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ips - 글로벌 회사의 위엄
지금 돌아오면 필립스 시절의 나는 더 이상 주니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팀원을 관리해야 한다거나 혹은 커다란 책임감을 가져야만 했던 자리는 아니었다 (=보다 적은 스트레스)
동시에 성장하는 회사, 또 흔히 말하는 잘 나가는 글로벌 회사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멋진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던 시기였다.
또한 비슷한 또래의 동생, 친구, 선배들과 함께 '동료애'라는 것을 느끼며 함께 웃고, 욕하고, 분노하고, 또다시 웃고 떠들었던 그런 시기였다.
당시 내가 속했던 필립스의 Personal Health 사업부는, 흔히 필립스 하면 떠오르는 면도기, 주방가전, 전동 칫솔 등의 카테고리가 여기에 들어간다. 물론 글로벌 차원에서 더 크고 영향력이 있던 조직은 MRI, CT 기기 등을 다루는 Health Tech 쪽이다.
Personal Health 쪽은 보다 젊고 자유로운 분위기로, 출근할 때도 특별한 복장 규정이 없었고, 리더분들도 이러한 분위기에 익숙한 분들이셨다. 반면, Health Tech 쪽은 병원과 의사들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보다 딱딱하고 정숙한 분위기로 전원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사업부였고, 리더분들은 필립스에서 10년 이상 근무했던 이쪽 업계와 필립스라는 회사에 빠삭한 그런 분들이셨다.
우리 쪽은 Health Tech 쪽을 '꼰대'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쪽은 우리를 '철없는 놈들'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업부 모두 어쨌거나 필립스라는 하나의 회사 안에 있었기 때문에, 글로벌 이벤트 등은 모두 하나로 진행이 되었고, PEC라고 불리는 Philips Excellence Competition 도 그중 하나였다.
PEC는, 전 세계의 필립스 오피스에서 큰 성과를 낸 팀을 축하하고, 본인들의 성과를 필립스 본사 임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 글로벌 이벤트였다.
대부분 일이 너무 바쁘기 때문에 우리 쪽은 아무도 신경을 못쓰고 있었는데, 어느 날 SCM 상무님이 오셔서 한 말씀하셨다.
"PEC 우리 팀 성과 내가 써서 냈어. 스크리닝 (1차적으로 제출한 문서 - 어떤 문제를, 왜, 어떻게 해결했는지 - 를 바탕으로 서류 스크리닝 프로세스) 은 통과했고, 몇 주 후에 한국팀들 사이에서 프레젠테이션 해야 돼."
"네??? 왜 그러셨어요!! 일 많아서 맨날 야근하는데!!!!"
그리고 이건 현실이 되었다.
상무님이 제출한 문서에 적힌 팀원들과 함께,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PPT를 만들고, 발표를 준비하는데 상당한 수준의 야근이 필요했다 (준비하면서 팀원들과 함께 상무님 욕도 많이 했다. 왜 이런 걸 갑자기 내셨냐고.)
한국 오피스 프레젠테이션 날.
한국 오피스에서는 우리 팀을 포함 여러 팀이 경쟁 PT를 했고, 우리 팀이 한국 대표로 뽑히게 되었다.
여기부터는 스케일이 커졌다.
한국 대표로 뽑힌 우리 팀은 필리핀으로 날아가서 아태지역 오피스들의 대표로 온 친구들과 함께 또다시 경쟁 피티를 해야만 했다. 낮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필리핀 세부의 각종 액티비티들 (서핑, 바다 수영, 아이스 브레이킹 그룹 액티비티 등)을 참석하고, 저녁부터 새벽까지는 또다시 마지막날에 진행될 피티 준비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날 피티 당일.
우리 팀은 또다시 순위권에 들었고, 이젠 독일 함부르크로 날아가서 Final 라운드를 해야만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야근을 시작했고.
글로벌 프로젝트 팀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 같이 업무를 진행했던 네덜란드 본사의 Finance 담당 친구를 새롭게 프로젝트 팀에 추가했다.
그리고 독일로 날아갔고.
