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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의미 Jan 07. 2024

손 안가는 첫째 vs 엄마 껌딱지 둘째

첫째를 임신했을 때, 당연히 자연분만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임신 8개월쯤 됐을 때 내 몸에서는 이상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몸이 터질듯이 붓더니 신발이 맞지 않을 정도로 몸 전체가 부었다. 결국 응급 수술로 분만을 해야했다. (이유는 임신성 고혈압이었다. 이 과정이 궁금하다면 분만 2회차 김간호사의 출산 로드맵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34주만에 첫째를 낳았는데 이 아이는 혼자서 자발호흡이 되지 않았고, 고관절은 탈구 되어 있었으며 입에 빠는 힘이 없어서 분유를 먹지 못한다고 했다. 당시 내 몸도 심각했지만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다. 그래서 아이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했고 10일만에 이 3가지 문제가 모두 해결되어 집으로 퇴원할 수 있었다. 아이는 참 순둥순둥했다. 신랑을 닮아서인지 신생아때 낮밤이 바뀐 것을 빼고는 수면 교육을 하자 따라와줬다. 생후 60일이 지나자 통잠을 잤다. 낮잠도 잘자줘서 그 시간에 책을 쓰거나 집안일을 할 수 있었다. 밤 8~9시에 자면 다음날 8시~9시에 일어나는 첫째 때문에 너무 행복했다. 어쩜 이렇게 순하지? 육아가 힘들다고 하는 엄마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브런치북] 분만2회차 김간호사의 출산로드맵 (brunch.co.kr)





첫째는 미숙아로 태어났지만 집에 오자마자 왕성한 식욕을 보였다. 모유 양이 차지 않아서 거부한 첫째 때문에 두 달만에 완전 분유로 갈아탔다. 다행스럽게도 미숙아들은 태어나고 나서 추적검사를 하는데 그 모든 검사에서 첫째는 양호 판정을 받았다. 나역시 예약하고 갔음에도 대기해야하는 대학병원 시스템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이 모든 검사를 패스하고 나서 동네 소아과로 옮겼다. 노는 것도 혼자서 잘 놀았다. 다만 먹을 것을 제 시간에 갖다주지 않으면 화를 냈는데 그 정도야 모든 아이들이 그럴테니까. 그렇게 작았던 아이는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며 분유를 먹고 무럭무럭 자랐다. 영유아 검진때마다 작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키와 몸무게가 급격하게 늘더니 만3세 정도되니 또래보다 크다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지금도 키나 몸무게가 또래보다 크다. 올해 9살이 됐는데 키가 커서 아틀란티스를 타는 게 소원인 여느 초등학생이다.





첫째는 어렸을 때는 호기심도 많고 모험심도 강한 모습을 보였지만 5세를 기점으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여자 아이 특유의 감수성으로 유치원에서 친구랑 속상했던 일을 말하기도 하고 초등학교 들어가고 나서는 엄마 나 친구 없어 라는 말로 나를 당황하게 했다. 알고보니 정말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을 깊이 나눌만한 친구는 없다는 뜻인 것 같았다. 쑥쓰러워하고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전하는 것을 주저했다. 내가 솔직하게 말하면 친구가 상처받으면 어쩌지? 미움받을까봐 혹시라도 상대방의 마음이 아플까봐 그렇다고 했다. 그렇지만 아기였을때부터 독립적이었고 스스로 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다. 그 점은 지금도 그렇다. 그러다 첫째가 5살 때 동생이 태어났는데 동생이 태어나고부터 많은 부분을 동생에게 양보해야 했다. 그 당시 모유수유를 했었는데 둘째는 모유를 너무 좋아했다. 막연히 모유수유가 좋다더라라는 환상을 갖고 있었던 나는 1년만 먹이고 끊어야지 했지만 모유를 끊을 생각이 없던 둘째 때문에 26개월이나 모유를 먹이게 된다.(어쩌다 이렇게 수유하게 됐는지는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김간호사의 출산 로드맵에 나와있다. 그 이야기를 참고해주시길 바란다.)  






