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그시절 누구나 그랬듯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그때는 장사하는 할머니를 대신해 집안일을 하는게 너무 싫었노라고. 그래서 만난 사람이 삼촌 병원에서 만난 아빠였다. 그래서였는지 엄마는 나에게 집안일을 전혀 시키지 않았다. 그 시간에 너의 미래, 꿈을 그리는 시간을 더 가지라고 하는 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참 깨어있던 분이었던걸로! 그 시절 나는 그런 엄마의 성실한 등을 보고 자랐다. 그래서 어긋날 수 없었고, 어긋나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뭐랄까. 이 달라지지 않는 삶을 변화시킬 것이라고는 내가 경제적인 독립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가 초등학교 3~4학년때였으니 그시절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 철이 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시간은 야속하게도 빨리 흘러갔고 엄마의 바람대로 나도 동생도 직장에 다니게 되었고, 적어도 돈문제로 엄마를 속썩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을 했고 부모님에게 아들 딸 손주들을 안겨드렸다.
신혼때, 통돼지 바베큐를 해주겠다고 남동생과 부모님을 초대해 2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밥을 해드린 적이 있었는데 아빠는 내가 너한테 밥 차려주는게 훨씬 빠르겠다고 했다.(ㅋㅋㅋ) 지금은 산전수전 공중전 다겪고 주부몬 9단까지는 아니어도 5단 정도는 된다. 손이 빠른편이라 처음 보는 요리도 대강 간은 맞추고 뚝딱뚝딱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는 정도는 됐다. 그 때도 나는 식단을 하고 있던 터라 엄마에게 내가 먹는 양질의 키토 음식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얼마전 보고온 <3일의 휴가>의 여운이 남아서였는지 엄마에게 밥을 차려줄테니 밥먹으러 오라고 연락을 했다. 엄마는 알겠다고 하면서 마침 옆에 있는 아빠에게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고 한다. 아빠는 신혼때 2시간이 걸려 먹은 통돼지 바베큐의 기억 때문인지 거절하셨다고 한다. 엄마는 아무거나 잘 드시는 편이라 내맘대로 크림 파스타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파스타면의 탄수화물은 어마어마했으므로 미리 단백질이 풍부한 면으로 삶았다. 문제는 아무리 내가 크림 소스를 꾸덕하게 만들어도 절대 간이 배지 않는다는 점. 아마 단백질면 특유가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추측했다. 엄청 오래 끓였는데도 절대로 간이 배지 않는다. (ㅋㅋㅋ) 끓이면서 망했다 싶었지만 의외로 엄마는 먹을만하네 하면서 후루룩 찹찹 드셨다. 내가 먹어봐도 소스랑 면이 따로 노는 맛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맛있네 했다. 나름 엄마가 좋아하는 소불고기랑 상추쌈까지 올렸다. 그래서 단백질 파스타면은 오일 파스타에 해야하는 거구나 라는 소중한 경험을 +1 획득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현실자각타임이 왔는데 나 바쁜 것도 맞고 애들 키우느라 정신 없는 것도 많은데 엄마 아빠가 차려주는 밥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왜 내가 차려줄 생각을 못했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사실 나 먹을 때 숟가락 젓가락 밥 한그릇 더 푸면 되는 일인데, 엄마랑 휴무 맞을 때 종종 초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식단에 성공하고 나서 엄마에게도 키토 식단과 저탄고지 식단을 널리널리 전파중이다. 그러나 또 살다보니 이 접선 자체도 쉽지 않았으니 부모님 생신이라던가 어버이날이 되서야 식사 약속을 잡기에 급급했다. 친구들 만날 시간을 줄여 부모님도 종종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왜 그 때 그러지 못했을까 후회하기보다는 그래도 그 때 내가 해드린 밥 엄마가 잘 먹었지 하는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비록 호텔 부페는 아니더라도. 짜장면 한그릇 시켜 먹으면 어떻고. 소박하게 집에서한 집밥이라면 어떠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한 것부터가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작가의 말: 다음에는 엄마만을 위한 키토 미식회 개최 예정! 탕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