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에나 Oct 21. 2019

우리가 함께하지 않는 날이 와도

경험의 취향 #4. 순간을 소중히, 후회는 최소한으로.


누구나 한번쯤 병아리를 키워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삐약-거리는 작은 울음소리와 사랑스러운 부드러움에 마음을 빼앗기고는 키워봤던 경험 말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학교가 끝나고 교문을 나온 순간 우렁찬 울음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실내화 주머니 가방을 돌리던 움직임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작고 보드라운 생명체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병아리들 앞에 넋놓고 쪼그려 앉았다. 작고 깜찍하게 생겨서, 색깔까지 노랑색으로 완벽하게 귀여웠다.


 ‘엄마에게 혼나면 어쩌지?’, ‘너무 귀엽잖아. 키우고 싶어!’ 치열한 고민 끝에 지폐를 내밀었다. 얇은 비닐봉지에 담긴 병아리를 두 손으로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엄마나 외할머니에게 혼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애완동물이 생겼다는 설렘 사이에서 두근거려하며 집으로 출발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금방 죽을지도 모르는 병아리를 사왔다는 외할머니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묵묵히 일회용 소주 컵에 물을 따라 병아리에게 주는 내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잠시 지켜보시던 외할아버지가 집을 만들기 위한 커다란 박스를 가져 오시면서 암묵적인 허락이 떨어졌다.


 노랑이. 작고 보드랍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랑색을 닮은 귀여운 꼬마 병아리의 이름이었다. 어린 나의 작은 손으로 직접 먹이와 물을 주고 박스집의 똥을 닦아줬다. 수고로운 일 마저도 즐거웠다. 함께하는 날이 더해질수록 작았던 나보다 더 작고 귀여운 녀석에게 애정을 듬뿍 주었다. 점점 몸집이 커지는 만큼 먹이도 잘 먹고 달리는 속도도 빨라졌다. 물론 그만큼 똥도 많이 쌌다. 닭까지 크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고, 볼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함께 하는 이주 동안 더러워진 노랑이의 집을 새로 옮겨줘야 했다. 외할아버지나 언니가 노랑이를 옮기는 걸 많이 봤으니 나도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준비 운동을 하듯 숨을 크게 한번 내쉬고 용기를 냈다. 날개 죽지와 가슴을 꾹 잡았다. 부리로 손을 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났다. 겁이 난만큼, 힘이 잔뜩 들어갔다. 서둘러 새 박스에 노랑이를 풀어놓는데, 노랑이가 핑그르르 한 반퀴 돌더니 픽 하고 쓰러졌다. 다급한 마음에 외할아버지를 찾았다.


“할아버지!! 노랑이가 이상해요! 한 번 봐주세요.”


 외할아버지는 노랑이를 가만히 손바닥에 얹어 가까이 들여다보셨다. 오르락 내리락 숨 쉬는 모습이 영 불편해보였다. 노랑이는 파르르 떨기도 했다. 말없이 잠시 살펴보시던 외할아버지는 아까 노랑이를 너무 꽉 잡은 것 같다고. 다음에는 그러지 말라는 당부만 하신 채, 담배를 들고 마당으로 사라지셨다.

 녀석은 전보다 확실히 힘이 없어졌다. 모이를 먹거나 우는 것, 움직이는 것도 덜했다. 박스 구석에 쌓아놓은 종이 뭉치 위에 웅크려서 쉴 뿐이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저녁 내내 나는 박스 앞을 떠나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예감이 좋지 않았다. 평소라면 시끄럽게 울던 녀석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학교에 가서도 힘 빠진 녀석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마음이 불편했다.

 ‘어제 내가 너무 꽉 잡아서 그래. 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 노랑이가 아픈 거야. 다음에는 세게 잡지 말아야지.’ 혼자 다짐하면서 학교 일과를 마쳤다.

 놀이터에서 놀고 가자는 친구의 말도 뒤로 한 채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책가방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노랑이가 제일 좋아하는 오이를 챙겨 박스 앞에 앉았다. 오이를 보자마자 재빠르게 달려 들어야하는데, 반응이 시들했다. 그때 노랑이가 나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예감했다.


 노랑이는 그날 숨을 거뒀다. 저녁을 먹고 돌아온 방이 고요했다. 작은 움직임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상한 느낌에 급하게 박스를 열어젖혔다. 온몸을 늘어뜨린 채 한쪽 구석에 누운 노랑이가 보였다. 눈물이 쏟아졌다.

 잘 먹고 잘 놀던 노랑이였다. 작은 생명의 때 이른 죽음은 모두 나 때문이었다. 나이는 어렸지만,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나에 대한 원망이 시작되었다.


“엄마 다 나 때문에 죽은 거야.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좋겠어.”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하니? 이래서 엄마랑 할머니가 처음에 키운다고 할 때 안 된다고 했던 거야. 상처받을까봐. 노랑이 좋은 곳에 갔을 거야. 그러니까 그만 울어.”


 이 일은 죽음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이다. 죽음을 앞두고 든 감정은 죄책감과 절대적인 무력감이었다.









 요즘 따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다시 커진다.

내게 꼬리를 흔들며 해맑게 웃는 아리와 뽀리의 모습을 보면 볼수록, 마음 한구석이 따끔해진다.

거울을 자주 보는 뽀리



.

.

.

.

.

.

.

.

.

.



이후 이야기는 <안녕, 나의 취향!> 책을 통해, 이어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bookk.co.kr/book/view/69638


 

이전 03화 운동선수는 아닙니다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