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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실 Oct 22. 2022

1. 아버지의 마지막이 담긴 녹음기

1부. 준비하는 이별의 또 다른 이름, 사별입니다

준비하는 이별의 또 다른 이름, 사별입니다

생을 마감하는 

한 인간의 목소리가 녹음되고 있다

바로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다



녹음 중이다.


아버지의 침상 옆에 녹음기가 붉은색을 깜빡이며 돌아가고 있다. 생의 마감을 앞두고 있는 한 인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담기고 있다. '괜찮다'라는 말로 남은 가족들을 위로하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나지막해지면서 힘겹게 버티어 온 삶에 대한 애착과 한 숨이 자리 잡았다. 이어진 거친 숨소리와 함께.


주치의가 아닌 젊은 의사 한 명이 다급히 올라오더니 아버지의 몸에 얼기설기 걸쳐진 복잡한 기기와 장비들을 걷어 버린다. 아버지의 침대는 간호사실과 바로 연결된 1인 임종실로 옮겨졌다. 5시간쯤 흘렀을까...

"가족 모두 오셨죠? 환자분께서 요구하신 대로 연명 의료 포기 절차에 따라 모든 기계를 제거했습니다. 이 시간 이후부터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심폐소생술이나 수혈 등의 의료행위는 하지 않습니다. 음... 가족들께는 유감입니다만 아무래도 오늘을 넘기시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복수만 약간 차올랐고 항암 수준의 항생제를 매일 8병씩을 갈아치우리만치 면역이 떨어진 것 말고는 불과 몇 시간 전까지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눈을 맞추던 아버지였다. 이별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은 환자가 아닌 남은 가족들에게 내려진 시한부 선고였다. 믿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학의 시간 계산법에 따라 아버지의 상태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모든 장기기관이 멈추는 데 드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분비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소변줄을 끼지도 않았는데 소변이 나오지 않는다.  '수포음'이라는 가래가 많은 호흡소리가 임종이 가까워져 옴을 알리고 있었지만 폐의 점액질이 줄어든 탓에 되려 기침은 멈추었다. 까만 동공이 평소의 1.5배로 커지면서 반짝이는 눈빛이 마치 아이와 같아졌다. 섬망 증세로 헛것도 보이며 허공에 손짓하는 사람들이 종종 생긴다고 하는데 시간이 흘러도 아버지는 또렷한 정신에 고요하기만 하다.  


#3시간 전.

입을 쩝쩝 다시는 시늉을 하시는 것을 보니 목이 말라오나 보다. 180ml의 당분 있는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마지막 물 한 모금이었다. 의사의 선고가 무색하리만치 아버지는 보고 듣는 등 오감(五感)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아빠, 나 누구야?"

"딸내미"

"어떤 딸?"

"예쁜 딸"

50년이나 자식사랑이 끔찍했던 아버지와 좀 더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저 내가 물을 수 있는 것은 "아빠, 괜찮아? 안 아파?"

자식 걱정이 우선이었던 아버지의 대답은 늘 그랬듯

"괜찮아, 걱정 마"


#2시간 전.

환자의 모습 같지 않게 또렷한 말투를 구사했던 아버지의 말투가 어눌해지기 시작했다. 손을 저으며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하신다. 임종실에 종이가 있을 리 없다. 주변을 둘러보니 의료기기 물품이 배달되었던 빈 택배 박스가 보였다. 박스 한 면을 쭈욱 찢고 펜을 쥐어 드렸더니 느릿느릿 삐뚤빼뚤 열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종.. 신... 시간이... 왜... 이.. 리... 기.... 냐'

가톨릭 신자였던 아버지는 잠들기 전, 단 하루도 기도를 거르지 않았던 분이다. 병원에 들어오기 전 다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아셨던 건 아닐까. 병원에 도착 한 날부터 신부님 앞 고해성사가 있기까지 종신 기도를 멈추지 않았던 아버지가 써 내려간 열 글자 안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는 듯했다. 신장이 망가져 복수가 차 오르고 이제 폐가 제 기능을 못 하니 간헐적으로 쉬는 들숨과 날숨이 얼마나 답답하고 고통스러웠을까. 가족들의 동의가 있으면 지금이라도 아버지의 '연명 의료 포기'를 무산시킬 수 있다.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만 달면 편안한 호흡을 할 수가 있다. 중환자실로 옮길 것인가 '아버지의 뜻'을 지켜낼 것인가. 의사를 부르는 붉은색의 긴급 벨에 떨리는 손이 가기를 수 회 반복 중이다. 마음을 읽었을까 아버지는 안간힘을 다해 나의 손을 잡았다. 참아 내기가 힘들어지니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긴 호흡으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문득 아버지가 평소 좋아했던 음악이 떠올랐다. 고통을 덜어드리고 싶은 마음에 즐겨 듣던 '그레고리아 성가'를 틀어 드렸다. 아버지의 결정이 헛되지 않도록 잘 참아냈다.


#1시간 전.

언어 신경이 차단되었는지 가지런히 모은 입술에서 침묵이 흐른다. 시신경이 멈춰 양 쪽 눈도 감겼다. 한쪽엔 엄마의 손을 나머지 한쪽엔 나의 손을 잡고 있던 아버지의 손에 힘이 풀리고 있다.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아직 체온이 식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투를 벌이고 있는 아버지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

"아빠, 딸이 정말 많이 사랑해. 알지?"

