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충돌과 혼란
내가 다이슨에 입사를 확정한 당시, 다이슨이라는 브랜드는 한국에 생소한 이름이 아니었다.
수년동안 국내의 한 회사에서 성공적으로 수입/판매를 해오고 있었고, 그 잠재력을 본 다이슨 영국 본사에서 직접 오피스를 셋업 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다이슨 코리아에 입사했을 때, 나보다 앞서서 입사한 사람들이 15명 내외로 근무하고 있었다.
Marketing, PR, IT, Finance, Legal, SCM, Retail, Engineering 팀에 1명 혹은 2~3명의 인원이 일하고 있었다. (SCM팀은 Head of SCM 팀장님이 있는 상태에서 Logistics Manager로 내가 두 번째 입사자였다.)
그 외의 팀들 - 예를 들면 HR, Customer Service, Business Development 등 - 은 여전히 채용 중인 상태였다. 그리고 내가 입사하고 약 한 달 후 다이슨 코리아의 첫 번째 Sales 팀으로 Business Development를 담당할 친구가 입사했다.
그런데 이 친구 혼자 그 많은 유통채널과 영업을 혼자서?
아니. 이 친구는 다이슨 코리아와 기존 유통채널과의 관계 (와 계약)를 새롭게 정립하고 셋업 하는 것이 당장의 주된 역할이었다. (혼자서 모든 유통사를 다 만나고 다녔다.)
위에 말했듯, 다이슨이 직접 진출하기 전부터 다이슨 브랜드는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알려져 있었고,
이에 다이슨 본사는 당시 한국 유통을 담당했던 회사의 본부장님을 다이슨 코리아의 지사장으로, 그리고 그 회사의 영업팀을 그대로 다이슨 코리아의 영업팀으로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얼핏 보면 굉장히 자연스럽고 또한 논리적인 결정이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상당한 문화적 충돌이 있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전통적인 한국 회사에서, 이미 다이슨 브랜드를 키우고 성공시킨 경험이 있는 회사의 영업팀이,
새롭게 설립한 외국계 한국 지사에서, 대부분 외국계 경력만을 가진 - 그리고 다이슨이라는 브랜드를 다루어본 경험이 대부분의 경우 오히려 영업팀보다 적은 마케팅/SCM/Finance 팀과 아무런 갈등 없이 잘 지내리라는 예상은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어떤 제품을 얼마나 수입하고, 어떠한 방법으로 마케팅해서, 어떠한 스토리로 팔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맞춰야 할 다양한 내부 가이드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영업과 마케팅은, 또 영업과 SCM은 어떤 식으로 일해야 하는지.
많은 부분에서 충돌이 일어났고,
누구 하나의 잘못이 아닌 복잡적인 이유들이 많았고, 나 역시도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회사는 많은 부분에서 여전히 혼란스럽고 문제가 쌓여가고 있었다.
이 안에서 나는 어땠을까?
멍청했다. 그리고 순진했다.
주문부터 출고 후 반품에 대한 프로세스를 디자인하면서,
나는 영업팀으로부터 현재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As-Is에 대한 인풋을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To-Be를 만들었다.
여러 번의 미팅, 회의 최종 프레젠테이션을 거쳐 이 프로세스는 공표되었고,
그리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많은 경우에 내 프로세스는 영업팀에 의해 조용히 무시되었다.
왜? 도대체 왜?
다이슨이라는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려면 이 프로세스는 당연히 따라야 되는 거 아닌가?
언제까지 주먹구구 기존 방식으로 일할 건데?
분노와 함께,
왜 그들이 틀렸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보다 여러 관점에서 디테일하게 문제를 분석하던 중.
깨달았다.
그들이 아니라 내가 틀렸다는 걸.
내가 디자인한 프로세스는 내가 일했던 예전 회사들에서의 경험과 이 회사들과 유통사간의 관계를 바탕으로 만든 프로세스였다. 제품의 특성도, 가격도, 그리고 유통사와의 관계도 많이 달랐다.
내가 만든 프로세스는,
- 거의 일어나지 않을 상황을 매주 발생한다고 예상하고,
- 이를 위해 모든 케이스에 대해서 여러 단계의 보고/리뷰/승인을 진행해야만 했다.
당연히 불필요한 문서작업과 커뮤니케이션이 늘어나게 되고,
편안함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이 프로세스를 간단히 무시했다.
이후 영업팀의 인풋을 받아 보다 간소화된 수정된 프로세스를 적용 - 그리고 이번엔 제대로 작동했다 - 했고,
동시에 영업팀 이사님을 찾아가 말씀드렸다.
"제가 틀렸네요. 현장이 어떻게 일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프로세스를 만들고 말았어요. 다음부턴 보다 먼저 많이 여쭤보겠습니다."
..
하지만 아직도 많은 문제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