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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적루씨 Jan 10. 2022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그래도, 워킹맘] 너의 엄마가 되어 참 행복해



아들아, 2022년 새해가 밝았어.

올해 엄마는 40살, 아들은 5살이 되었어.

새해 복 많이 받으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받고 있지요"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으니 너를 낳으러 병원에 간 날이 생각나. 병원에 도착해서 분만실 옆에 누워 있는데 저 노래가 들려왔어. 평소 같았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노래 가사들이 하나씩 마음을 파고들어 와서 눈물이 나더라. 평소 신을 믿지 않는 나였지만 그날은 모든 신을 불러서 내 아이를 지켜달라고 마음속으로 빌었지. 아직도 분만실의 차가웠던 침대의 감촉과 왜인지 모르게 따뜻했던 풍경과 그때 들었던 저 노래가 생각나.


그날은 엄마가 처음으로 만 보를 걸은 날이었어. 막달이 다가오면서 배가 하루가 다르게 나오는데 다른 임산부보다 배가 처져 있어서 의사 선생님이 걱정을 했어. 그래서 차라리 많이 걸어서 빨리 출산하자고 했었지. 하루에 만 보를 걸으라고 했는데, 차마 엄두가 나지 않더라. 이 추운 겨울날 한껏 부풀어 오른 배를 가지고 만 보를 걸으라니. 그날은 엄마가 임산부 수영을 가는 날이었어. 그래서 집에서 수영장까지 걸어갔어. 수영이 끝나고는 같이 수영하는 사람과 수제버거를 먹고 집까지 걸어왔지. 만 보가 생각이 어렵지 막상 걸어보니깐 기분이 좋더라. 싸늘한 공기가 코끝에 닿는 기분이 좋았어.


저녁에 아빠와 함께 밥을 먹고 있는데 뭔가 물컹한 게 아래로 쏟아지는 느낌이 나더라. 때는 2018년 2월 6일. 예정일을 12일 앞둔 시점이었어. 엄마는 곧 깨달았어. 양수가 터졌구나. 이제 네가 나오려고 하는구나. 하고. 아빠가 놀라서 허둥지둥거리고 있길래 병원에 전화하고 출산 가방을 챙기라고 했어. 마침 그 전주 주말에 출산 가방을 챙겨서 거실 한쪽에 두었어. 미리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나 봐. 원래 미리 챙기는 성격은 못 되는데 네가 나올 걸 준비했다는 듯이 미리 준비해놔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엄마는 병원에 도착해서 침대에 누워서 각종 검사를 했어. 양수가 터지고 나서 병원 도착할 때까지는 진통이 하나도 없어서 걱정했어. 양수가 터지면 24시간 이내에 분만해야 한다고 해. 그래서 혹시나 24시간 이내에 못 낳을까 봐 걱정을 했어. 병원에 도착하고 나서도 한동안 진통이 없다가 갑자기 진통이 오기 시작했어.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강력한 고통이 주기적으로 찾아왔지. 임산부 수영에서 배운 호흡법을 생각하려고 애쓰면서 힘을 주었는데 그게 잘 되었는지 병원에 도착하고 나서 2시간이 지나서 네가 나왔어. 자궁이 열렸다는 말에 눈빛이 바뀌었다며 아빠는 엄마를 무서운 사람이라고 불렀어. 하하


처음 만난 너는 온몸이 퉁퉁 불었고 몸이 찌글찌글했어. 너의 태명은 '랑랑이'였어. '현우'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전까지 너의 이름은 '랑랑이'였지. 왜 랑랑이냐고? 이모가 태몽을 꿨는데 호랑이 2마리 나왔대. 그중에서 한 마리는 엄마에게 야구 방망이를 건네주었다고 하는데, 미래에 네가 야구선수가 될지도 모르겠구나. 그리고 임신한 후에 엄마도 태몽을 꾸었는데, 금반지 2개를 줍는 꿈이었어. 그래서 쌍둥이를 낳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남들의 1.5배는 큰 네가 태어났어.


세상에, 너무나 재미없는 이야기지?

출산 이야기라니.

재미있는 영화 이야기해볼까?


엄마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원더풀 라이프'라는 영화가 있어. 그 영화는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이 배경인데, 죽은 사람들이 천국으로 가기 전에 모이는 곳이야.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7일 동안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딱 하나 골라야 해. 직원들은 그 순간을 영화로 재현해주고, 사람들은 그 기억만을 간직한 채 천국으로 떠나게 돼.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순간을 골랐는지 아니? 아주 소소한 일상의 순간들이야. 엄마의 무릎에 누워 귀 청소를 받았던 기억이나 어렸을 때 대나무 숲에서 그네를 타고 놀던 기억들. 너무 소박해서 말할 수 없었던 순간들. 엄마는 예전에 이 영화를 보고 나는 어떤 순간을 고를까 내내 고민했었어. 그런데 이제 찾은 것 같아. 엄마는 너를 처음 만난 순간, 너를 처음 품에 안은 순간을 선택할 것 같다.


사랑하는 아들아, 살면서 힘든 일이 참 많을 거야. 그럴 때마다 우리를 지탱해주는 건 지나간 순간들의 아름다움이란다. 엄마는 아들이 기억에 남을 소중한 순간, 순간들을 만들면서 매일을 살아나갔으면 좋겠어. 사랑하는 현우야, 엄마 아빠에게 와줘서 고마워. 네가 있어서 비로소 인생의 행복에 대해 알게 된 것 같아. 먼 훗날, 영화 '원더풀 라이프'의 배경으로 갔을 때 7일 동안 머리 아프게 고민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멋지게 '원더풀 라이프'를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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