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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려 왕인데

1화 감옥 창에도 별빛은 반짝반짝

by 이지완


갑진년 겨울, 민심은 흉흉하였다.


한양 도성 곳곳에서는 윤종(尹宗)을 추종하는 무리와 배척하는 무리의 고함소리로 가득하였다.




윤종은 퇴임 후에 붙여질 묘호다.


그러나 이미 많은 백성들은 그를 묘호로 부르고 있다.


왕으로서 천수를 누릴 거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가 중도 파면된다면 삼십칠 때 근해군처럼 사가(私家)에서처럼 석렬군(君)으로 불리게 될 터이다.


본래 그의 이름은 외자인 렬(列)이다.


'벌리다'라는 뜻인데 양다리를 쩍 벌리는 태도가 태어날 때부터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의 부친은 연희 서원의 수장이었는데 포부를 크게 펼치라는 뜻에서 아들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지난 동짓달 사흗날 그의 결정을 두고 한쪽에선 큰 포부를 편 거라고 하고, 다른 쪽에선 쩍벌 추태라고 주장하고 있다.


도성 내에서 잘 알려진 부친과 달리 모친에 대해서는 세간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다만 렬이 주상의 자리에 오르기 몇 해 전에 혼인하였는데 혼사에 반대하여 사돈으로부터 미움을 사 강원도 어디에서 은거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을 뿐이다.


중전의 이름은 건(乾)이었다.


십수 년 전 개명하였는데 예전 이름은 줄리(茁離)라고 알려져 있다.


'싹의 떠남'이란 뜻인데 싹아지가 없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있다 하여 바꾸었다는 소문이 있다.


이제는 여염의 농지거리로만 회자될 뿐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녀가 모든 과거 행적과 기록을 지웠기 때문이다.


중전의 사가(私家) 시절, 개명을 권한 이는 건준법사였는데 그녀와 오랜 친분이 있는 자였다.


그는 자신의 법명에서 '건'자를 따 그녀에서 주었다.


"마님은 분명 큰 일을 하시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섬기는 하늘과 같은 존재가 될 터이니 건자로 이름을 바꾸십시오."


중전은 그의 말대로 하였고, 이후 인생은 승승장구, 파죽지세였다.


그녀가 렬을 만났을 때 그는 고작 중급관리인 정 4품 사헌부 장령이었다.


렬은 출세가 더뎠다.


과거에도 아홉 번 떨어졌는데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겨우 입직을 할 수 있었다.


훗날 세간에서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간다는 속담 대신 열 번 치러 못 붙는 과거 없다는 우스개가 횡행했다.


그가 건과 혼인할 때 사헌부뿐 아니라 궐 전체에서 구설수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입직이 10년이나 늦은 후줄근한 노총각과 베일에 쌓여있는 미모의 처자는 어울리지 않는 한쌍이었다.


마지못해 축하를 보내야 했던 사람들은 고구려 시대의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를 소환했다.


혼롓날 신랑은 바보처럼 웃었다고, 참석자들은 전하는데 이후에도 계속 아내 바보 행세를 했다는 것이 반대파의 지적이다.


렬은 건의 기운 때문인지 내조 때문인지 혼인 이후 성공가도를 내달렸다.


렬은 종 3품인 집의를 거쳐 드디어 수장인 대사헌에 올랐다. 오 년 전의 일이다.


당시 왕은 삼십팔 대 문조(文祖)였는데 백성들에게 인기가 바닥이었다.


총애하던 신하였던 국(國)을 문조가 형조판서에 앉히려고 했는데 사헌부가 극심히 반대하였다.


국은 박조(朴祖) 시절, 본디 정 오품인 성균관 직강이었는데 문조의 부름을 받아 승정원으로 들어왔다.


정 3품의 좌승지였는데 형조와 사헌부, 의금부 등을 총괄하는 직책이었다.


그는 성정이 강직하고 몸가짐이 발라 왕의 총애와 다른 신하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그를 불편해하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연구직이었던 성균관 직강(直剛)에서 한순간에 세 계단이나 뛰어 조정의 실세가 되었으니 궐내의 시샘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이런 자가 다시 나라의 법을 총괄하는 형조판서로 임명된다니 사헌부의 반발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국은 원래 사헌부에 대한 반감이 컸던 사람이다.


형조는 전통적으로 사헌부 출신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성균관에서 형조의 수장이 나온다니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사였던 것이다.


사헌부 관리들은 본디 나라의 질서를 책임진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수재들이다.


이들은 죄를 물을 수도, 풀어줄 수도 있는 막강한 권한이 있다.


