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번주는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WBC 이야기로 꽃을 피웠을 것 같습니다. 한일전의 경우 사실 오타니가 너무나 잘하면서도 호감까지 있어버리면서 처음부터 전의를 상실한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일전은 항상 이겨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는 넷플릭스에서 독점 중계를 해주기 때문에 한국 경기를 포함한 모든 경기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도쿄돔 표는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집에서 편하게 넷플릭스나 볼까 생각했지만, 그래도 혼자 집에서 보는 것보다 밖에서 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한국처럼 호프집에서 볼 수 있을까 생각해봤습니다만 같이 갈 사람도 없고, 좀 찾아보니 이토엔 (伊藤園) 이라는 회사에서 퍼블릭 뷰잉(Public Viewing)이라는 행사를 전국 9개 도시에서 무료로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토엔은 녹차 음료인 '오이오차'로 이미 한국에서도 유명한 회사로, WBC와 글로벌 파트너십을 맺었다고 합니다. Public Viewing은 경기 예매에 실패했거나, 집에서 야구 경기를 볼 수 없는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중계료가 상당할 것인데 이렇게 외부에 관람 장소를 무료로 마련하는 것도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3월 7일 경기 당일에 현장에서 4시부터 추첨을 받는데, 미리 예약할 필요도 없고 회원가입 인증을 할 필요도 없는 화끈한 당일 복불복 추첨제였습니다. 두근두근하고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3시 40분쯤 시부야 사쿠라 스테이지 (Shibuya-Sakura-Stage)에 4층 '404 Not Found'라는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도착을 하니 사람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4시가 되니 슬슬 줄이 움직이기 시작해 박스에 손을 넣고 종이를 뽑는 극히 아날로그한 방법으로 추첨이 진행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도파민 과분비와 그 결과는,
짠~ 좌석표를 받았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 사이로 당첨된 게 정말 신기했습니다. 앞뒤로 떨어진 사람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들고, 이게 뭐라고 기뻐서 펄쩍뛰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마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황금티켓을 받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국적 제한이 별도로 없기 때문에 저같은 외국인도 추첨하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던 점이 좋았습니다.
근처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5시반이 되어 관람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부여받은 좌석표에 앉아 관람하였는데, 일본인들 사이에서 한국인 혼자서 앉아 있는게 뻘쭘하고 민망하기도 했지만, 민폐가 되지 않는 선에서 재밌게 즐길 예정이었습니다. 반응을 크게 할수가 없었기 때문에 아쉬웠지만, 정말 재미있는 경기였습니다.
3회말 오타니 쇼헤이 (LA 다저스), 스즈키 세이야 (시카고 컵스), 요시다 마사타카 (시카고 레드삭스)이 차례로 등판하고 홈런을 치면서, 일본이 5대 3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승부욕이 꺾일수 밖에 없었던 라인업이었습니다. 이걸 과연 이길 수 있을까...
관중들은 여유 있는 박수를 치면서 본인의 국가 대표팀에 감탄하는 박수를 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뭔가 우리 나라 입장에서는 양궁 경기를 보는 정도의 느낌이랄까...
4회초 우리의 김혜성이 홈런을 치면서 5-5 동점이 되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순간에 쳐주는게 에이스라고 볼 수 있는데, 현장 분위기도 와 이거 생각보다 쉽지않네 라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정말 펄쩍 뛰고 싶은 마음을 부여잡고 아쉬운 척을 했습니다.
출루를 하면 양손을 펴고 위아래로 흔드는 비행기 세레머니를 일본어로는 "차터기 포즈 (チャーター機ポーズ)", 곧 전세기 포즈 라고 하는점이 재밌었습니다.
4회 말에는 겐다 소스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가 도루 실패 아웃을 당하면서 이닝을 마치게 되었는데, 판독을 하는 과정에서 이정후, 안현민 선수와 사이좋게 (?) 싱크로가 맞는 모습이 보이면서 막간의 웃음을 주기도 했습니다.
5회초 오타니의 타석. 저도 계속 찍고 있던걸 보니, 왠지 오타니는 출루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나봅니다. 안정적으로 1루타를 치는걸 보면서 정말 별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압도적인 실력에서 나오는 여유가 너무 부럽습니다.
그리고 통한의 7회. 투수 김영규 (NC 다이노스) 가 투입되었으나 시작부터 표정이 너무 불안했고, 그렇게 등판한 스즈키 세이야는 포스가 남달랐습니다. 결국에는 볼넷을 내주고 추가 점수를 내주게 되었습니다. 기뻐하는 현지인들의 모습...
8회초 대한민국의 공격. 우리의 자랑인 김혜성과 마츠모토 유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승부였습니다만. 결국에 삼진 아웃을 당해버렸습니다. MLB 선수라 압도적인 실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투수의 면모를 보니 가장 최근인 2025년 일본 시리즈 우승에 크게 공헌한 저력있는 투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경기가 끝나고 일본의 승리를 축하하는 모습입니다. "역시는 역시"라는 반응이 너무 부럽습니다.
사실 일본에서 유학도 하고 일도 해본 입장으로서, 어느 지역을 가나 학교에 야구장이 있고 아이들이 부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프라의 차이가 프로의 차이를 크게 벌려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실력의 차이가 나는것이 당연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호각의 경기를 보여줘서 대단하다는 생각입니다.
글을 마치기 전에 자주 들렸던 막간의 일본어 공부를 해보겠습니다. 후라세마시타 (振らせました)는 뜻은 타자의 방망이를 휘두르게 했다는 뜻입니다. 아웃 카운트를 하나 더 잡아낸 것이라고 볼 수 있고, 훈바리마시다 (踏ん張りました! ) 는 잘 버텼다는 말로 자주 쓰였습니다. 투수가 점수를 안내주고 실점 없이 이닝을 잘 마쳤을때 쓰입니다. 그럼 우리 모두, 요번 주도 훈바리마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