둔해진 감각에도 딸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리는지 아버지는 고개를 위아래로 한 번 저어 보이셨다.


#50분 전.

95부터 시작했던 산소포화도의 수치가 60 이하로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의식이 사라지고 있다.

"아빠, 사랑해..."

미동이 없다. 아무리 준비해도 슬픈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엄마는 갑자기 코끝이 빨개지며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더니 복받치는 울음을 터뜨렸다.

"여보, 안 들려? 방금 전까지 움직였는데... 여보, 여보!"

간호사가 들어왔다. 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의사 선생님이 곧 오실 거라고 담담하게 말을 전한다. 간호사가 5분 간격으로 들락날락했을 텐데 난 부산히 오간 간호사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신경이 극도의 스트레스로 곤두서 있었던 탓이다. 아버지의 심장은 멈춰갔지만 나의 심장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40분 전.

나의 메시지를 받은 남자 친구가 한걸음에 달려왔다. 병원에서 퇴원하면 정식으로 상견례를 하고 결혼하자 약속했었는데... 뜻하지 않게 어제 아버지의 병상에서 두 손을 꼭 붙잡고 언약을 했더랬다. 남자 친구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걱정 마시고 편안한 길 가시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순간 감각이 없어진 줄 알았던 아버지의 손이 움찔했다. 믿기 어려웠다. '아, 아직 아버지는 아직 괜찮은 거야. 혹시 회복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적을 바랐다.


#30분 전.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일주일 전, 연명의료 포기를 위해 자필 서명을 받으러 온 담당의사였다.

"많이 힘드시죠? 아버님이 참 편안해 보입니다. 아버님께 이제 마지막 인사를 나누시죠. 지금 미동도 없으시지만 저도 배운 바에 의하면 사람의 청각은 마지막 감각이라고 합니다. 심지어는 심장이 멈춘 후에 30초간이나 청각 신경은 살아있다고 하죠. 그럼 잠시 제가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10분 전.

울지 말자 다짐하고 또 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평소 우직했던 오빠마저도. 웃으며 보내드리라고는 하는데 50년이나 함께 해 온 아버지와의 이별이 너무 아파서, 누려보지도 못하고 애만 쓰다 가는 아버지가 가여워서...

"아빠, 안녕"

"나의 아버지로 살아줘서 고마워..."

"정말 많이 사랑해"

"하늘나라 가면 안 아프겠지?"

좀 더 따뜻한 말을 해 드리고 싶었지만 사랑하고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 외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3분 전.

의사는 대기하고 있었다. 현대 의학에서 말하는 사망 기준에 이르는 수치가 다다랐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분주하게 여러 가지를 체크했다. 오늘 아침, 의사는 임종을 처음 맞는 우리들이 놀랄까 봐 몇 가지를 알려 주었다. 최후 몇 시간 동안 환자에겐 혼돈과 졸림이 나타날 수도 있고 심장은 호흡이 정지되었다 해도 몇 분 동안 뛰며 짧은 발작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이다.  아버지는 그럴 기력조차 없으셨던 걸까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처럼 얌전했다. 


#마지막 순간.

아버지를 잡고 있었던 손이 순식간에 파리하게 바뀌었다.

"어! 차가워!"

잠시 후, 아버지의 노출된 피부가 옅은 노란색을 띠더니 이마의 주름살마저 펴졌다. 모든 근육이 풀렸다. 심장이 멈췄다는 기계음이 크게 들려왔다.

"마음의 준비하시죠. 이제 선고하겠습니다. ooo님은 2000년 8월 14일 16시 35분에 oo 사인으로 운명하셨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장례식장으로 옮기기 위한 운구차가 오는 데까지 30여분이 걸린다고 했다. 우린 고단한 여정을 마치고 온기 없는 아버지의 육신을 만지고 있다. 포옹도 했다가 볼을 부비기도 하고 차가워진 발을 두 손으로 감싸 조물조물하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었다. 남은 가족들의 아쉬움이다...


더는 만질 수가 없기에

더는 느낄 수가 없기에

더는 볼 수가 없기에


하얀 천을 아버지의 얼굴에 드리우기 전, 아버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평온해 보였다. 웃고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아이처럼 맑은 얼굴을 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내가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이별의 모습이었다.


녹음기의 종료 버튼을 눌렀다.






아버지의 끝자락이라도 붙들고 싶어서 녹음해 두었던 육성이었다. 하늘나라로 보내 드리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도 일상에서 불쑥 발견되는 아버지의 유품을 보면 한 움큼씩 눈물을 쏟아 냈다. 이런 날은 잠들기 전, 녹음을 들었다. 사별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살다 보면 저 빛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누구에게나.


1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 녹음 파일은 지금의 나를 몇 번이나 살렸다. 집안에서 난 늘 실수투성이의 딸이었다. 도전도 많이 하고 실패도 수 없이 하던 딸, 삶이 생채기 투성이었다. 그런 내가 홀로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에 지쳐 지금의 삶을 모두 벗어던지고 싶던 하루, 아버지의 육성이 나를 붙들었다.


얘야, 왜 그리 울고 있니?


생생한 육성이 녹음되지도 않은 파일에서 들려왔다.

분명 환청이었을 텐데 아버지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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