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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실 Oct 25. 2022

4. 아버지의 마지막 '뜨더국'

1부. 준비하는 이별의 또 다른 이름, 사별입니다



아버지가 손수 준비해 준 마지막 음식이니

뭔가 더 극적인 상황이어야 했을까

기억조차 평범한 하루였다



오래전, 엄마를 사고로 잃었던 친구가 아버지의 조문을 와서는

"엄마 돌아가시고 집에 와서 냉장고를 열어 보는데 김장 김치 한 통이 남아 있는 거야. 못 먹겠더라. 그냥 뒀지. 걔가 1년 가까이 있으니까 신내가 팍팍 나는 묵은지가 되어버린 거 있지. 언니가 궁상 그만 떨라면서 김치찌개를 하나 가득 끓여버렸는데. 그거 알아? 얼마나 맛있었던지 울다 웃다 그랬다니까."


보통은 엄마 음식을 그리워하는데 나는 아버지의 음식이 그립다. 일찌감치 건강 문제로 바깥일을 놓고 전업 주부가 되어 버린 아버지는 요리 솜씨가 좋았다. 한국 전쟁이 발발했던 16살 나이에 강원도 양양의 미군 부대에서 끼니를 잇기 위해 양식, 일식, 한식 요리를 한 덕분이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만들어주는 수제 돈가스와 도넛, 딸기잼 샌드위치와 같은 간식거리는 우리 남매의 인기에 큰 몫을 했다. 송해 선생님이 방송에서 어머니가 끓여주신 황해도 재령의 만둣국을 한 그릇만 먹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그 마음 또한 이해한다. 내게도 그리움이 담긴 '한 그릇'이 있다. 이북에서는 순우리말로 '뜨더국'이라고 정겹게 부르는 '수제비'다.


학창 시절 시험 성적이 떨어졌을 때, 대학에 합격했을 때, 8전 9기 도전 후 입사 시험에서 합격했을 때, 공무원  연수원 들어가던 아침에, 은행에 입사해 잔칫상을 벌일 때, 오랜 연인과 헤어진 후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먹던 음식 또한 '아버지의 뜨더국'이다. 아버지만의 수제비 비법은 아무도 모른다. 너무 구덕구덕 하거나 너무 무르지 않게 반죽한 녀석을 냉장고에서 약간의 숙성을 거치는 것부터 시작했다. 굵은 멸치와 다시마, 양파 등으로 낸 맑은 국물에 반죽을 뚝뚝 떼어내고 호박에 당근과 김가루 고명을 얹으니 수제비 한 그릇 뚝딱 완성이다. 쫄깃쫄깃한 식감에 소화가 잘 되는 아버지만의 뜨더국!


어릴 적 친구들이 놀러 오면 들통에 하나 가득 수제비를 끓여 주셨다. 뜨거운 김이 훅훅 올라오는 들통에 서로의 얼굴을 묻고는 벌겋게 달아오르는지도 모르게 먹던 기억이 난다. 뿐인가 고등학교 때 늦은 밤, 공부에 지칠 때면 양파며 호박에 당근을 넣어 구색 갖춘 영양 만점의 수제비를 책상 한쪽에 조용히 가져다 놓곤 하셨다. 그런 ‘수제비’도 변신을 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술을 마시다 보니 해장 요리가 필요할 때는 수제비에 고춧가루나 묵은지를 넣어 푸욱 끓인 '얼큰 수제비'가 되기도 하고 복날의 삼복더위엔 딸이 싫어하는 고기 대신 버섯이 종류별로 잔뜩 들어간 몸보신용의 수제비로 탄생하기도 했다. 


병원에 입원하기 며칠 전, 딸을 위해 손수 준비해 주신 '수제비' 한 그릇! 팔순을 훌쩍 넘긴 노부(老父)가 부엌에서 마흔 줄의 딸을 위해 수제비를 반죽하고 있다.

"비가 와서 날이 축축할 땐 우리 딸이 좋아하는 수제비를 끓여줘야지."

"아빠가 끓여주는 수제비... 평생 먹고 살았음 좋겠다."

"애비도 그러고 싶지..."

"아빠가 해 준 음식 못 먹는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플 거 같아."

아버지가 손수 준비해 준 마지막 음식이니 뭔가 더 극적인 상황이어야 했을까. 기억조차 평범한 하루였다. 넙죽 받아 든 반상 위에는 수제비 한 그릇과 양념장 종지만 있다. 요리처럼 만들어진 수제비에는 다른 반찬이 필요가 없다. 게 눈 감추듯 후후 불어가며 수제비를 건져 먹는 딸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자상한 아버지, 최근 들어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날도...






연세대로 가는 길, 4천 원이면 푸짐하게 한 그릇의 수제비를 먹을 수 있는 신촌의 명물 '신촌수제비'. 1988년에 오픈해 34년이 되어가는 이곳엔 반죽을 하고 음식을 내는 모든 분들이 회갑이나 칠순을 훌쩍 넘기셨을법한 할머니들이다. 그래서일까 수제비엔 할머니의 손맛이 담겨 있다. 정겨움도 한 스푼 넣어주시나 보다.

"한 그릇 주세요"

"아이구, 단골손님 오셨네"

10년 넘게 다니는 단골 집이다. 이전하기 전 파란 플라스틱 의자가 몇 개 놓인 허름한 가건물이었을 때부터 다녔으니 얼굴이 익어도 한참은 익었겠다. 멸치의 맑은 국물 대신 뿌옇도록 고아낸 사골국물이, 숙성한 반죽의 쫄깃함 대신 흐물흐물해 식감 없이 후루룩 넘어가는 수제비일지라도 '아버지의 뜨더국'이 그리운 날엔 이곳을 찾는다.


이전 후 - 식탁도 늘었고 수제비를 뜯는 할머니들도 늘었다


가끔 엄마를 위해 수제비를 만든다. 

'아버지의 뜨더국'을 흉내 내 보지만 어림없다.

아버지의 일기장엔 좋은 글귀가 쓰여 있었지만 '뜨더국 비법'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오늘따라 말간 멸치 국물의 쫄깃한 수제비가 그립다.

음식은 내게 또 다른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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