필립스는 파크 하얏트 호텔에서 1인당 1개의 객실을 배치하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참고로 필립스는 장기자랑 이벤트 때에도 팀별로 준비할 수 있는 비용을 지원했고 - 이 비용을 통해 장기자랑을 위한 소품을 사거나, 노래를 배우거나, 춤을 배워서 장기자랑에 올라갈 수 있었다)
필리핀에서와 마찬가지로 낮에는 각종 액티비티에 참석했고,
밤에는 또다시 새벽까지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일을 반복했다.
이번 심사 위원은 필립스 글로벌 본사의 CEO를 포함한, C 레벨 임원들.
결과는?
안타깝게도 우리 팀의 여정은 여기까지였다.
순위권에 들지 못했고, 1등은 누구나 예상가능했던 - 교회 목사님 수준의 인자한 모습으로 감동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했던 팀이 가져갔다. 아쉬웠지만 우리 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던 부분이었고, 그동안 즐기고, 배우고, 기회를 부여받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컸다.
마지막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저녁은 Dinner Party 가 예정되어 있었고,
우리 팀은 모두 가벼운 복장으로 파티장에 갔고.
우리 팀을 제외한 모든 직원이 파티 복장 (남자는 턱시도 스타일의 정장, 여자는 매우 화려한 드레스 스타일의 옷들)을 하고 있었고, 우리만 어설픈 비즈니스 캐주얼 스타일로 얼떨떨하게 자리했다.
수많은 알코올, 음식이 들어가고, 어느덧 밤이 깊은 시간.
난 호텔 라운지에서 팀원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었던 상황.
갑자기 같이 맥주를 마시고 있던 네덜란드 친구가 가까이 다가와서 속삭였다.
"우리 저쪽 테이블 가서 마시자. 저기 임원들 다 있어. 저 쪽으로 가서 대화에 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좋은 인상을 주는 거야."
"... 굳이? 난 그냥 여기서 편하게 마실래."
야심맨이라는 우리의 놀림을 뒤로한 채, 그 친구는 자리를 옮겨 임원들 사이로 끼어 들어갔다.
수년 뒤 이 친구는 내가 아직 중간 관리자 역할에 머물러 있을 때, 한 이미징 회사의 CEO로 자리를 옮긴다. 대단한 녀석.
...
이렇게 PEC는 끝이 났지만, 필립스에서는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이벤트들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필립스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2년이 거의 다 될 무렵.
다시 한번 이직의 기로에 서게 된다.
다음 글은 그에 대한 내용이다.
... 아 참.
한 가지 더.
내 전체 커리어에서, 난 리더들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사람이 모두 모인 타운홀등의 이벤트에서 직접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시작은 필립스 시절이었다.
그날은 본사의 C레벨 임원 (이 아저씨는 지금 필립스에서 분사한 회사의 CEO 다) 이 한국에 와서 Lean Principle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던 날이었다.
발표가 끝나고, 타운홀에서 질문이 있냐고 했을 때 내가 물었다.
"As SCM is my profession, I do love lean principle, and I have no doubt of its benefits. But lean itself is not enough. I think lean is one tool, but we definitely need to have another tool - system to support lean principle. We have too manual job due to lack of system. How do you think of it?"
"Thanks for the question. I agree with you. And we are going to invest xxx amount of money into it to improve our system and process."
하지만 이 투자가 내가 근무하는 Personal Health 사업부에도 들어오는 것을 확실히 개런티 받고 싶었던 나는, 이 아저씨의 링크드인까지 찾아 들어가서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투자가 우리 사업부에도 들어오는 게 맞냐고.
무례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내 질문에, 이 아저씨는 친절히 링크드인으로 '그렇다'는 답변을 주었고, 그때서야 나는 만족할 수 있었다.
그 결과?
.... 다음번 글로벌 임원이 한국 방문하기 전. 회사의 PR 팀에서 내게 다가왔다.
"상민님, 혹시 질문하실 거 있으면 미리 공유 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임원분들께 미리 공유드리려고요."
... 물론 나는 질문을 미리 제출하지 않고, 언제나 - 그리고 필립스 이후의 다른 회사에서도 - 그 자리에서 직접적으로 질문을 계속해서 던져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