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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실 Oct 08. 2024

여는 말. 마포대교가 손짓할 때는 에스프레소 한 잔

세상이 나를 등졌다고 느낄 때


태평스러워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서글픈 소리가 나지

- 나쯔메 소오세끼





충청남도 예산읍에 위치한 작은 시골 카페, 벚꽃 나무가 수 킬로에 달해 초봄이면 장관을 이루는 풍경 맛집이기도 하다. 유동 인구도 없다는 이곳에서 나는 카페를 오픈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촌뜨기에 특별한 연고지도 없는 예산에서 카페를 운영하게 된 사연, 중년에 맞닥뜨린 경제적 위기를 탈출하게 된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한다.  일 년 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카페 창업을 했다가 전전긍긍하며 폐업을 생각하는 서울 카페 점주들의 이야기와 함께. 이런 작은 카페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결코 서울의 숨 막히는 월세를 지불하고 남은 순수익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카페를 하고 싶어 하는 많은 이들의 꿈이 나의 경험에 비추어 도움이 되기를...



이 년 전, 여름


"자긴 인생에서 뭐가 제일 후회스러워?"

"제일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어?"

"마지막 하루가 남아 있다면 뭘 하고 싶어?"


늦은 인연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며 우여곡절 시간을 함께 보낸 신랑과 소주 한 잔을 기울이고 있다. 전라도 남자답게 비릿한 것들이라면 설레발을 치던 이가 오늘은 심란한 마음 탓인지 매운탕만 휘이휘이 저을 뿐.


호주머니의 단 돈 1만 원도 귀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사할 40평 상암동 집을 흥정하며 행복한 꿈에 젖어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대기업의 억대 연봉을 받다가 마흔여섯에 당당하게 사표를 집어던지고 나온 것은 패기와 열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꿈이 있었고 그 꿈은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성장시킬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고 해 두자. 지금의 결과는 열심히 산 대가라고 하기엔 너무 가혹했다. 바깥세상은 '나'같은 종류의 인간을 명명하기를 좋은 말로 '온실 속의 화초'라 부르더라. 숱하게 먼저 은퇴한 선배들의 퇴직금이 그리 쓰였듯 내 종잣돈 또한, 돈 냄새 맡은 지인의 사기에 투자 실패까지 이어져 누군가의 입에 꿀떡같이 던져졌다.


아, 나의 퇴직금이여~


지금 내 두 손에 남겨져 있는 건 달랑 넉 장 짜리 등기 문서! 10년 정도 후에 개발 호재가 있다는, 묶여버려 팔지도 못하는, 언제 오를지 기약도 없는 토지 등기 문서가 전 재산이 되어버렸다.


어느새, 둘이 마신 소주가 한 병, 두 병...

"자기야, 우리 마포대교 갈까?"

"후회 없어?"

"자기랑 같이 있는데 뭔 후회..."

"그래, 우린 자식도 없으니 슬퍼할 이도 없겠다"

"근데, 배고프지 않아?"

"밥은 먹고 가자"


터벅터벅 5분 여 걸었을 뿐인데 옛 말로 십 리는 걸은 듯하다.

"역시 해장국은 여기가 제일 잘해"

부추를 가득 넣은 해장국에 또 기울이게 되는 한 잔. 신랑의 얼굴을 빤히 바라다보았다. 지인에게 사기당하고 하룻밤 사이 십여 년은 늙어 보이는 얼굴이다. 뿐인가 거칠고 투박한 손에 들린 잔엔 초라함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 하는데, 과거의 후회로 가득 차 있는 우리가 느끼고 있는 '오늘'은 살아온 날 중 가장 나이 든 '낡은 날'이었다.


우스갯소리 반, 진심 반의 '마포대교'를 이야기했지만 우리에게 그런 부질없는(?) 용기는 없었다. 물론 그런 말은 농담으로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누군가에게는 가지고 싶었으나 가지지 못했던 평범한 '그날 하루'일지 모르니 말이다. 살다 보면 힘든 적이 한두 번이던가. 형체 없는 우울감이 가슴 뜨겁게 올라와 신경 안정제 열 알은 먹은 듯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리는 경우는 허다하지 않은가.




마포대교가 저만치 보인다. 인적이 드문 강가를 불빛 따라 맨발로 걷고 있다. 여름밤인데도 밤의 찬 기운이 발끝을 아리게 만든다.  말없이 삼십여 분을 걸었다.

"자기야, 커피 마시고 싶다"

"추워?"

"응"


신랑이 편의점에서 사 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방금 전까지 일었던 한기가 사라지면서 마음도 노곤노곤해진다.

'풋'

웃음이 났다. 술 냄새가 풀풀 나는 중년의 부부 사이에 온기가 돈다. 둘이라 다행스러웠다. 어이없게도 따뜻한 편의점 커피 잔에 하니 생겨난 '마포대교의 철없는 계획'은 무너졌다.




그렇게 없던 계획을 했던 시간이 어느덧 2년을 지나고 있다. 감당할 없으리만치 힘들었지만 글로 옮겨 놓고 보니 가볍디가볍다. 아무리 힘들었던 시간도 시간과 함께 무뎌지는 법이니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우린 허투루 살지 않았다!

마음이 노곤하여 잠시 게으름을 피우며 쉬어간 시간은 있을지라도.

모든 경험에는 인생의 흔적이 남는다.

그 흔적이 다시 우리를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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