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벌이 와이프의 일대기
결혼을 앞두고 신년운세도 볼 겸 당시 구남친이자 현재 내 남편과 오래전부터 다니던 점집에 찾아갔다. 전에 다니던 직장 동료가 굉장히 용하다고 추천해 준 점집이었고, 정말로 내가 남편을 만나게 될 미래도 예측해 줬던 분이었다.
점집 선생님은 생글생글 웃으며 남편이 성격도 좋고, 둘이 성격 궁합도 잘 맞으며, 시부모님 되실 분들도 좋으신 분들인 거 같다고 웃으며 점을 봐주셨다. 그리고 내게 따로 줄 것이 있으니 다음 주에 한번 가게에 들러달라고 했다.
별생각 없이 그다음 주에 문을 열고 들어간 점집에서 나를 보자 선생님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너 꼭 그 남자랑 결혼해야겠니? 정말로 결혼할 거야?"
당시에 나는 이미 남편하고 결혼을 전제로 살림도 합친 상태였고, 결혼 준비도 하고 있던 상태였다. 남편은 유망한 대기업 이직에 성공해서 첫 출근을 앞두고 있었고, 나도 더 규모가 있는 회사로 자리를 옮기게 되어 모든 것이 탄탄대로라고 생각했다.
"왜요? 저번주에는 그런 말씀 없으셨잖아요."
"너랑 결혼할 운명이 아냐, 네가 결혼할 사람은 따로 있어. 이 남자는 직업운이 없어. 결혼하면 너 평생 고생한다? 네가 돈 벌어서 먹여 살려야 할 수도 있어. 너 그래도 괜찮니? 언니가 너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야."
일 년에 한 번 신년운세를 보러 몇 년간 꾸준히 찾아갔던 점집이었고 꽤 잘 맞는 곳이라 그 말은 신빙성이 있게 들렸다.
어릴 적부터 인생이 다사다난했던 나는 삶이 왜 이리 힘든가 이유를 알고 싶어서 여러 점집을 전전하며 사주팔자에 관심을 가진 적도 있었다.
타고 태어나길 흔들리는 풀 같은 운명이라 뿌리내리지 못하면 휘청이며 살아간다고 했던 내 사주팔자 풀이가 생각났다.
모든 사람이 타고난 사주팔자대로 꼭 살아가야 한다는 법은 없다. 나와 결혼할 운명이 아니라고 점집 선생님은 못 박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정해지지 않은 또 다른 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살아보고 싶었다. 내 인생은 본디 안정적인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괜찮아요. 제가 감당할 수 있어요. 저 일하는 거 좋아해요."
결혼을 앞두고 축복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찬물을 끼얹은 그 말을 나는 늘 그렇듯 아무렇지 않은 척 해맑게 웃으며 받아넘겼다.
마음 한구석이 왠지 찜찜했지만 큰 걱정은 안 했다. 나도 잃을 것 하나 없는 빈손이었고,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둘 다 사회 초년생에, 작은 월급에, 가진 것뿐이라곤 창창한 나이와 알 수 없는 미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6년 이상을 만났던 사람도 있었지만, 겨우 삼 개월 남짓 연애하고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참 사소했다. 왕복 4시간 출퇴근 길을 위험하다며 우리 집 앞까지 매번 같이 버스를 타서 데려다주고, 나보다 약한 체력으로 코피를 흘리면서도 같이 걷자며 급한 내 걸음에 발걸음을 기꺼이 맞춰주는 사람.
추운 겨울에 손난로보다 더 따듯한 손으로 꽁꽁 언 내 손을 녹여주던 남편. 무딘 내 감정을 나보다 더 빨리 알아차리고 품어주는 사람.
하늘이 맑은 날에는 내 손을 잡고 좋아하는 노래를 같이 들으며 별을 바라봐주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남편을 선택한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할 삶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밥이 없어서 라면을 끓여 먹고살더라도, 배는 고플지언정 마음은 고프지 않게 살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돌아가신 엄마가 죽기 전, 결혼은 너와 시야가 같지 않더라도 같은 곳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는 사람이었다.
선택하지 못하고 주어진 대로 살아가던 삶에서, 내 인생의 반려자는 내가 스스로 선택해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미래가 어떻든, 나는 늘 그렇듯 누구보다 더 잘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해서 외벌이 와이프로 살아가는, 평범하고 치열한,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여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남편과 가정을 꾸려가는 가장 아내의 바람 잘 날 없는 생존일지다.
이 평범한 삶을 기록해보려 한다. 외벌이 와이프 생존일지, 지금부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