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은 유유히 대표
출판사에 들어오는 투고 원고의 대부분은 ‘누구에게’ 하고 싶은 말인지 독자가 불분명할 때가 많다. 하지만 출판사는 모든 이야기가 아니라 ‘팔릴 만한’ 이야기를 찾는다. 이 원고를 돈을 주고 살 만한 책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한다.
"지금까지 만든 책 중에서 투고 원고는 단 한 권이었어요. 당시 편집부의 막내라서, 첫 직장을 퇴사할 때 들고 나온 투고 원고가 『그와 우연히, 아프리카』라는 여행 에세이였습니다. 제 또래의 작가가 프랑스인 남자친구와 100일간 아프리카를 다녀온 이야기였고요. 두 사람의 운명적 사랑이 미지의 아프리카 국가들의 풍경과 맞닿으면서 환상적이었고, 더불어 투고 후 프랑스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 원고를 검토해달라고 했던 열정도 눈에 띄게 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편집자가 처음 책을 내는 작가에게 기대하는 건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문장은 편집 과정을 거치면서 나아질 수 있다. 하지만 책의 알맹이는 저자 본인이 이미 갖고 있어서 그 본질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이지은 대표가수많은 도쿄 여행기 중에서 임진아 작가의 <아직, 도쿄>를 만든 건 "작가가 문구 디자이너 출신에 일본 뮤지션을 좋아하고 일어도 조금 할 줄 알고 일본 드라마와 영화의 장면들을 기억하는 감성이 좋아서"였다.
"임진아 작가라면 독자들이 원하는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여행기를 쓸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도쿄에 가는 독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장소, 보고 싶어 하는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저자라는 신뢰 말이죠. 그래서 쓰는 사람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 일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투고의 팁이라면 샘플 원고 3~4편만 보내도 충분히 출판사에서 검토하고 판단할 수 있으니, 반드시 완성본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다만 저자가 생각한 기획 의도와 타깃 독자를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편집자들은 매일매일 수많은 글을 읽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나 문장에도 쉽게 감동하지 않는다. 그런 편집자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 게 뭘까, 내가 쓴 이야기 중에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무엇일지 그 반짝이는 하나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한눈에 반하게 해서 책이 나오는 긴 시간, 즉 집필부터 편집까지 1년은 걸릴 프로젝트를 잘 끌고 가보겠다는 동력을 심어줄 수 있는 원고"를 이지은 대표는 기다린다.
"평소 제가 관심을 두고 있던 키워드가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과 일치할 때, 적극적으로 출간을 제안하는 편입니다. 한창 2020년 초에는 '생존 재테크'에 꽂혀 김얀 작가님이 브런치에 쓴 첫 화 ‘돈독’을 보고 연락드렸어요. 2019년 여름, 은행 대출을 받으러 갔다가 연 소득 480만 원에 충격을 받고 일단 돈과 관련된 책을 읽고 월급 200만 원을 벌기 위해 치과에 재취직하고 파이프라인을 만들기 위해 방을 모두 내어주고 자신은 거실에서 자고 있다는 이야기. 돈에 관심이 없고 나와 관계 없다고 미뤄두었던 2030 여성 독자층에게 ‘돈’을 중심으로 일상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습관을 만들게끔 하는 책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작가의 경험이 지금 헤매고 있는 독자들에게 충분히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오늘부터 돈독하게』는 그런 책이 됐다고 생각해요."
현재 이지은 유유히 대표는 서울 연남동 카페 '얼스어스' 대표의 책을 만들고 있다. '기후위기'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즐겨 보던 뉴스레터에서 'ESG 경영에 관련한 스몰 브랜드'의 한 사례로 얼스어스가 언급되어 알게 됐다.
"'제로웨이스트, 다회용기'라는 단어가 존재하기 전부터 ‘지구를 위한 일이 우리를 위한 일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카페를 운영 중인 대표님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제안드렸어요. 마침 대표님이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었고, 그 글이 샘플 원고로 참고가 되어 책을 함께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어떤 관심 키워드를 갖고 있는 편집자가 검색했을 때 눈에 띄는 것도 책 출간을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편집자가 이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할 때는 '글을 쓰는 작가의 매력' 즉, 글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히 담긴 글을 만났을 때다. '어쩜 이렇게 내 마음하고 똑같지' 같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에 편집자는 매력을 느낀다. 물론 원석 같은 저자의 매력을 발견했을 때, 가장 기쁘다.
"글을 읽어줄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고, 눈앞에 세워둔 작가만이 쓸 수 있는 글이 있어요. 내 글을 읽어줄 사람을 구체적으로 떠올렸을 때, 말하고자 하는 바도 명확해지고 그 사람이 궁금해 할 부분을 더 친절하게 설명하게 되고, 이 글을 통해 이 사람에게 어떤 반응을 얻고 싶은지도 끝까지 붙잡고 갈 수 있을 테니까요."
좋은 책을 많이 보는 것이 기획력을 키우는 방법이다. 편집자가 책을 만들 때는 "이 원고가 다른 책에는 없는 미덕이 뭘까", "이 책의 핵심 메시지가 뭘까"를 고민한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 있던 생각을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책이 되게 하기 위해서, 그 접점을 넓히기 위해서 하는 고민이다.
"기획력을 키우고 싶다면, 어떤 에세이가 좋았을 때 이 책이 왜 좋았는지 독자의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따져보는 것이 좋아요. 어떤 소재가 매력적이었다면, 나도 이 소재로 쓸 이야기가 있는지 고민해보고요. 차례가 매력적이다 하면 그 차례와 비슷하게 내가 쓸 수 있는 글로 나의 차례를 만들어볼 수도 있고요. 꾸준한 훈련만이 답일 것 같습니다. 쓰고 싶은 분야의 글을 많이 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연습이 필요하고, 그 글들을 하나의 메시지로 기획해서 목차를 구성해보는 연습도 중요하다. 이지은 유유히 대표는 플랫폼에 대외적으로 연재를 약속하고 글을 쓰는 것을 추천한다. 불특정 다수에게 많이 보여주고 어떤 반응이라도 받아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 이지은 유유히 대표
18년차 편집자이자 출판사 유유히 대표.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기획을 시작하는 게 특기. 분야를 가리지 않고 책을 만들고 있지만, 누군가의 삶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를 좋아해 에세이를 주 분야로 삼고 있다. 휴먼 에세이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여행 에세이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재테크 에세이 『오늘부터 돈독하게』, 직업 에세이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등 지금까지 88권의 책을 만들었다. 일 에세이 『내 인생도 편집이 되나요』(달), 지소연 선수 인터뷰집 『너의 꿈이 될게』 (클)를 썼으며, 책을 만들고 파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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