참 힘들었던 스타일이었다. 재활 3과 과장님은 갑자기 구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전에 과장님이 참 야무진 분이었다. 여자 과장님이셨는데 환자 한 명 한 명 꼼꼼히 보고 회진도 성실하게 돌았다.(원래 그게 당연한거겠지만 요양병원에서는 이것도 꼭 당연한 것은 아니다. 지구는 둥글고 사람들이 다양하듯이 의사, 간호사도 다양하기에) 맺고 끊음이 분명했고 환자들의 컴플레인을 다 받아주지 않는 점도 같이 일하기 수월했다.(나도 그런 주의라)








한 번 말한 내용이 있으면 메모해두었다가 오더도 빨리 빨리 제 시간에 잘 줬다. 환자 상태가 안 좋아져도 바로 조치를 취해주었기 때문에 전원을 보낸 다던가, 적절한 치료를 할 수 있었다. 사실 이게 당연한 건데 이렇게 하는 요양병원 의사가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소통이 잘됐고, 오더도 시기적절한 시기에 잘 주는 과장님이라 갑자기 사직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알고보니 병원측에서 적자로 나가달라고 이야기를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엥?" 왜 OO과장님이? OO 과장님이 아니고? " 싶은 부분이 있었다.

과장님은 너무 기분 상하고 다시 같이 일하자고 해도 절대 일하지 않을 거라면서 새로 오픈 하는 병원이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이번주에 면접을 보러 간다고 했다. 거주지가 이 동네가 아니기에 집 근처 동네는 왜 안가냐고 물어보니 이 쪽이 페이도, 근무조건도 더 좋다고 했다. 그래서 그러시냐고 하고 말았다.




병원 입장에서는 재활3 과장님이 나가면 재활3 과장님 환자를 재활1,2과, 가정의학과에 배치할 모양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주치의들의 반대로 그 계획은 무산되었고, 다시 재활3 주치의를 구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자 해고하기로 했던 OO 과장님에게 미안하다면서 다시 같이 일해보자고 했지만 OO 과장님은 돈도 중요하지만 존중받고 일하고 싶다고 하면서 거절하셨다고 한다. OO 과장님은 결국 오픈하는 이 동네 근처 병원으로 가게되었다. 투석도 하는 병원에다 오픈 병원이라 바쁠 것으로 예상되는 병원이었다. 과장님은 우스갯소리로 선생님도 같이 가자고 말했으나 같이 가기에는 너무 고생길이 훤히 보였다. 그리고 우리집에서 거리가 멀어지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서 적당히 둘러댔다. 핸드폰 번호를 알려달라길래 알려드렸다. 혹시 과장님 오픈하면 나도 가서 일하려고? ㅋㅋㅋ 사람 일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거니까. 그리고 OO과장님과 일하는 게 나 역시도 편하고 좋았으므로.




마지막 날, 과장님은 환자들에게 요만저만해서 그만두게 되었느라고 설명하면서 선물을 하나씩 돌렸다. 병동에게도 선물을 주셨는데 떠나는 자와 남는 자 사이에 남는 그 어색한 적막.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쓰러움은 어쩔 수가 없었다. 마지막 인사까지 그래도 참 과장님 답게 똑부러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몇 달 뒤, 나는 OO 과장님과 재회하게 된다. 그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말이다. 이 이야기는 김간호사의 뇌경색 간병일지에 나와있다. (챕터 제목이 '그래서 잘살아야 한다' 였던 것 같다. ) 그렇게 OO 과장님이 그만둔 자리에 재활3 과장님이 들어오셨다. 이 과장님을 3초 과장님이라고 지칭하겠다. 적어 드린 것도 잊어버리고

메시지로 보낸 것도 한 번에 오더 입력이 되지 않아서 3초 과장님이다.




 





그리고 새로오신 가정의학과 과장님은 처음에는 괜찮은 것 같았지만 지나면 지날수록 멀리하고 싶은 분이었다. 환자가 휠체어에 타고 앉아 있는데 환자를 보지 않고 건너 뛰고 회진을 돌았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것이 반복되었기에 "과장님, 30X호 OOO님 회진 안도셨습니다. " 라고 말하면 됐다면서 다음 환자 보러가자고 손짓을 했다. 이게 정말 뻥안치고 6~7일 정도 됐나보다. 나중에 그 환자는 주치의가 회진을 오는 것은 맞냐며 컴플레인을 했다. 사실 특별히 손갈 게 없는 환자였다. 그래서 회진 때 인사만 잘해주면 되는 거였는데 그걸 안하는 사람이라니.... 나중에 이야기하니 그 때부터는 회진을 돌기는 하기는 했다. 아프다고 하는 환자에게는 심리적 지지를 해주는 것은 좋은데 전혀 상관없는 주기도문을 외우라고 했다는 인계가 들어왔다. 설마 정말 그랬을까 싶었는데 내가 회진을 따라가니 정말 그랬다. 아.. 그래서 그렇게 인계가 넘어왔구나 싶었다.





그래서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주치의가 바뀔 때마다 적응해야했다. 왜냐하면 그에 맞게 서포트를 해야했고, 회진을 커버해야했기 때문이다. 같이 일할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파악하는 것은 우리의 주된 화제이자 관심사였다. to be continued






© dariamamont, 출처 Unsplash





제 글이 도움 되셨다면

재밌게 읽으셨다면

공감하셨다면

라이킷, 구독, 댓글





구독자님의 라이킷 구독 댓글은 큰 힘이 됩니다.

다음 글 업로드 속도가 빨라집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시다면 프로필 참조 

공감하는 댓글과 구독 시작을 클릭하세요  




저의 다른 콘텐츠가 궁금하시다면 유의미 클릭!

협업 및 제안은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이전 03화 고인물 대잔치, 진짜 빌런은 누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