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의 반란

4-1

by 심색필 SSF

“여자들 먼저 씻고 남자들 씻읍시다.”


샤워기가 달린 화장실. 침구류가 있는 창고. 살아가는데 없는 건 없었지만 불편함이 존재했다. 사선에서 돌아왔음에도 생존에 대한 결핍은 남아있었다.


“교수님. 별 거 없지만 이거 먼저 드세요.”

“감사합니다.”


혜린이라는 여자가 교수님께 미트볼 몇 조각을 가져다주었다. 전기가 들어오고 음식들이 있음에도 희철은 이곳에 꽤 오래 있을 수 있으니 음식과 물을 아끼자며 씻을 수 있는 물도 통제했다.


“사장님. 저희 양이 많이 부족하겠는데요?”

“뭐... 일단은 참자. 이전처럼 먹었다가는 1주일도 채 못 버틸 거다.”


팔 뒤편과 발목, 그리고, 쇄골 등 곳곳에 꽃과 레터링 문신이 가득한 혜린은 나와 또래처럼 보였지만 여자들 중에서는 가장 서열이 높은 듯했다. 아무래도 희철이 가장 신용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여기 이거 드세요.”

“감사합니다.”


하얀 피부에 고양이처럼 올라간 눈꼬리와 작고 아담하지만 한눈에 봐도 육감적인 몸매는 시선을 가만히 두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름이 뭐예요?”

“아... 저는 허영수입니다.”


분명 내게 먼저 물어본 것 같은데 영수 이놈은 미트볼을 먹고 있던 손을 바지에 슥슥 닦으면서까지 인사를 뺏어갔다.


“아... 네.”

“저는 이광민이에요. 얘랑 같은 학교 동기입니다.”

“혹시 옆에 학교 학생이세요?”

“네. 맞아요.”


갑작스럽게 손을 내민 영수가 부담스러웠는지 혜린은 학생이라는 내 말을 이어 대화를 이어나갔다. 생각보다 털털했던 그녀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이야기해 주었다.


“다들 출근 준비하려고 모였는데 갑자기 밖이 난리가 나서 깜짝 놀랐죠. 사장님이 군인 출신이셔서 그래도 빨리 대처했죠.”

“아... 사장님이 군인이셨구나. 그럼 저분도?”

“실장님은 군인은 아니시고 어렸을 때 운동 많이 하셨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선수하시다가 부상으로 그만두셨대요.”


이 바는 토킹바와 불법 시술소를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다. 군인 출신의 사장님과 운동선수 출신의 실장. 그리고, 돈이 궁한 7명의 여자들로 구성된 불법 하이퍼바였다. 그리고 혜린은 바텐더 출신으로 2차는 나가지 않고 바를 담당하는 매니저였다.


“광민아. 너 핸드폰도 아직 안되니?”

“네. 교수님. 제 것도 아직 안 터집니다.”


혜린과 한참을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교수님이 갑자기 말을 걸어오셨다. 혼자 있는 것이 뻘쭘하셨던 건지, 아니면 그냥 외로우셨던 건지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교수님 덕에 혜린도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 혜린이랑 얘기 더 하고 싶은데...’


속으로 교수님을 눈치도 없는 양반이라며 욕을 했지만 몸은 이미 굽신거리며 교수님의 말에 귀 기울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당했으면서도 말 한마디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노예처럼 말이다.


“하아... 시카고 대학이랑 연결이 되어야 우리도 힌트를 얻을 수 있을 텐데.”

“교수님도 설마 같은 생각이신가요?”

“그럼. 너보다야 모르겠지만 너한테 그 과제를 준 사람이 나다.”


교수님은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시카고에서 다뤘던 주제인 악마의 열매 커피. 과거 에티오피아의 악숨왕국에 지어진 오벨리스크 타워에서 발췌한 게즈어로 적힌 내용들에 입각해서 만든 연구주제였다. 지금도 수많은 종족들이 멸족하고 더 많은 종들이 진화로써 새롭게 태어난다. 그리고, 오벨리스크 타워에는 지금은 없는 고대의 악마종을 봉인하는 내용들이 써져 있었다.


“박사님. 이거 괜찮을까요? 고대사람들도 허풍쟁이가 있을 수 있잖아요?”

“한 나라 공주를 순장했는데 그냥 허풍쟁이들의 말이라 칭할 수 있을까?”

“과거 설화라는 게 원래 다 그런 거 아닐까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합리적인 의심이 가는 부분이 너무 많아.”


니콜라스 박사님은 악숨왕국과 오벨리스크타워 커피의 발견에 대해 누구보다 진심이셨다. 커피를 워낙 좋아하시기도 했기에 어느 정도 이해는 갔지만 누구보다 커피가 악마의 열매라는 것에 대한 증명을 원하시는 분이었다.


“커피를 저렇게나 좋아하시는 분이 왜 커피를 악마의 열매라는 이야기에 집착하시는 거지?”

“뭐... 일종의 애증관계 아닐까? 사랑하지만 밉고 이루어질 수 없지만 몸이 먼저 끌리는 그런 느낌?”

“우리 얘기 같네?”

“애증이란 게 원래 달콤하긴 하잖아.”


조안나와 나의 관계는 그런 관계였다. 서로 이뤄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일탈을 즐기는 관계. 돈 꽤나 만지는 조안나의 집에서는 아시안 남자와의 사랑을 허락할 수 없었지만 조안나의 부모님의 감시망을 벗어난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그 일탈을 즐기고는 했다. 매일 같이 출근하는 연구실에서 남몰래 사랑을 속삭였던 것처럼 우리는 가장 익숙하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렇게 선을 넘는 관계를 이어갔다.


악마가 커피를 마시고 있는 모습.png


[ 카페인의 반란 ] -> 웹소설 링크

https://www.blice.co.kr/web/detail.kt?novelId=100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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