 


나는 그 당시만 해도 모유수유를 그렇게 자주해야 하는지 몰랐다. 첫째는 직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험이 없었던 탓이었다. 거의 2~3시간 간격으로 모유수유를 했는데 온몸이 쪼개질 판이었다. 둘째는 또 젖을 빨아야 잤는데 그래서 더 몸이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그 당시 첫째에게는 신경을 못 쓸 때가 많았다. 첫째는 동생 모유수유 하지 말라는 말을 할 정도 였으니(그 때는 첫째가 더 어리기도 했었고 말이다.) 둘째는 그 때부터 모유사랑, 엄마 젖에 대한 애착을 갖기 시작하더니 엄마 껌딱지가 되었다. 나와 잠시만 몸이 떨어져도 예민해서 금방 알아챘다. 그리고 그 알아채는 순간 엥 ~ 하고 울어버려서 둘째를 낳고 최근 3년 동안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것 같다. (그 때 몸이 급격하게 안 좋아진 것 같다.)지금도 내가 새벽에 글을 쓴다거나 일어나서 뭔가를 하고 있으면 "엄마" 하고 울어버려서 옆에서 다독거려야 잠을 잔다. 지금은 아기 때보다 그 빈도나 횟수가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집 안에서도 내가 화장실에 가거나, 주방에서 다른 방으로 가면 "엄마 어딨어?" 하고 찾아다니는 껌딱지다. 그나마 모유수유를 끊고 24개월이 지나가니 조금 나아진 편이다. 그 전에는 3교대 근무를 하면서도 모유수유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했을까 싶은.. 나 자신... 대단쓰





그렇게 통잠을 잤던 첫째와 달리 둘째는 기질 자체가 예민하고 자다가도 자주 깨는 모습을 보였다. 모유 수유를 해서 그런 점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이 아이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나의 근무형태가 안정되고 아이도 36개월이 넘어갔기 때문에 수면 패턴이 훨씬 더 나아졌다. 한번도 안 깨고 잘 때도 있으니 나로서는 입틀막이다. 이런 둘째 때문에 생후 1년 동안은 도우미 선생님이 오셔야 그나마 편하게 잘 수 있었다. 그 때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이다. 아이를 재워놓고 집안일이나 뭔가를 하려고 해도 등센서 발동. 이럴 줄 알았으면 모유수유 같은 건 하지 않았을 텐데 하면서 말이다.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무엇을 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허리디스크로 절대안정 하던 시기에도 영어 공부, 응모, 공모전을 준비했었다) 둘째는 그렇게 엄마가 자신에게만 집중하도록 그렇게 만들었다. 그래서 굉장히 답답했고 뭔가 내 삶에서 해소되지 않은 것 같은 갈증이 있었다. 가끔 남편이 아이를 봐주기도 했으나 내가 없으면 아이가 어떻게 나올지 뻔히 예상되기에 집밖으로 별로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그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수면 부족, 모유 수유로 인한 삭신 쑤심이었다. 남편이 둘째를 재우려고 했지만 둘째는 아빠와 같이 자는 걸 거부하고 힘껏 울어제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둘째에게 화도 내고 짜증내면서 둘째를 안아서 재웠던 기억이 난다. 첫째는 첫째 나름대로 엄마 사랑 동생에게 뺏겼다고 울고 남편은 남편 나름대로 내 옆에서 자고 싶은데 집도 좁고 둘째가 아빠가 오는 것을 경계해서 오지 못했다. 지금도 둘째는 첫째보다는 어리기도 하고 손이 많이 가는데 고집이 훨씬세고 개구쟁이라 나갈 때마다 나는 감독관 모드로 나간다. 오늘은 이 아이가 어떤 장난을 칠지, 어떻게 행동할지 알 수 없어서다. 순둥순둥한 딸 키우다 나랑 똑닮은 아들 키우니 이건 뭐.. 육아 2회차지만 쌉초보가 되버린 느낌이랄까. 전혀 다른 신세계가 펼쳐졌다.








한줄평: 첫째랑 둘째는 그냥 각각 독립된 다른 사람이다. 남매여서도 다르지만, 그냥 다르다.





© dariamamont,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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