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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실 Oct 26. 2022

5. 존엄한 죽음에 대해 공부해야 하는 이유

1부. 준비하는 이별의 또 다른 이름, 사별입니다



존엄한 죽음에 대한 이해는 

존엄한 삶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세기의 미남’으로 불리는 프랑스 유명 배우 알랭 들롱이 “스위스에서 안락사로 생을 마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프랑스 RTL 방송 인터뷰에서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안락사에 대한 요청을 받았다”며 자신이 아버지 삶의 마지막 순간을 옆에서 지켜주기로 했다고 인터뷰했다. 그의 이런 결정은 아마도 지난해 1월 췌장암으로 고통스럽게 사망한 전 부인인 나탈리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 안락사를 희망했지만 프랑스에서는 법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는 1999년 스위스 국적 취득 후 2019년 뇌졸중 수술 후부터 스위스에 머물고 있다.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선글라스 낀 사람)이 2021년 9월 파리의 한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파리=AP 뉴시스

그는 인터뷰에서

"안락사는 가장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병원이나 생명 유지 장치를 거치지 않고 조용히 세상을 떠날 권리가 있다”라고.


유명 배우의 이러한 말 한마디는 일파만파 파장이 컸다. '베르테르 효과'다. 연예인 등 유명인이나 자신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사람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 여겨 모방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이다. 유명인이든 일반인이든 같은 인간이니 비슷한 갈등과 고통을 갖고 있다. 유명인이 자신과 유사한 문제로 갈등하고 자살하면, 자신 또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해 동일한 방법을 택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현재 극심한 고통으로 투병 중인 이들이라면 더욱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인 것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시몬느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가 쓴 <<죽음의 춤>>에서는 암과 싸우는 어머니의 고통을 차분하게 묘사했다. 톱니바퀴로 배를 자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면서 죽어가는 어머니를 보며 '사람이 죽음을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그것은 무엇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폭력이다'라고. 작가는 삶이 지식으로 이해하기에 불가능한 어떤 것이라는 것을 이 작품에서 조용히 고백하고 있다. 


이 기사를 읽은 많은 사람들이 '안락사'라는 자극적인 단어에 집중을 했지만 우리가 좀 더 개연성 있게 고민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존엄'과 '권리'였다. 생로병사 중 노화를 겪으며 '병(病)'과 '사(死)'로부터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것은 우리 모두의 고민이며 선택인 것이다. 






'자살 관광'이라는 이름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스위스의 파란 지붕 집 '블루하우스', 한때 오해가 있었다. '존엄한 죽음'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었기 때문이다. 자료를 통해 오해가 풀렸다고 해서 '조력자살', '안락사', '연명치료' 중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 갑론을박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존엄한 죽음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삶을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존엄한 죽음에 대한 이해는
존엄한 삶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스위스의 디그니타스(Dignitas) - 연합뉴스 제공


스위스의 디그니타스(Dignitas), "존엄하게 살고 존엄하게 죽기"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삶과 죽음에 대해 자문을 구하는 이에게 정보를 주고 자살을 돕는 비영리 단체이다. 단순히 자살만을 돕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처한 의료적 문제와 치료 방법에 대한 자문을 할 수도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디그니타스에 찾아온 이들에게 그들은 비록 죽을 권리가 있지만 삶을 위한 더 나은 해결책이 있지는 않은지 먼저 묻는다고 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적극적 안락사가 허용되는 나라는 단 6개뿐이다. 벨기에, 네덜란드, 콜롬비아, 룩셈부르크, 캐나다, 스페인이다. 그렇다면 스위스의 디그니타스는 어떤 단체인가? 이곳은 적극적 안락사가 아닌 '조력자살'을 돕는 기관이다.


안락사 : 의사가 약물을 주입하는 행위

조력자살 : 환자가 약물을 주입하는 행위


1980년부터 등장한 스위스의 조력자살 업체는 현재까지 4군데다. 이 중 두 곳은 외국인에 대해서도 허용이 되어 있다 보니 '자살 관광'이란 말이 생겨났다.  지금까지 조력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전년도 기준 2,000여 명에 가깝다. 블루 하우스를 거쳐 간 한국인도 3명이나 된다고 한다. 점점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하니 그 이면을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지난 6월, 우리나라에서도 ’ 의사 조력자살‘을 합법화하자는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가 되었다. 일명 ’ 조력 존엄사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현행 ’ 연명의료결정법‘의 개정안이다. 현행법은 임종 단계의 환자만이 연명의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개정안은 임종 단계가 아닌 말기 환자라도 극심한 고통을 겪는 경우라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생을 마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데 있다. 


한국리서치에서 '조력 존엄사의 입법화'에 대한 여론 조사 결과다. 참여한 이들의 연령층은 다양했고 찬성 의견이 82%로 압도적이다. 존엄사의 법적인 허용이 생명경시 현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취약 노인계층에게는 자살을 권유하는 사회적인 압박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기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닐까.  


아버지와는 이러한 사회적 문제가 이슈화 될 때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대화였다. 가족의 고통을 이해하는 일과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일이었으니까. 향후 내게도 닥칠 나의 문제를 고민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말이다.  


의료보험이 세계적으로 잘 되어 있는 대한민국이지만 '죽음'을 대하는 자세만큼은 취약하다. 유교적 영향이기도 하다. 아직도 '4'라는 숫자는 불운한 숫자라는 인식이 깊게 박혀 있고 삼삼오오 모인 자리에서 '죽은 사람'의 이야기는 좋은 날 금기시되는 것만 보아도 말이다. '의사 조력자살'의 법제화를 논하기 전에  '호스피스 완화의료 제도'를 확대하는 것은 어떨까. 모든 쟁점의 포인트는 '고통'이다. 스위스로 가는 길은 고통으로 인해 삶의 의미가 사라지는 이들의 행로인 것이다. 턱 없이 부족한 호스피스 병동을 늘리고 말기 환자의 고통과 두려움이 완화된다면 죽음을 대하는 자세도 달라질 것이다. 연명 치료 또한 홍보가 된다면 많은 부분들이 개선되지 않을까.


나는 지금 호스피스 교육을 받으러 가고 있다. 호스피스 봉사를 하기 위함이다. 아버지가 평소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존엄한 죽음'은 자녀들이 장기기증 신청을 하는 것에서부터 호스피스 봉사 활동을 선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일찍이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던 오빠는 내게 장기기증 신청에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까지 모두 작성하고 왔다고 했다. 


아버지의 '연명의료 포기'와 '존엄한 죽음'에 대한 사색이 나의 삶을 바꾸었다. 어쩜 우리는 1분 1초 아무 고통 없이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젊음에 대해 너무나 안락하게 방관자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지난 시간들을 반성해 본다.


아버지의 일기장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살아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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