그러나 취조권과 공소권을 모두 가지고 자신들의 입맛대로 행했다는 게 국의 인식이었다.


그는 사헌부 개혁을 주창했는데 사헌부의 수사 기능을 의금부로 나누고자 하였다.


문조는 이를 지원했고 그 일환으로 형조판서 임명을 강행했던 것이다.


자부심인지 특권의식인지로 가득한 사헌부 관리들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수많은 탄핵 상소가 오르고 사간원의 간언이 이어졌으나 문조는 듣지 않았다.


사헌부 개혁의 고삐를 느슨히 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사헌부 관리들은 재야의 인사까지 총동원하여 문조의 뜻을 저지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마침내 이들이 택한 방법은 국의 비리를 터는 것이었는데 이는 늘 하던 방식이라 누워 떡 먹기 같은 거였다.


국은 남매를 두었는데 특히 민(民)이라는 딸을 총애하였다.


민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자 국 부부는 편법을 쓴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벼슬아치에게 부탁하여 시용(時用) 이력을 만든 것이다.


국의 뒤를 캐던 사헌부 관리들은 쾌재를 불렀다.


게다가 미국(米國) 유학 중이던 아들의 시험에 아버지인 국이 원격으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첩보도 얻었다.


딸의 내의원 입학 자격시험에도 뭔가 수상한 것이 있었다.


사헌부는 대사헌이었던 렬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국은 이래저래 소명했으나 믿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조사와 국문 끝에 유죄를 선고받았다.


마침내 국은 낙마하였다.


반면 렬의 인기와 명성은 조선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문조와 측근들은 아차 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전국 각지에서 내로남불한 국의 실체와 무능한 문조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였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 또한 거대하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선 팔도의 땅값과 집값이 치솟았다.


양민들은 박탈감을 느꼈고 그들의 분노는 조정으로 향했다.


왜란 이후 나아지는가 싶던 조일관계도 문조 정권에서 험악해졌고 청에 대한 반감은 오히려 커져만 갔다.


결국 조정의 권력은 렬에게 넘어갔고 윤종이 왕위에 올랐다.


임인년 봄의 일이었다.




윤종은 지금 의금부에 압송되어 있다.


형리가 저녁 식사를 놓고 갔으나 입맛이 없다.


멀리서 그를 지지하는 백성들의 고함소리가 얼핏 들린다.


"의금부는 주상 전하를 즉시 석방하시오!"

"죄 없는 임금을 가둔 청인(靑人)들은 각성하시오!"

"홍인(紅人)첩자 훈(訓)은 낙향하시오!"


그간에 있었던 일들이 렬의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치지만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멍석에서 앉은자리를 고치고 고개를 들자 창 밖에서 별빛이 쏟아진다.


권력도, 정치도, 명예도, 재판도 다 귀찮게 느껴진다.


단지 아내가 보고 싶다는 생각,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아내 건이 희석해 주는 위숙희(爲熟喜) 한 잔만 마시면 다른 소원은 없을 것만 같다.




건은 재물운이 좋았다.


혼인 이후 렬의 직위는 계속 올랐고 건의 창고에는 재물이 늘었다.


건은 친정어머니에게 재물 불리는 수완을 물려받았다.


"사업하면서 동업은 필수다. 그러나 동업자를 믿는 건 바보다"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얘기였다.


건은 털털하고 강인한 여장부 스타일이었다.


작은 어려움에 굴복하면 큰일을 해낼 수 없다는 신념이 있었고 렬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마치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이방원이 주저하고 있을 때 원경왕후 민씨가 용기를 북돋운 것처럼 말이다(태종은 나중에 처가인 민씨 집안을 아작 냈지만 윤종은 같이 몰락의 길을 택했다는 건 안 비밀).


그래서인지 렬이 주상으로 취임하기 전 건은 숱한 구설수에 올랐다.


친정 모친의 사기 행각, 거짓 학력 이력, 저작 서책의 불법도용 등의 논란이 있었으나 가장 큰 것은 모친과 공모한 도이지 자전차(道是地 自電車) 재물문서 조작 사건이었다.


그 와중에 모친은 다른 사건으로 사기죄를 선고받아 전옥서에 갇혔다.


주상 취임 직전, 건은 어쩔 수 없이 회견을 자청하여 숭례문 밖 광장으로 나갔다.


"앞으로 저는 모든 대외활동을 하지 아니하고 주상을 잘 보필하는 데만 전념하겠습니다."


그날 그녀는 여러 차례 고개 숙여 사과했지만 약속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건과 렬의 마음에는 억울함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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