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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실 Oct 23. 2022

2. 아버지의 연명치료 거부

1부. 준비하는 이별의 또 다른 이름, 사별입니다

비하는 이별의 또 다른 이름, 사별입니다


가는 자, 남는 자가

모두 함께 견뎌내야 하는 진통

그것이 '사별'이다



입원한 지 보름이 되었다. 서대문에 위치한 대학병원 호흡기내과의 5인실 병동, 길어진 여름 햇살이 환하게 드리워진다. 보기 드물 정도로 자상한 주치의 선생님에 유머기 있는 젊은 환자들 덕분에 분위기 또한 좋다. 물론 밤새 끊이지 않는 폐암 환자의 기침 소리나 응급상황으로 침대가 급히 비워지는 일만 제외하면 말이다.


토요일 아침 면회객들로 병실이 부산하다. 과일을 한 조각씩 먹으며 아버지 곁에 둘러앉았다.

"니 아부지 물김치라도 담가 드릴까. 가뜩이나 입도 짧은 양반이 병원 밥이 입맛에 맞겠어..."

음식을 걸게 드시는 편은 아니지만 한수저라도 때를 거르지 않는 분이었는데, 요 며칠 병원밥은 물리고 두유만 드신다. 엄마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버지는 종일 잠만 청하는 옆 침대의 갑장 어르신을 바라보더니

"자식이 서(셋)이나 있다는데 어째 간병인만 있고 아무도 오질 않네. 난 그래도 행복하지. 이렇게 가족이 모두 곁에 있으니... 의사 좀 불러 줘"

"왜 아빠? 통증이 심해져?"

"괜찮아. 의사 선생님께 물어볼 게 있어서"

의사가 올라오자 차분하게 묻는다.


"연명치료 포기라는 건 어떻게 하는 것이오?"


가족들 앞에서 당신의 목숨줄을 포기하는 일에 자필로 서명을 하겠다는 아버지, 평소 삶의 철학이 확고했던 아버지다운 결정이었다. 놀라기는 했지만 이별이 그리 빨리 닥칠 줄 몰랐던 우리는 '그것을 왜 하필 지금'이라는 의문에 서운함만 더했을 뿐이었다.


건강이 악화되고 응급실행이 잦아지기 오래전부터 아버지는 가족들의 귀에 딱정이가 앉도록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응급 상황이 생기더라도 중환자실로는 절대 옮기지 말아. 생명유지장치며 기도 삽관도 하지 말고. 알았지? 누구나 한 번은 가는 길, 자연스럽게 가는 것이 이 아비의 마지막 소원이다."

"아빠도 참! 절대 그럴 일 없어. 좋은 생각 하면서 오래오래 사셔야지. 중환자실은 가실 일 없어요."

하루는 내게 연명치료 포기를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셨다. 애써 외면하며 답을 해드리지 못했지만 아버지가 응급실에서 돌아온 날에는 어김없이 '연명의료'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다. 저리도 강건히 당부하는 '연명의료 포기'가 아버지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싶었다.






미성년자만 아니라면 누구나 자신이 향후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해 연명의료나 호스피스에 관한 의향을 문서로 작성해 둘 수가 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아버지가 원하는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다시 말해 '연명의료 포기 의사'를 밝히는 문서다.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건복지부의 지정을 받은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등록기관을 방문하여 충분한 설명을 듣고 작성해야 한다. 등록기관을 통해 작성·등록된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가 연명의료 정보처리 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되어야 비로소 법적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당신의 위중한 상태를 감지하고 있는 듯했다. 본인이 의식이 없어지면 가족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부담을 가족들에게 지우기 싫었던 아버지는 스스로 자필 서명을 원했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단호한 결정이 몹시 서운하고 가슴이 아팠다. 묻고 또 묻고 싶었다. '어쩜 이것이 마지막일 수 있는데 사랑하는 가족과의 인연을 어찌 그리 매정하게 끊으실 수 있냐고.'


'아버지, 당신이 진정 원하셨던 죽음이란 어떤 길이었나요?' 


