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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의미 Nov 24. 2023

절대 빌런에게 당하지 않는 병동생활 꿀팁

그렇게 나는 종이 카덱스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재활3과와 내과 주치의 회진을 커버했다.

EMR은 익숙했고 챠팅하는 것도 전에 써봤던 프로그램이라 어렵지는 않았다. 그 중에서 서열 3위 선생님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선생님을 편의상 A라고 하겠다. A선생님은 인계를 들을 때도 집중력이 부족한 듯했다.




분명 나이트번이 말을 했는데도 다시 되물어보기 일쑤. 물론 그럴 수는 있지만 가끔은 아까 분명히 했던 말인데 왜 또 물어보지? 싶을 때가 있었다. 인계를 듣고 라운딩을 갈 때도 굉장히 딥하게 라운딩을 했다. 뭐 사람 성향이겠지만 급성기에서도 저렇게 라운딩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일과 환자에 대한 애정이 어마어마한 사람인가보다 생각했다. 환자들 이불 들쳐서 확인했고, 눈꼽이 껴있는지 아닌지도 보셨다.




그러다 눈꼽이 껴있기라도 하면 간병사에게 불호령이 떨어지기도 했고, 그 불호령을 예측할 수 없는 거라 괜히 옆에 있는 내가 민망하기도 했다. 장점은 환자를 꼼꼼히 본다는 것. 그에 따라 라운딩 시간이 너무 딜레이 된다는 점. 단점은 그러다 간병사와 트러블이 생기기도 한다는 점이었다. 지적받은 간병사는 앞에서는 말은 안하지만 뒤에서 나에게 A 선생님의 말투에 대해 기분나쁘다고 말하고는 했다. 조금 돌려서 기분 나쁘지 않게 이야기해도 되는데 그렇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화내는 것 처럼, 혼내는 것처럼 들릴 때가 많았다.




그리고 나서 회진을 준비하고 메인 차지이므로 인계 준비를 하는데 인계 준비를 할 때도 엄청 뭔가를 많이 적으셨다. 그래서 정말 궁금했던지라 (나중에는 종이 카덱스에서 EMR 카덱스로 옮겨갔다)



" 선생님 worklist에 다 적었는데 왜 또 종이에 적으세요? "



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다른 선생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고 했다. 아마 우리가 알 수 없는 본인만의 정리방식일거라면서 더이상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인지 일은 loss시키는 것이 적었다. 그치만 어떻게 사람이 하는 일인데 실수가 없겠는가. A 선생님도 의뢰서를 안받았다거나 실수할 때가 있었다. 내가 가장 어려웠던 점은 남들이 다 본인의 방식대로 일해야한다 혹은 해야한다라는 점이었다. 나는 여기서 심한 거부감이 올라왔다. 물론 처음 입사했을 때 환영해주고 많이 챙겨주기는 했다. 많이 알려주려고도 하셨다. 그런데 나도 급성기 병원 짬밥이 있고 병원 처음 다니는 것도 아닌데 나의 스타일을 단어하나 키워드 하나 다르게 썼다고 나처럼 이렇게 써야해 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분의 어려웠던 점은 갑자기 버럭한다거나 컨벌젼 할 때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실제로 예전 수선생님(수간호사)한테도 면담 하자고 해놓고 처치실안으로 들어가서 본인의 컴플레인 등을 조곤조곤 말했으면 좋았을텐데 소리를 지르면서 말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눈치보는 상황이랄까. 이런 상황이 종종 있었고, 이것은 직급과 대상을 가리지 않고 반복됐다. 같이 일하는 조무사 선생님에게도 그랬다. 보호자가 왔을 때도 친절하지 않은 말투는 고사하고 혼내는 말투로 말해서 보호자와 싸우기라도 할까봐 조마조마했다. 실제로 그렇게 컴플레인 하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또 나와 잘 맞지 않았던 부분은 말을 옮긴다는 것이었다. 정작 내 앞에서는 그렇게 말하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어느 주말이었다. A 선생님과 같이 일하게 되었는데 A선생님은 3off(3일 휴무)후 첫 복귀였다. 저런 친해지기 어려운 성격이었지만 '선생님 잘지냈어?' 먼저 말을 붙이기도 했다. 나는 그 전부터 A선생님에 대한 인내심의 총량이 차고 있었던 상태였다. 그래서 별로 일상적인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냥 인사치레로 선생님도 휴가 잘 다녀오셨냐 말을 했다. 그랬더니 어디가 좋았고 다음에 너도 가봐 이런식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우리층 환자도 아닌데 OOO님 돌아가셨어? 이런 말을 했다. 우리층에 있다 전실한 환자였다. 나도 잘 모르겠지만 톡에 올라왔으면 돌아가신 거 아니겠냐고 말했다. 우리층 환자 신경쓰기에도 바쁜데 남의 층 환자 부고를 물어보면서까지 캐물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ENTJ 입장으로서는)





그렇게 지난 3일 본인의 부재였을 때 일어났던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집요하게 캐물었다. 나는 너무 피곤했다. 귀에서 피가 넘치고 있었다. 그래서 듣다듣다 피곤했던 나는 카톡 한 번 읽어보세요 라고 말했다. 또, 인계 들었을 때는 다 알았다고 해놓고 본인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본인이 이해될 때까지 나를 붙잡고 물어보았다.  






