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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의미 Mar 16. 2024

나는 빨리 어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새벽부터 일하러 나가는 엄마, 밖으로만 도는 아빠. 그러나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가정 상황 속에 나는 빨리 철이 들어야만 했다. 초등학교 2~3학년 무렵 혼자 라면, 계란프라이, 간장밥, 계란말이 정도는 할 줄 알았으며 밥이 없으면 쌀을 씻어서 밥을 할 줄 알았다. 그때만 해도 가스레인지를 사용하던 시대였다. 지금처럼 인덕션, 하이라이트가 흔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혹시 만드는 중에 화상이라도 입었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우리를 집에 두고 나가서 돈을 벌어야만 했던 부모님의 마음도 지금은 이해가 된다. 왜 우리 집에는 엄마가 집에 없을까?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엄마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웠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눈치가 빠른 아이였던 나는 현재 우리 집 상황에서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속으로는 부러웠지만 아니야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밖에서 일해야 하는 엄마도 정말 힘들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가장 서러웠던 것은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날씨가 추운 날이었는데 교문 밖에 우산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 엄마들을 보며 혼자 우산도 없이 걸어갈 때 가장 비참했던 것 같다.





당시 피아노 학원, 속셈 학원을 다녔는데 문제는 학원에 다녀와도 시간이.. 3시 정도라. 부모님이 들어오시는 시간까지는 4~5시간이나 공백이 있었다. 활달했던 성격과 운동 신경도 좋은 편이라 동네에서 남자아이들과 정말 재밌게 놀았다. 그러나 저녁 6시가 되면 밥 먹으러 오라고 부르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중에서 나와 동생의 이름만 불리지 않았다. 그때 신나게 놀다가도 부모님의 부재에 서러워지고 공허함을 느끼고는 했다. 공부는 잘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그것만이 지금의 삶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운동도 잘하고 빨리 배우고 적응을 잘하는 편이었던 나와 달리 동생은 한참 부모님의 보살핌이 필요할 때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말이 느리고 운동도 잘 못했다. 동네에서 얼음땡이나 술래잡기를 하면 꼭 술래가 됐다. 그런 동생을 보호한다고 동생을 놀지 못하게 한 적도 많았다.





내 딴에는 동생이 같이 놀기만 하면 술래가 되니 차라리 놀지 않으면 그럴 일을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따라나서는 동생을 귀찮아하지 말고 잘 챙겨주고 놀아줄 걸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동생은 그래서 혼자 놀 때가 많았고 지금은 잘 자라서 대학원도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회적인 부분으로 봤을 때는 어릴 때 상호작용이 덜 되서인지 사회성이 활발해 보이지는 않는다. 친구는 있는 것 같긴 한데 그렇게 딥한 사이는 아니라 잘 모르겠다.(남매 사이는 대체로 그런 듯하다.) 그래서 지금도 동생의 인간관계가 걱정되는 편이랄까. 겉으로는 츤데레인척 했지만 속으로는 동생을 걱정했던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동생에게 좋은 누나는 아니었던 것 같다. 동생이 저금통에 모아놓은 돈을 몰래 빼가기도 하고 부모님의 부재로부터 오는 책임감과 스트레스를 동생에게 풀기도 했다.





그래도 뭐랄까. 그 시절에도 나는 반드시 성공할 거야. 부모님이 있건 없건 주눅 들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 같다. 오히려 부모님이 집에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나를 지키고 동생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빠를 만나 고생하는 엄마를 보면서 내가 나중에 잘되어서 엄마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고 예쁜 옷도 사주고 싶었다. 현실은 생각보다 삶이 만만치 않아 내 새끼 내 한 몸 건사하느라 바쁘지만 말이다. 의도치 않게 승부욕에 불타올라 축구를 하다가 남의 집 유리창도 2~3번 깨고 남의 집 등도 깼으나 동네 아줌마들은 우리를 가엾게 여겨주었다. (물론 나중에 엄마가 배상했다) 생각해 보면 먹을 것도 주시고 밥도 얻어먹은 적도 있다. 그러나 매일 그렇게 할 수는 없었기에 동생과 나의 주식은 라면이었다. 엄마는 지금도 내 키가 작은 게 그때 영양섭취를 잘 못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서 미안해한다.