병원에서 돌아와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있다. 'Goode death'라는 검색어가 눈에 띄었다. 2008년 'End of Life Care Stategy' 학회지로 발표된 'Good death'의 정의다. 아버지가 왜 그러한 결정을 내렸는지, 아버지의 선택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좋은 죽음에 대한 아버지의 생각이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Good Death_좋은 죽음이란
Being treated as an individual, with dignity and respect_존엄과 존엄성을 가진 한 개인으로 대해지는 것
Being in familiar surroundings_친근한 환경 안에 있는 것
Being free from pain and other symptoms_통증이나 다른 증상에서 해방되는 것
Being in the company of close family and/or friends_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있는 것


어쩌면 아버지의 결정은 남은 가족들 뿐 아니라 아버지, 당신을 위한 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의학의 최첨단 설비 시설이 되어 있는 중환자실은 사람을 살리는 공간이 맞다. 하지만 모든 장기가 쇠하고 환자의 의식 또한 없는 상황에서 1년이고 2년이고 연명의 의미만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누가 동의할 것인가. 


만약 이 상황에 처한 사람이 '나'라면?

가족의 면회가 20분, 30분밖에 되지 않는 창살 없는 감옥과도 같은 중환자실-콧줄로 유동식을 공급받고 세 살부터 독립했던 배설의 욕구마저 제압당하는 공간, 모든 장기기관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의학적인 정상 수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 자의적인 호흡을 멈추게 하는 공간, 일종의 가수면 상태로 접어드는 곳, 가수면 상태임에도 특정 고통은 느끼지만 '아프다', '싫다', '좋다'라는 기본적인 의사표현도 할 수 없는 장소에서 나의 마지막을 보내게 되는 것에 동의할 것인가.


수도 없이 읽고 또 읽어 너덜너덜해진 책 - '인생 수업'을 쓴 퀴블러 로스 작가는  '죽음은 마지막 성장의 단계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죽어가는 자신의 하루하루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것들을 집필 한 그녀는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진정으로 배워야 할 과목은 사랑, 관계, 상실, 두려움, 인내, 받아들임, 용서, 행복이라 말하면서. 특히 그중 더 비중을 두는 과목은 '상실'과 '이별'이라고 했다. 죽어감이란 또한 '상실'의 과정이고 '이별'의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에만 급급한 우리에게 비극은 인생이 짧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너무 늦게서야 깨닫는다는 것이다.


철학자 세네카 또한 '사는 방법을 일생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 이상으로 불가사의하게 여겨지겠지만 평생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죽는 일이다'라는 말로 죽음을 정의했다. 우리가 맞닥뜨리기 싫어하고 터부시 하는 죽음이 철학가들에겐 '성장'과 '배움'의 과정으로 표현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죽는다는 것'에 대한 관념치가 어린아이 수준임을 깨닫게 만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이고 한 번 마주하게 될 우리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진지한 사색이 아닐까. 오랜 시간 준비해 왔을 나의 아버지처럼 말이다.


만감이 교차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의사가 올라왔다. 임종 담당 의사라고 했다.

"아버님, 마음의 결정은 내리신 거죠? 가족분들이 놀라셨을 텐데 지금 당장 큰일이 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사전에 존엄한 마지막을 준비해 두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럼 진행할까요?"

아버지는 의사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지체 없이 사인을 했다.


"다들 뭐 해? 밥들 먹고 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손사래로 가족들을 모두 물린 아버지는 어떠한 생각에 잠기셨을까.


정동길을 걷고 있다. 아버지는 배우 '김자옥'씨의 밝은 연기와 목소리를 좋아하셨다. 암 투병 중 그녀는 방송에서 "다른 이들은 갑작스럽게 가기도 하잖아요. 저는 '암'에 걸린 후 복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어요. 얼마나 제가 행복한 사람인지 깨닫고 있는 중이에요"라는 말을 전했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갈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는 지금 마지막 인사 중인 게다. 보고픈 사람들을 하나 둘 만나고 주변 정리를 하고 홀가분히 떠나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불안한 마음이 떠나지 않는다.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정동길을 걷고 또 걸었다. 덕수궁 돌담길에 다다르니 온 몸에 기운이 빠진다. 혼신의 힘을 다 해 견뎌내고 있다. 가는 자, 남는 자가 모두 함께 견뎌내야 하는 진통을 겪고 있는 중이다. 그것이 '사별'이다.


부디, 이번에도 아버지의 기우(杞憂)이기를 바랐다.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기적이 이번에도 일어나기를 바랐다.





'죽음'이란 것은 피고지는 한 송이 국화처럼 그렇게 여리고, 그렇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며칠 후.

나의 바람을 외면하고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그 시간이 찾아들었다.

아버지를 보고파하는 이들과 밤늦게 조용히 면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였다.

"급히 1인 병실로 옮겼어. 가족들을 부르라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옮긴 그곳이 '임종실'이라는 것을.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내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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