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워킹맘] 희미해져 가는 나를 찾기 위해 새벽을 택했다
새벽 5시가 되면 알람이 울린다.
삐삐삐삐
혹시나 남편이나 아이가 깰까 봐 몰래 침대에서 빠져나와 휴대폰의 알람을 끈다. 까치발로 방을 나와 새벽기상 인증사진을 찍는다. 하늘 사진을 찍는데 계절마다 밝음의 정도가 달라 재미있다. 화장실로 가서 양치하고 영양제와 함께 물을 마신다. 좋아하는 홈트 영상으로 10분 운동을 한다. 커피를 내리고 책상에 앉는다.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다. 그렇게 나의 아침은 새벽 5시에 시작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나는 내가 새벽형 인간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나는 지독히도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었고, 밤늦게까지 무언가를 하는 걸 좋아했다. 주말이 되면 평일에 밀린 잠을 보충하려고 오후 2시나 3시까지 잤다. 그런 날은 일어나서 잠깐 할 일을 하고 나면 금세 저녁이 되어 버린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지독한 올빼미였다.
아이가 태어나서도 올빼미 기질은 어디를 가지 않았다. 아이를 달래서 재우고 나면 방을 몰래 빠져나와 나의 시간을 즐기며 할 일을 했다. 그렇게 새벽 2시나 3시에 잠이 들곤 했었다. 아이가 잠이 들어야 내 할 일을 할 수 있었기에 나는 필사적으로 아이를 재우기 시작했다. 따뜻한 물로 목욕을 시켜주고, 자장가를 불러주고, 책을 읽어주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아이가 잔 뒤에 해야 할 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아이가 자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온갖 짜증을 부리고 있었다.
늦게 잠을 잔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았고, 수면시간 부족으로 종일 날이 선 상태로 지냈다. 회사 일에 불평불만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친절해야 할 가족들에게 짜증만 내는 언제나 화를 내는 엄마가 되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나는 아이를 재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야.
아이도 나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
아이랑 같이 놀아주고 내 일도 할 수 있는 방법을'
그 옛날 아침형 인간이 유행했을 때 꿈쩍도 하지 않았던 나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였다. 당시에 마침 김유진 변호사님이 쓰신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 책이 인기를 끌었고, 나는 뭔가에 홀린 듯이 그 책을 사서 읽었다.
새벽기상은 새벽에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아침에 할 일을 마치고 나면 하루의 시작을 기분 좋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그래, 딱 한 번만 해보자!
이대로는 살 수 없어.'
새벽기상 첫날, 오전 6시에 일어났던 날이 생각난다. 전날 저녁에 평소보다 2시간은 일찍 자려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억지로 잠을 청해보려고 노력했고, 알람이 들려 눈을 떠보니 6시였다. 거실로 나와 밖을 내다보았다. 아직 한창 추운 겨울날이어서 밖은 칠흑같이 깜깜했다. 길에는 리어카를 끌고 노인 한 분이 열심히 걸어가고 있었고, 출근하는 듯이 보이는 남자분이 급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당시 새벽 2시에 자서 8시에 겨우 일어나는 나의 생활 패턴에 6시는 한참 새벽이었다. 이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새벽기상을 고군분투하여 얻게 되었고, 지금은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한다. 새벽기상은 나에게 일종의 탈출구 같은 것이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온전히 2~3시간을 나를 위해 쓰기 시작하면서 아이를 낳고 희미해져 가는 나를 되찾을 수 있었다.
나는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제일 좋아하는지, 어떤 걸 제일 하고 싶은지. 새벽시간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나둘씩 하다 보니 그동안 미뤄왔던 일들을 할 수 있었고 이루고 싶은 바도 하나둘씩 이뤘다. 지금은 나만의 버킷리스트들을 만들고 하나씩 하는 중이다.
새벽시간은 모두가 잠든 시간이다. 하루를 일찍 여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잠에 푹 빠져있다. 우리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새벽시간은 고요했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낮 동안 시끄럽게 울려대던 휴대폰도 조용하고 메시지도 오지 않았다. 새벽시간은 나를 위해 시간을 쓰기에 제일 좋은 시간이다.
나는 오늘도
희미해져 가는 나를 되찾기 위해
새벽 5시에서 일어난다.
나의 꿈을 위해, 가족을 위해 잠에서 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