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옥 어떤책 대표
기승전결을 갖춘 하나의 서사로 연결되는 글 뭉치를 보면 ‘이건 책이어야겠다’ 생각한다. 모든 글이 책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시작이 되는 글과 끝에 올 글이 머리에 그려질 만큼 완결된 구조를 발견하면, 책 만드는 사람의 욕심이 발동한다.
"나만 재밌는 글이 아니라,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 읽어도 흥미로운 글을 써야 하는데요. 그러려면 자아를 어느 정도 내려놓아야 하는 것 같아요.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비대해진 자아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지가 글쓰기의 중요한 지점이 됩니다."
출판사에 투고 원고가 오면 가장 먼저 살피는 두 가지는 원고의 메시지와 저자의 이력이다. “이런 이야기를 이런 사람이 들려준다면, 제법 재밌겠다”하는 원고들에 우선 관심이 간다. 메시지는 책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이 메시지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지, 여러 사람과 나눌 가치가 있는지, 출판사의 가치관과 맞는지를 고민하고 출간 여부를 결정한다.
"저자의 이력이 사회적 성취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는지, 원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설득력이 있는지를 뜻해요. 논픽션에는 저자의 경험담이 들어가게 마련인데, 저자의 경험과 잘 맞는 메시지를 담아야 책에도 설득력이 생기고, 독자들에게도 이야기를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제 경우를 예로 든다면,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들의 의료권을 이야기하는 책-교도소에서 근무한 공중보건의', '일찍 은퇴한 사람들을 위한 실용서-10년 전에 은퇴한 40대 저자'처럼 연결이 가능한 원고를 발견하면 계약하고 싶어집니다."
2022년에 출간된 한소리 작가의 『우리끼리도 잘 살아』도 출판사에 투고로 들어온 원고였다. 메일에 저자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밝혀서 처음에는 성소수자 저자들이 낸 기존의 책들을 떠올렸다. 비슷한 분위기와 주제의 책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청년 레즈비언의 가족 에세이였다.
"저는 성소수자가 가족과 우애롭게 지내는 이야기보다 불화하는 이야기를 더 많이 읽어 왔어요. 그래서인지 가족에 대한 사랑을 전한다는 점에서 이 원고가 특별하게 느껴졌죠. 뿔뿔이 흩어지고, 가난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가족인데도 책임질 가족 구성원을 찾거나 탓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 자체로 사랑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성소수자를 가까이 이해할 수 있으면서, 누구에게나 중요할 가족과 사랑을 주제로 삼은 원고라서 ‘이 책 내야겠다’고 확고하게 마음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냥 사랑이 아니라 너무 힘든 와중에도 사랑을 추구한다는 점이 포인트예요. 저자의 경험과 환경이 메시지를 강화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김정옥 어떤책 대표는 책을 내고 싶어하는 예비 저자들에게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고 줄거리를 이야기하듯 누군가에게 들려줄 때, 듣는 사람이 어느 대목에서 어떤 질문을 할지를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나라는 사람을 두고 다른 사람은 무엇을 가장 궁금해할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면, 그건 꼭 책이 아니어도 됩니다. 하지만 책을 쓰고 싶다면, 먼저 나라는 사람과 거리를 두고, 다른 사람을 보듯 한 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먄 다른 사람들이 귀 기울일법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어요."
� 김정옥 어떤책 대표
올해로 22년차 편집자다. 어린이책, 예술서 등 여러 분야를 거쳤지만, 지금은 인문서와 논픽션을 주로 펴내는 어떤책에서 대표 겸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어떤책에서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쉬운 천국』 , 『우울한 엄마들의 살롱』,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 등을 만들었다.
인스타그램 어떤책 (@acertainbook_offic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