© phammi, 출처 Unsplash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가정 통신문을 보내왔다. 걸스카우트, 보이 스카우트 가입 안내문?, 통신문이었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굉장히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걸스카우트, 보이 스카우트 옷을 입고 가는 언니 오빠들이 멋있어 보였다. 그런 모든 것을 종합해 봤을 때 걸스카우트에 가입하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하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엄마가 그러면 더 일해야 하니까. 하굣길에 친구들은 거리낌 없이 먹던 분식도 마음 놓고 사 먹지 못했다. 엄마가 준 돈은 나와 동생의 밥 값이었다. 그 돈으로는 라면을 사야 했으므로. 그 때 돈 앞에서 비참해진다는 게 어떤 건지 깨달았다. 나중에는 너무 먹고 싶어서 컴퓨터 방과 후 수업을 들으라고 준 수강료로 소위 말하는 삥땅(?)을 치고 먹은 적도 있다. 엄마 아빠는 아마 바빠서 모를 거니까. 내가 방과 후를 갔다 오고 나서도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으니까 말이다. 그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어른이 돼서 돈도 벌고 회사도 다닐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에게 경제적 독립을 의미했다. 만약 대학에 가게 된다 하더라도 내가 학비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전략을 잘 짜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아빠의 사업 실패로 인한 생활고에 시달렸던 사람이라 나에게 늘 공무원, 안정적인 길을 강조했다. 그런 세뇌 교육 때문인지 나 역시 사업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자랐다. 나중에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점은 꼭 그렇지 만은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 아무튼 그런 부모님의 기대대로 간호학과에  입학하게 되었고 아직까지 전공을 업으로 삼고 있다. 그때는 시간이 참 더디게 간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눈 한 번 감고 일어나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직장에 다니고 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을 원망한 적도 많다. 하지만 내가 부모가 돼서 생각해 보니 그런 힘든 환경 속에서도 두 분이 가정을 지켰다는 것.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 있어줬다는 것 그 자체가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부모님에게 감사하다. 아마 엄마가 가장 힘드셨을 것이다. 언젠가 엄마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엄마는 돈을 벌어도 자신을 위해 쓸 수 없다고 했다. 젊었을 때는 자식 부양, 이제 자식들이 크고 여유가 생기니 할머니를 부양하느라 막상 본인을 위해 쓸 돈은 없다고 했다. 나는 또 그런 엄마가 짠하고 지금도 일하는 엄마가 안쓰러울 뿐이다.

 




그래도 그 시절이 나쁜 기억으로만 남지 않았던 것은 진짜 재밌게 놀았다는 점, 이웃 주민들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 지금도 그 따뜻함의 감정이 남아있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 동네 앞동네 옆동네 집에 사는 모두가 마이 프렌드였고, 언니 동생 오빠였다. 그 속에서 놀면서 나는 구기 종목과 달리기를 마스터했다. 내 운동 신경이 늘었던 점도 이때가 아니었나 싶다. 학교에서 구기종목 대표, 계주 대표를 늘 했었다. 놀이터에서 슬리퍼가 찢어지도록 놀았고 지금 우리 아이들이 노는 것보다 훨씬 더 재밌게 여러 사람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나며 놀았다. 여자 친구들과도 놀았지만 내가 이사 갔던 동네는 남아 인구 밀집도가 높아서 남자아이들과 많이 놀았다. 그래서 지금도 남자들과 말하는 게 어렵지 않은 점(?)도 있지 않나 싶다. 내 평생을 통틀어 가장 순수했고 재밌게 놀았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노는 게 어려워졌다는 점이 많이 아쉽다. 키즈카페가 없어도, 체험하지 않아도 온 동네 모든 사람이 내 친구였고, 같은 반 친구네 집에 스스럼없이 놀러 가고 같이 라면 끓이기 주먹밥 만들기 등등, 개구리도 잡으러 다녔던 그때가 그리워질 때가 종종 있다.







한줄평: 계속 좋은 일도, 계속 나쁜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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