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의 반란

4-2

by 심색필 SSF

“광민아. 광민아.”

“아... 네.”

“내 말 듣고는 있어?”

“죄송합니다.”

“충격받은 건 이해하는데 네가 잘 기억을 해내야 해.”

“교수님. 그런데 아시다시피 당시 자료로 지금 무언가를 적용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설화적인 부분도 너무 많고... 그리고...”

“그리고... 뭐?”

“아... 말이 안 돼요. 그냥. 니콜라스 박사님도 괜히 학장님한테 까이고 퇴출당할 뻔한 게 아니라니깐요. 그건 그냥 설화에 불과해요. 그 옛날 고대민족들이 만든 설화요.”

“지금 이 상황을 보고도?”


끊임없이 의심하고 증명하는 것이 과학자들의 숙명이라면, 불완전한 단서들을 연결해 의미 있는 이야기를 복원하는 것이 사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의 숙명이었다. 당시의 사회적 환경과 문화. 누가? 어떻게? 왜? 하필 그곳에서 기록했는지까지 모두 고려의 대상으로 들어갔다. 문제는 해석하는 사람의 시점과 관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목소리를 내는 털이 수북한 악마들이 창궐했던 고대에 그들을 봉인하기 위해 쓰이는 방법 중 하나가 이 거대한 말뚝인 오벨리스크 타워였다.”

“박사님. 질문 있습니다.”

“그래.”

“그런데 그렇게 재빠른 생명체가 저런 거대한 타원에 어떻게 순순히 저런 거대한 돌기둥에 당해줬다는 건가요? 박사님의 말씀대로라면 인간의 목소리를 내고 여기저기 신출귀몰하게 나타나는 악마들은 활도 피할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저런 거대한 탑에 당한다고요?”

“이런 멍청한 질문을 봤나? 당연히 제압하고 포박한 다음에 탑 아래 가둔 거겠지.”

“그런데 그렇게 제압할 수 있으면 왜 굳이 탑 아래 가둔 건가요?”

“그건 좋은 질문이야. 고대의 인간들이 굳이 그를 탑 아래 가둔 이유는 놈을 계속해서 포박하거나 묶어둘 수 없었기 때문이지. 왜냐하면 놈은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사악한 혀를 가졌으니까.”

“그러면 왜 굳이 공주를 함께 순장한 거죠?”

“악마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서 공주의 입을 빌려 살려달라는 말을 하지. 그러나, 모든 역사가 그렇듯
이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항상 사람들의 미움을 살 수밖에 없었기에 제물이 된 공주의 말은 사람들의 귀에 쉽사리 들어오지 않았던 거야. 어떻게 보면 악마를 봉인한 왕국의 사람들이 더 악마 같았던 거지. 그 어떤 잘못도 하지 않은 공주가 산채로 순장을 당함에도 그 누구도 구원의 손을 내밀지 않았으니까. 심지어 그녀의 형제자매들과 부모마저도.”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맹신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심청전과 별주부전이 동화로 그친 데는 다 그 이유가 있듯이 재미있는 설화는 대부분의 실화에 말도 안 되는 허구의 상상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네가 보기에는 지금 이 상황도 설화의 일종 같아? 수천 년 뒤 인류가 살아남는다면 그때 우리 기록을 보고도 사람들이 이 현실을 설화라고 하겠어?”

“그런데 그건 흑사병이나 그런 역사적 사실을...”

“기록된 언어와 시기의 차이야.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넘겨짚는 건 초보 중에 초보들만 하는 실수고.”


머리가 복잡했다. 나는 아무래도 사학자보다는 과학자에 맞는 두뇌를 가지고 있었던 걸까? 근거가 부족한 당시의 가설을 지금의 현상과 동일시하기에는 계속된 인지부조화가 일어났다.


“향을 멀리해야 해요.”

“향을 멀리한다고?”

“염소 목동 칼리에 대한 설은 너무나 많지만 니콜라스 박사님은 그중 가장 신빙성이 높은 이야기로 수도원의 이야기를 말하셨어요.”

