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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의미 Dec 17. 2023

주치의가 퇴사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3)

O 과장님편

그렇게 환자의 회진을 건너뛰던, 환자를 가려서 회진하던 가정의학과 과장님이 그만두시게 되었다. 그것 외에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환자에 대한 존중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으며, 사람 가려가면서 일하나? 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물론 모든 과장님, 의사가 그런 건 아니다. 부디 편견없이 의료진을 봐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과장님이 퇴사하시고 새로운 과장님이 오셨다. 알고보니 예전에 이 병원에서 과장님으로 계시다 타병원으로 가신 분이라고 했다. 개원한 적도 있다고 했다. 과장님이 오시고 나서 처음에는 정말 트러블이 많았다. 한 번 오더를 내면 테이퍼링(감량)이라고는 없는 고집을 내비치셨으며, O 과장님 환자들은 타병원에서는 받아주지 않을 것 같은 중증도, 보호자가 없다거나 노답인... 환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걸 표현할 수 없으니 우리는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고 당장 기저귀나 의료소모품(드레싱 재료대, 처치대)을 어디에 청구해야 하는지부터가 문제였다. 특히 O과장님 환자중에 욕창이 심한 환자가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그렇게 친절하다는 느낌이 아니었고, 오더를 달라고 요청하면 피드백도 없고 오더도 없었다. 처음에는 이게 무지 답답했으나 지금은 피드백이 그래도 있는 편이다. 특히 환자 상태가 안 좋은데 여기서 치료할 수 없음에도 전원을 보낸다거나 본원에서 치료하려고 해서 힘들었던 부분이 있다. 더군다나 그 환자는 턱도 빠지고 욕창도 점점 심해지고, 항생제나 수액을 달아도 열이 나는 등... 그런 환자가 몇 명 있어서 전원을 보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전원 보내기까지 주치의가 이렇다할 정확한 결정(만약 본원에서 치료할거면 항생제, 수액 등을 처방해서 행위를 잡는다거나 등의 처치를 한다거나 전원 보낼거라면 빨리 병원에 연락하여 컨택하고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것)이 지지부진 했다. 웬만하면 여기서 치료하자는 식인 것 같았다. 그래서 과장님이 결정하실수 있도록(?) 중간중간 상황 보고를 하고 기분 나쁘지 않게 언급해야 했다. 그 역할을 수선생님(수간호사)이 하셨는데 그 과정에서 과장님과 마찰이 있기도 했다.




요양병원이라 연세가 많은 분들은 회진 때 자고 있기도 했는데 환자들을 깨우는 방식이... 남달랐다. 그래서 나는 과장님이 환자를 깨우기전에 " OOO님 과장님 오셨어요. 일어나세요. 아침이에요. " 라고 선수를 치기도 했다. 그리고 L-tube(코줄)를 교체하는 날이면 몇시에 교체할지 물어보는데 아무런 답이 없었다. 그냥 이따가 할게요. 라고 말해서 그 이따가가 도대체 몇 시인건지 아무도 몰랐다. 정신없이 인계하고 있는데 갑자기 훅 올라오셔서 갑자기 서포트를 해야할 때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도 얼마나 까칠한 지 이건 이렇게 안했다. 왜 가운을 안 입냐 등등 acting 선생님들이 불만을 토로할 때가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처음 오셨을 때보다 많이 유해지셨다. 아마도 지금은 중증도 높은 O과장님의 환자가 별로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층에서는 여전히 O 과장님으로 인해 힘들다고 들었다.








O 과장님의 특징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절대 내 사전에 약용량 감량은 없다는 점.

그리고 약용량을 많이 쓰고 약을 많이 쓴다는 점. 그래서 가끔 이 증상에 약을 이만큼이나 쓴다고? 싶을 때가 있었으며, 열이 나는데 이렇게 약을 준다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의사결정권, 오더 결정권은 주치의에게 있었으므로 대놓고 말은 못하고 OOO님 현재 기침 증상 있어 기침약 3알 하루 3번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침약 추가로 3알을 하루 3번 더 드리는 거 맞나요? 이렇게 되면 총 6알을 아침, 점심, 저녁에 들어가는 꼴이다. 그래서 용량을 2배로 주는 격인데 이렇게 주는 게 맞는지 확인하면 그런건 안 물어봐도 알아서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애매한게 환자마다 증상마다 다 너무 달랐으며 이 기준이 어떨 때는 이렇고 어떨 때는 이렇고 일관적이지 않아 애매했다는 점이다. 오더를 받아 수행하는 간호사 입장에서는 주치의에게 어떻게 말해야 기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이고 우리가 원하는 오더를 받아낼까? 하는 점을 늘 생각하게 했다. 그래서 우리는 늘 O과장님의 의도를 알아차리려고 레이더를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약간 귀여운 점이 있었는데 꽁한 부분이 있었다. 간병사가 모르고 한 말(개원했던 적이 있었던 병원이 있었는데 그 병원이 문을 닫았더라는 말이었다. 그 문닫은 병원은 O과장님 병원이었던 것)인데 앞에서는 괜찮다고 해놓고 진료실에 내려가서 기분이 언짢으셨는지 담당 간병사 방으로 전화를 해서 뭐라고 하셨다고 한다. 뭐라고 했는지까지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과장님 전화를 받은 간병사 입장에서는 헙.. 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라운딩하면서 간병사의 제보를 받고 O과장님 앞에서는 조심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부서장 회의에서 우리가 보낸 메세지를 출력해와서 O과장님에 대한 컴플레인 1개를 하면 2개의 패를 펼쳐보이시는 신공을 뿜으셨다고 했다. 우리 병동 뿐만 아니라 다른 병동에서도 O과장님에 대한 불만은 터져 나왔고 병원에서는 알고는 있지만 뭐 대단한 개혁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그냥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수개월이 지난 지금은 O과장님도 약간 유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다른 층에 중증도 높은 환자들이 있는 병동은 힘들다고 들었다. 그래도 이제 A라고 피드백을 주면 B혹은 C, D피드백이 오는 편이며, 오더도 요쳥하면 빠른 시간내 주시는 편이다. 가끔 고구마 백만개 일 때도 있지만 처음 왔을 때에 비하면 양반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을 발음을 뭉개며 웅얼거려서 알아듣기 힘들지만 이제는 "과장님 제가 잘 못들어서요. 다시 한번만 말해주실 수 있으세요?" 까지 말 할 수 있는 라포가 형성되었다. 예전에는 많이 까칠했는데 지금은 해달라는 대로 해주시는 편. 사실 아직도 정체를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이가 되어갔으면 좋겠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겠지? 주의.





© dariamamont,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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