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김치찌개 때문에 당신이랑 산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김치찌개

by 현아

엄마가 돌아가신 다음 해 나는 임신을 했다. 입덧이 그리 심하지는 않았지만 임신 기간 중 가장 서러운 게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김치찌개였다.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다. 정확하게는 "우리 엄마가 끓여준"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다. 어떻게 끓이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돌아가신 엄마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알아낼 방법도 없어서 몰래몰래 훌쩍였다.


내가 기억을 더듬어 끓인 김치찌개는 뭔가 엉성했다. 어느 날 밤 꿈에 엄마가 나와 나도 모르게 서러움에 훌쩍였는데 남편이 그날도 아무 말 없이 나를 보듬어주다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엄마가 끓여준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



그 말을 하고 나는 엉엉 울었다. 남편은 곤란했을 것이다. 장모님이 끓여준 김치찌개를 남편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해서 나보다도 더 막막했을 것이다. 집집마다 김치찌개에 들어가는 재료도 다르고, 손맛도 다를 거라 우리 엄마가 끓인 김치찌개 맛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도 같았다. 그런데 남편이 아무렇지 않게, 덤덤하게 자기가 그 김치찌개를 끓여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남편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를 시작했다. 뒤늦게 알았는데 유튜브와 인터넷으로 각종 김치찌개 끓이는 방법을 다 검색해 봤다고 했다. 나와 결혼하기 전에는 혼자서 찌개도 끓여 본 적이 거의 없던 사람이,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이는 법을 찾으려고 고군분투했다. 어느 날 주말 이른 아침 침대에서 부스스 눈을 떴는데 열린 방문 틈 사이로 양념 냄새와 보글보글 뭔가가 끓는 소리가 들렸다.



일하느라 바쁜 엄마가 숭덩숭덩 아무렇게나 숟가락으로 퍼 넣은 스팸이 잔뜩 들어갔던 김치찌개. 남편이 그 김치찌개를 끓이고 나를 불렀다. 잠이 덜 깬 얼굴로 식탁 앞에 앉아 얼떨떨하게 한 숟가락을 퍼서 입에 넣었는데 엄마가 끓인 그 김치찌개 맛이 났다. 눈앞이 뿌애졌다. 얼큰한 국물의 시큰함이 눈까지 올라왔나 보다. 신기하다. 어떻게 이 맛이 나지. 어떻게 이렇게 똑같은 맛이 나지. 임신하면 호르몬이 오락가락한다더니 그래서 눈물이 났나 보다.



남편은 아무것도 모르고 긴장된 얼굴로 내 표정을 살폈다. 나는 목이 메어서 고맙다고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날 나는 밥 한 그릇을 싹싹 비웠다. 남편의 김치찌개가 엄마의 손맛으로 둔갑한 날. 썰물처럼 빠져나간 엄마의 빈자리에 남편의 칼칼한 김치찌개가 밀물처럼 내 마음에 들이친 그날. 그렇게 내 남편의 김치찌개 역사는 시작됐다.



아이를 낳고, 이사를 하고, 바쁘게 일상을 헤쳐나가면서 우리는 조금 늙었다. 남편은 조금 살이 찌고 나는 얼굴에 주근깨와 흰머리가 늘었다. 우리가 바뀌듯 내 남편의 김치찌개도 조금씩 바뀌었다. 건강을 위해 스팸 대신 찌개용 고기가 들어가고, 사 먹던 김치 대신 시어머니가 가져다 주신 김치찌개를 넣고, 얼린 두부가 맛있어서 얼린 두부를 넣고.


들어간 재료가 달라졌지만 맛은 똑같다. 내가 재현해내지 못해서 서러움에 엉엉 울며 찾던 엄마표 손맛 김치찌개다. 내가 우울해 보일 때마다, 삶이 벅차 보일 때마다 남편은 문득문득 김치찌개 끓여줄까? 하고 묻는다. 문득 한 번씩 엄마 손맛이 그리울 때면 나도 남편에게 김치찌개를 주문하곤 했다.



엄마 딸인 나는 똑같이 끓이지 못하는데, 사위인 남편은 끓여내는 마성의 김치찌개. 그 덕에 우리 집 김치찌개 담당은 항상 남편 몫이다. 일주일 내내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뭘 넣는 걸까? 어느 날 남편에게 김치찌개 비법이 뭐냐고 물었더니 진지하게 사랑이라 했다.



이 사랑은 일주일 내내 같은 걸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보글보글 오래도록 끓여서 오래도록 식지 않는 김치찌개 같은 사랑. 어쩌면 나는 김치찌개 맛이 그리웠던 게 아니라 오래도록 팔팔 끓인 사랑이 고팠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남편의 사랑 같은 마음이, 이 김치찌개에 녹아있어서 어떤 재료를 넣어도 국물 맛이 항상 똑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오래도록 식지 않는, 뜨끈한 김치찌개 같은 당신이 좋아서 나는 남편과 산다. 웃기게도 가난한 사랑은 김치찌개 앞에서 더 펄펄 끓는다.



당신이 끓여준 김치찌개가 좋아서 나는 당신과 백발노인이 될 때까지 같이 살고 싶다. 앞으로도 내 생의 모든 김치찌개는 당신이 다 끓여주면 좋겠다.


https://youtu.be/kPa7bsKwL-c?si=wRIZTrW1XpXe6w-P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09화외벌이 와이프의 소소한 재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