"이 사람 근데 왜 이 때 가기로 한거래. 어머어머 이런 일이 있었어?"



그래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최대치로 대답했고 나중에는 지쳐서 선생님 저기 다 적혀있잖아요. 카덱스 보세요. 그리고 그거 별로 안중요해요. 라고 대놓고 말했다. 그렇게 각자 일을 하고 있었는데(여기서 일이란 챠팅이랑 카덱스 적기 등등이다) 갑자기 A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뭔가 내가 카덱스를 적었는데 본인의 폼?이 아니게 적었나보다. 그러면서 알려준다면서.



"이리 와봐 샘. 이거 이렇게 적으면 안되고 이렇게 적어야지. 이거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써봐." 했다. 내가 봤을 땐 어다르고 아 다른 조사, 표현방식이나 키워드의 차이였다. 왜 중요하지도 않는 걸 가지고 표현 방식의 차이일뿐인데 이해되게 쓰면 되지 않나 싶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왜 그런걸로 뭐라 하지싶었다. 그 때가 입사 3개월이 조금 안됐을 때였다.



" 선생님. 이거랑 이거랑 같은 말이잖아요. 이해만 되게 쓰면 되는거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면서 지우고 다시 쓰기는 했다. 그 때 갑자기 A선생님이 내 머리를 샤프로 밀었다. 나는 이 사람이 지금 제정신인가 싶었다. 노동부에 신고해볼까도 생각했다. 직장내 괴롭힘으로 아마 증인서줄 사람 많을 것 같은데?



" 선생님 지금 뭐하시는거에요? 이건 아니지 않아요? "



" 아 미안미안. 미안해 " A선생님은 꼬리를 서둘러 내리면서 한 마디를 더 보탰다.



" 나는 선생님 알려주려고 한 건데 선생님 혹시 기분 나빴어? "



" 네 기분 나빴어요. "



" 나는 선생님 생각해서 한건데 앞으로는 알려주지 않을게. "



" 네. 안알려주셔도 되요. " 사실 업무파악도 되고 있었고 능력 발휘를 안하고 있을 뿐이었다. 인계 안해서 속으로 꿀이다 생각하고 있던 참이라.



" OO샘한테 선생님이 버럭했다고 했다던데 이런 건가보네. " 혼잣말이지만 분명히 나를 저격해서 하는 말이었다.


" 그건 OO샘이 먼저 저한테 인계 때 이해안되서 물어봤는데 화내면서 이야기해서 저도 그렇게 말한건데요?" 이 이야기를 들으니 속으로 나 없을 때 고인물들께서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그려졌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내가 이렇게 말하니 겸연쩍었던 A선생님은



" 아 그랬어? " 하고 말았다.


  




후에 나는 수선생님에게 주말에 A선생님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고 수선생님은 A선생님을 따로 불러서 주의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주의도 줬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A선생님의 그런 점이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라는 거였다. 수선생님 피셜로는 본인도 당하고 있다면서 싸워도 괜찮으니(말로 싸우라는 뜻이었을 것 같다.) 계속 그렇게 말하면 아예 한 번 싸우라고 했다. 그러면서 A선생님 때문에 퇴사했던 직원이 한 둘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나이트 선생님이 내가 없을 때 뒷담화를 하더라 라는 말을 A선생님에게 들었다고 했다. 수선생님은 그런거 아닐 거라면서 말했고 나는 내가 없는 상황에서 앞에서 말하지 않고 뒤에서 말하는 거 자체가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수선생님은 뭘 그렇게까지 생각해라고 하며 그런 의도는 아니었을거야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게 있으면 제 앞에서 말하라고 하세요. 왜 기분 나쁘게 뒤에서 쑥덕거리냐고 한 마디했다. 수선생님이 수습하려고 해서 더이상 말하지는 않았지만 두고보자고 생각했다.




A선생님은 그럼에도 본인의 행동에 대해서 생각한다거나 반성하는 분이 아니셨다. 어딜 윗년차에게 고개 들고 또박또박 말하는 내가 천하의 위아래도 없는 사람이었을 뿐, 본인의 행동은 생각 못하고 친절한 B선생님에게 내 험담을 하는 걸 몇 번 봤다. 속으로 부글부글 끓었지만 한 번만 내가 없는데서 내 이야기를 해보기만 해라 벼루고 있었다.




범접할 수 없는 성격이었고, 본인이 확인할 수 있는 일인데 본인이 evening 근무에 들어오면 다음날 데이때 확인하라고 넘겨버리기도 했다. 아마 본인은 자기가 일을 엄청 완벽하게 한다고 생각하실텐데 B선생님과 나는 그런 부분을 몇 번이나 참고 넘어갔다. 반면에 본인 근무에 누가 뭐 하나 안해놓기라도 하면 왜 안해놓냐고 큰소리치고 투덜거리는 스타일이라 모든 사람들이 힘들어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점은 이 선생님이 무서워하는 나이트 선생님, 이브닝 선생님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분들에게 인계를 들을 때는 잘 물어보지도 못하고 인계를 할 때는 안해도 될 일까지 내가 하고 갈게요 라고 말해서 오잉?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실제로 그거 이브닝 때 하면 되는 일인데 왜 데이가 하고 간다고 해요? 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때는 몰랐다. 고인물이 왜 고인물이라고 하는지





© dariamamont,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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