“염소가 커피 열매를 먹고 잠을 자지 않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칼디가 커피열매를 먹었다는 설화?”

“네. 커피열매가 잠도 줄이고 기운도 차리게 해 주어서 ‘천국에서 온 열매’라며 칭송하다 불같은 칼디의 성격을 보고 ‘신의 저주’라며 커피 열매를 없애려고 불에 던졌다는 이야기요.”

“그게 왜?”

“커피가 타는 향을 맡으면서 수도원장이 바로 입장을 바꿨거든요. 수도원장의 입에서 신의 저주라고까지 말했던 그 열매가 불에 타는 향 하나로 수도원 전체를 매료시켰어요.”

“그게 커피가 악마의 열매라고 부른 첫 단추가 되었다는 거야?”

“네. 그런데 커피열매를 불에 지졌다는 내용과 비슷한 내용이 순장의 기록에도 남아있어요. 공주를 순장할 때 왕이 그 목소리를 듣는 게 너무 힘들다며 악마와 공주를 함께 태워버렸다는 내용이요.”

“그거랑 커피가 왜 상관이 있는 거지?”

“불에 타고 있는 괴물과 공주의 시신 위로 오벨리스크 탑이 올라갔는데 한동안 탑 주변으로 향긋한 향이 퍼져 사람들이 탑 주변을 배회하며 땅을 팠다고 했어요. 왕의 명령에 향기에 홀려 정신이 나가 탑 주변을 도굴한 사람들의 목이 잘려나갔는데 그 피가 지천을 뒤덮을 정도로 많았다고들 하고요.”

“그럼 지금 이 사태의 원인이 향이다?”

“가능성이 높죠?”


말을 하다 말고 교수님과 나는 순간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간 듯 서로 눈을 마주쳤다. 좀비들에게 쫓긴 나머지 이곳에 커피를 파기하는 걸 까먹은 우리였다. 그리고, 순간 향긋한 커피 향이 코끝을 찌르는 게 느껴졌다.


“다들 코 막아요!”

“네? 무슨?”

“커피 탄 사람 있어요? 커피 없애요!”

집에 있는 강아지를 봐야 한다며 교수님에게 이 상황이 언제 끝나냐고 묻던 은비라는 여자. 그 여자의 손에 검은 커피하나가 들려 있었다. 좀비가 어떻게 발현되는지 모르는 이 상황에 커피 향을 저렇게 방치한다는 건 꽤나 위험한 일이었다.

“왜요? 커피 한잔 마신다는데?”

“아니. 버리라고! 커피 마시면 안 된다고요! 다들 코 막아요! 빨리!”

커피를 보자 나도 모르게 이성을 잃을 것 같았다. 갑자기 손에 커피를 들고 있는 여자의 모습에서 정신을 잃고 달려드는 유정이의 모습이 비치자 그 두려움은 점점 더 배가 되어갔다.

“아. 최은비! 빨리 그 커피 버려! 교수님도 버리라잖아!”

“집도 못 가게 하면서 이깟 커피도 못 마시게 해요! 진짜 좆같아서!”

“버리라면 버려! 자꾸 멍청한 소리 하지 말고! 지금 상황이 그런 상황이 아니니까 그런 거 아니야! 빨리!”

“마실 거라고! 커피 한잔도 못 먹게 하면서 사장은 무슨 사장인데!”


그리고 은비라는 그 여자는 결국 커피를 한 모금 입에 가져갔다. 희철이 그녀의 손에 드 커피잔을 입에서 떼어놓자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그의 손을 확 뿌리쳤다.


-짝!-


희철은 순간 욱하는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녀의 뺨을 후려갈겼다.


“제발. 나이를 먹었으며 나잇값 좀 해라! 왜 이렇게 말을...”


-그르르르.-


“뭐야? 왜 이래?”

“떨어져요! 그 사람한테서 떨어져요!”


-키에에에엑!-


커피를 즐기는 이쁜 악마, 현실적인 _1.png


[ 카페인의 반란 ] -> 웹소설 링크

https://www.blice.co.kr/web/detail.kt?novelId=100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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