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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실 Oct 25. 2022

3. 침대 밑 아버지의 유산

1부. 준비하는 이별의 또 다른 이름, 사별입니다



딸이 보낸 편지 묶음

장례비용 삼천만 원

그리고

낡은 일기장



'아빠, 집에 가자. 리 함께 지낸 집으로, 편안하지?'

아버지의 유해가 담긴 - 온기가 남아있는 항아리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단 하루만이라도 당신이 돌아가고 싶었던 집, 당신의 침대에서 쉬어 가게 하고 싶었다.  따뜻하다. 포근하다. 편안하다.


입관 절차가 있었던 날은 장맛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조문객들의 우산에서 떨어지는 물로 빈소 앞 바닥이 흥건해졌다. 오후 늦게 입관식이 치러졌다. 장례지도사는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이 모인 앞에서 입관식을 진행해 나갔다. 허리쯤 오는 나무 침상 위에 아버지가 누워 있다. 뽀얀 피부 위에 약간의 붉은 화장을 해 놓으니 발그레하게 생기가 돈다. 좋은 길을 가기 위해 곱게 단장하는 일이라 했다. 오동나무 관에 꽃을 깔고 장정 둘이 힘을 쓰니 관 속에 누운 이가 눈물겹게 아름답다.

"가족분들 마지막으로 인사하시죠. 관은 닫으면 다시는 열지 못하니 못다 한 말씀 전하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새벽 내 아버지의 영정을 지키며 썼던 한 통의 편지를 곱게 포갠 손 안으로 넣어 드리고 아버지의 뺨에 내 빰을 부볐다. 곱게 발린 분가루가 나의 눈물과 뒤범벅이 되었다. 고단했을 텐데 끝까지 자신의 삶을 의연하게 살아 준 내 아버지가 고맙고 또 고맙다.


장맛비가 궂은 것들을 모두 데려간 것일까. 장례미사를 치르고 승화원으로 가는 길은 소풍 가던 날씨 모양 화창하다. 한 여름의 더위가 가시고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 있는 파란 하늘...

장례지도사는 집 앞에서 운구 차량을 잠시 세우더니 1분 후 천천히 빠져나갔다. 영혼이 하늘로 가기 전 자신이 주로 다니던 이승의 길과 보고픈 사람들을 다시 한번 보고 떠난다는 말이 있다고 했다.


지난해, 우연히 알게 된 대구 참사 가족이 떠올랐다. 2003년 겨울로 기억된다. 대구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방화로 인해 지하철 탑승객 중 192명이 사망했다. 외동딸을 잃었다는 그 가족은 화장터로 가는 날, 운구차량이 집 앞에서 이유 없이 멈춰버렸단다. 정비를 꼼꼼히 하고 출발하는 운구차량이 고장 날 리 만무했다. 장례지도사는 떠나는 딸이 이별할 준비가 되지 않아 이승의 인연을 잡고 있는 것이라 했고 "얘야, 그만 가자"며 어머니가 울며 달래고 나서야 차가 출발했다고 한다. 남의 가족사라도 아프기 그지없다. 물론 가슴 먹먹한 일이 이뿐이겠는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서부터 911 테러 사태까지 남은 자는 먼저 간 이가 살아내지 못한 시간만큼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연로한 부모를 자연 섭리에 의해 보내드리는 일도 이리 아픈데 자식을 앞세운 부모나 배우자를 먼저 보내야 하는 이들은 얼마나 힘들 것인가. 남의 아픔을 쉽게 말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또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어 숙연해진다.






텅 비어 있는 집이 낯설기만 하다. 거실의 햇살이 잘 드는 한 켠에 아버지의 의자가 놓여 있다. 20여 년이 넘게 그 의자는 고정석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낡은 침대에 채 식지 않은 항아리를 내려놓고 사진과 묵주를 곁에 놓았다. 아버지의 냄새가 배어 있는 침대 위로 올라가 두 무릎을 끌어안았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비어 있는 동안 약간의 먼지만 쌓였을 뿐 방이 깨끗하다.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다. 80세가 넘도록 손에 놓지 않고 보시던 책들, 잠 못 들 때 세상과 소통하던 낡은 라디오와 이어폰, 매일 빠지지 않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던 묵주와 기도문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게다가 침상 정리까지. 119 앰뷸런스로 병원을 가시게 된 아버지가 당신의 방을 급하게 치웠을 리 없었다. 문득 한 달 전 즈음

"아빠, 병원에 있는 동안 침대 바꿀까? 너무 낡았어."

"나중에 퇴원하게 되면 그때 주문해라. 급할 것 없다."

얼마 전, 스프링이 고장 났는지 삐그덕 거리고 세탁해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밴 침대가 마음에 걸렸었다. 침대를 바꿔볼까 제안했던 것도 아버지였는데...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다. 떠나갈 이가 침대를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을.  


청소기를 꺼내 들다 문득 아버지의 당부가 떠올랐다.

"침대 밑에 보면 작은 상자가 하나 있을 거야. 나중에 청소할 때 챙겨 봐. 깜빡해서 버리지 말고."

침대 밑과 드리워진 커튼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상자 하나가 보인다. 묘하게 감추어져 있다. 테이프로 한 번 둘러져 있는 박스를 열어보았다.


'딸이 보낸 편지 묶음, 현금 3천만 원,
낡은 일기장'


종종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생신을 맞을 때, 해가 바뀔 때, 입사할 때, 남자 친구가 생겼을 때 - 아버지는 친구 같았다. 나의 성질머리를 잘 아는 아버지는 어떠한 경우에도 응원을 아끼지 않는 좋은 친구였으니까.

3천만 원? 풍족히 드리진 못했지만 매월 빠지지 않고 조금씩 드렸던 용돈을 10년 치는 모은 것 같았다.

필체가 좋은 아버지의 낡은 일기장은 당신의 소소한  일상과 함께 좋은 글귀가 쓰여 있었다. 당신이 살아온 85년간 때때로 무너지는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글이었을 것이다.


왜 3천만 원이었을까. 아주 오래전, 선산이 없던 우리는 납골당을 알아보고 금액을 운운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때부터이지 않을까. 자식들에게 비싼 장례비용조차 부담을 주기 싫었던 아버지의 배려였다.  박스를 부여잡고 한참을 울었다. 가슴에 멍이 앉은 듯.

'오늘까지만 울겠습니다. 더 가슴 시리게 아파하고 있는 엄마를 위해서라도.'


두부 한 모를 사 가지고 들어오는 엄마의 인기척이 들렸다. 눈물자욱을 지우고 나와 엄마를 꼬옥 안아드렸다.

"밥 먹을까 엄마?"

"배고파?"

"그럼 많이 고프지"


가족이 줄었다. 밥상의 숟가락도 줄었다. 그래도 우린 한 사람 자리를 비워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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