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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실 Oct 28. 2022

2. 함께 늙어갈 동반자를 만들어라

2부. 아버지의 인생 수업 - 가족의 중요성


아내는
청년의 연인
중년의 말 상대
노년의 간호부이다
- 베이컨


이면에 염세주의적 성향을 가지고는 있으나 초긍정 심리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밝은 성격의 소유자,

"넌 언제 화가 나? 20년간 너랑 일하면서 화를 내는 걸 본 적이 없어. 어떻게 맨날 웃고 사니?"

"그래서 내 이름이 덩실이잖아. 덩실덩실 춤추듯 산다고"

성인군자도 아닌데 어찌 화 날 일이 없겠는가.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배려할 뿐이지. 나도 때때로 소매 깃으로 눈물 훔치고 때때로 무너질 때가 있지.


아버지의 열정과 엄마의 호기심을 닮은 나는 사랑도 이별도 요란하게 했다. 사람들은 이별이 잦았던 나에 대해 편견을 가졌다. 그 어느 누구도 나의 이별을 기억할 뿐, 매 순간 그리 뜨겁게 사랑했음에 찬사를 보내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이별 끝 고단한 마음으로 코를 빠트리고 들어오는 날엔 약주가 드시고 싶다며 술 심부름을 시키곤 했다. 그 술은 딸을 위한 술이었다. 홀짝홀짝, 주거니 받거니 홍조가 일며 얼큰히 달아오르면 술잔을 내려놓고 "살면서 뜨거운 사랑 스토리 하나쯤은 갖고  살아야지."라며 딸의 지나간 사랑에도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여행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너무 씩씩하게 살았다. 나이 사십 줄을 넘어 혼자 멋지게 살아보겠다고 선언을 할 때마다 아버지는 잔소리로 느껴지지 않게 아껴가며 말씀하시기를


"속에서 짠내가 날 때
오장육부를 내보여도 괜찮은
사내놈 하나 있음
좋지 않겠나?"

"밥상머리에 숟가락이 두 개라면 외로울지라도 고독하지는 않겠구나"

"그래도 한 집안에 남녀가 있으니 이가 서 푼 생길 정도로 게을러지지는 않겠지"

잘 살고 있다고 느낀 건 내 생각일 뿐 부모인 아버지에게는 과년하게 나이 들어가는 딸자식 모습이 안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부모님은 TV 속에서 나오는 금실 좋은 부부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끄떡하면 마누라가 차려온 밥상을 뒤엎거나 화가 난다고 손찌검으로 분풀이를 하는 아버지는 아니었다. 앞집이나 옆집이나 그 시대 그 부모처럼 평범했다. 자식 사랑은 끔찍할 정도지만 마누라인 나의 엄마에게는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아버지였을 뿐. 1935년생에 8.15 광복 전 일제강점기를 겪고 6.25 한국 전쟁을 겪은 아버지에게도 첫사랑이 있었고 엄마는 두 번째 사랑이었다. 엄마에게 들킬까 봐 아버지의 낡은 양복 안주머니에 숨겨 둔 첫사랑에게서 온 편지 한 통은 무덤까지 가지고 갈 아버지와 나만의 비밀이었다. 당신이 엄마의 첫사랑인 줄 알고 미안해하셨지만 실은 엄마의 첫사랑은 아버지가 아니다. 수년 전 엄마의 부탁으로 포천 부대에서 전역한 엄마의 첫사랑 '서중령'을 우리 남매가 몰래 찾아 드렸으니 말이다. 엄마에게도 아버지는 두 번째 사랑이었다. '쌤쌤!'이다.

"아버지는 엄마랑 결혼한 거 후회 안 해?"

"후회는 무슨. 네 엄마가 있었으니 자식 낳고 사는 기쁨도 얻었지."

"다시 태어나도 결혼은 하고 싶어?"

"아마 했을 거야"

"혼자가 편하잖아"

"젊을 때야 좋지. 나이 들어선 친구 같은 아내가 있는 것이 훨씬 삶이 풍요롭지"

우리 남매에게 나이가 들도록 결혼하라고 닦달을 해 본 적이 없는 걸로 보아 아버지는 '결혼'이 '좋다', '안 좋다'를 말씀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미혼이어도 좋고 비혼이어도 좋다. 멋지게 커리어를 쌓아가는 여성으로 사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친구 같은 이를 만나 서로 의지하며 살기를 바랄 뿐이었다. 지난번엔 유교의 시조인 공자나 석가모니도 짝을 이루고 살았지 않느냐고 생떼를 쓰기도 하셨다.


덕분에 3년 전, 남자 친구가 생겼다. 아주 우연한 공간인 '버스' 안에서 인연을 찾았다. 후회 없이 사랑할 남자를 만나 지금도 아낌없이 사랑하고 있다. 늦게 만난 덕분에 더 열심히 사랑하고 있다. 내년이면 '연인'에서 '부부'로 살게 되는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부부라는 새로운 관계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조화를 이루어 가는 과정이지만 치약을 짜는 방식에서부터 잠버릇에 이르기까지 익숙한 자신만의 방식을 조율해야 하기에 부딪힘은 피해 갈 수가 없다는 것을. 단지 우리는 한 가지를 선택했다.

'밥상머리에 수저 두 벌을 놓자'라고.


나는 지금도 용기 있는 선택, 비혼을 응원한다. 열정이 넘쳐 의도치 않게 '골드미스'가 된 미혼도 응원한다. 출산율 저하로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달려있다 해도 시대가 바뀌어 삶의 방식에도 선택권이 다양해졌으니까.

단지, 속에서 짠내가 날 때 오장육부를 내보여도 괜찮은 사내놈 하나 있으면 좋지 않겠냐는 아버지의 의견에는 격하게 공감한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가며 배우는 것이 비단 서로의 감정 반창고가 되어주는 일만이 아닌 존중과 배려를 배워나가는 일종의 사회적 관계이기도 함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매 순간이 소중한 법이다


벨이 울린다.

"날도 쌀쌀해지는데 따뜻한 굴국밥 먹으러 갈까"

오늘도 식당에서 수저 두 벌이 차려졌다.

함께라서 좋은 이유 한 가지다.



- 이 글은 아버지가 생전에 딸에게 당부하고 또 당부하던 말씀을 엮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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