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의 반란

3-2

by 심색필 SSF

안에 있던 사람들은 우리가 들어오자마자 수건으로 입을 막고 몸을 제압하며 옷 여기저기를 들춰보았다.


“없어?”

“네. 없어요. 신발에 피 묻은 거 제외하면 없어요.”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고 생각한 순간 덮친 그들의 일격에 그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했다. 계단을 뛰어올라온 탓인지 숨이 터지려는 상황에 입까지 막으니 호흡이 찢어지는 듯했지만 하필 내 위를 올라탄 거한의 남자의 힘은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다행히 남자가 힘을 풀고 나서야 나는 가쁜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허억... 허억...”

“죄송합니다. 혹시나, 상처나 이런 게 있을까 봐.”


혹시나 우리가 좀비일까 검사를 한 듯했다. 힘이 완전히 빠진 영수와 교수님도 여기 있는 사람들의 압박에 저항 한 번 못해보고 쓰러진 채 몸을 수색받고 있었다.


“그만해요! 우리 안 물렸어요!”

“도와주면서 이 정도도 못해? 가만히 있어.”

“안 물렸어요. 우리 안 물렸다고.”


입이 풀린 영수는 위에서 몸을 짓누르는 여자들에게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온몸에 힘이 다 빠져 큰 저항을 하지 못할 뿐이었다.


“없네요. 여기도 상처가 없어요.”


온몸을 수색당하고 나서야 우리는 그들의 손아귀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어떻게 모인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건장한 남자 2명에 7명의 여자들이 옥상에 갇혀있었다. 어떤 연유로 그들이 여기 있는지는 아직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우리는 아픈 몸을 털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온몸을 수색 당할 때조차 큰 반항 없이 그들의 지시를 따르던 교수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뭘...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나를 누르고 있던 거한의 남자는 교수님의 인사에 손을 한, 두 번 휘적이며 괜찮다는 듯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아아... 감사합니다.”


나와 영수도 교수님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거한의 남자는 괜찮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까닥였다. 190이 넘어 보이는 키에 한눈에 봐도 근육으로 뒤덮인 육중한 몸뚱아리. 뭔가 어둠의 세계에서 일할 것 만 같은 그였다.


“괜찮으세요? 저희도 걱정이 돼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거한의 남자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탄탄하고 다부진 몸을 가진 빡빡머리의 남자가 미안하다는 듯 우리에게 와서 악수를 청했다. 티셔츠 안으로 힐끔힐끔 보이는 거대한 문신이 위압적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얼굴은 굉장히 순둥해보이는 남자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도와줘서 감사합니다.”


-콰앙!-


그렇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는 그때 저 멀리서 엄청난 폭발과 함께 굉음이 들려왔다.


“아... 아... 귀...”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파괴력의 굉음에 다들 귀를 틀어막다 고개를 들고 건물 밖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옥상 문 옆에 펼쳐진 머리 위가 뻥 뚫린 루프탑으로 나가자 곳곳에 불길이 치솟은 도시가 펼쳐졌다.


“군대가 벌써 왔나?”

“아니. 전방병력은 아니고 특수부대가 진입한 것 같네요.”


덩치가 큰 남자는 거리의 좀비들을 진압하는 검은 옷의 군인들을 보며 말을 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그렇고 이 세상은 이미 좀비화에 대한 인식이 꽤나 올라와있었다. 만화나 영화만으로만 접하던 좀비였지만 우리 모두 꽤나 오랜 시간 그 모습을 봐왔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너무나 잘 아는 듯했다.


“그럼 이제 금방 끝나는 건가요? 저 집에 강아지가...”

“헛소리하지 마. 아마 저 특수부대원들도 오래가지 못할 거야.”


짧은 돌핀팬츠에 쫙 달라붙은 배꼽티를 입고 있는 여자가 조심스럽게 거한의 남자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건 차가운 대답뿐이었다. 하긴 이렇게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와중에 집에 있는 강아지 얘기를 하는 건 정말 상식 밖의 말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 한마디로 이들의 관계가 어떤지는 대충 예상이 되었다.


“저기 아직 이름도 여쭤보지 못했네요. 저는 이진영 교수입니다.”

“아... 교수님이시구나. 저는 진희철입니다. 루프탑 바 사장이에요. 이쪽은 우리 직원들이고.”


어두운 조명의 실내, 벽 한쪽을 가득 채운 술병들과 모두 다르지만 야시꾸리한 옷들을 입고 있는 여자들과 몸에 문신이 있는 남자까지. 간판을 볼 새도 없었지만 이곳은 뭔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일반적인 바는 아닌 것 같았다.


“어떻게 해... 사장님. 저희 집에 갈 수...”

“은비야. 일다 진정하고 조용히 해. 다들 머리 아프니까”


자세히 보니 여자들의 얼굴 대부분에 눈물이 터진 자국들이 있었다. 공포에 의한 압제였던 건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패닉에 빠진 것 같았다.


“교수님? 교수님이면 이게 어떤 일이 줄 아시죠? 진짜 ‘지금 우리 학교는’ 같은 좀비사태가 일어난 거예요?”

한눈에 봐도 눈물을 흘린 흔적이 강하게 남은 나이 든 여자 한 명이 교수님의 손을 붙잡고 지금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홍시처럼 얼굴이 시뻘게진 채 말을 걸어왔다. 이 상황에도 자기 집 강아지를 봐야 한다며.


“확실한 건 아니지만 우선은 저 좀비 같은 사람들이 큰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소리를 최대한 내지 않아야 해요. 그래야 안전하게 집에 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집니다.”


교수님은 차분하게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것을 우선했다. 패닉은 또 다른 패닉을 몰고 올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는 것 같았다. 진희철이라는 남자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닌 것 같았지만 누군가에게 상냥한 말을 해줄 위인은 아닌 것 같았다. 무표정하지만 힘이 있는 눈빛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좀비들을 소각하는 특수부대원들을 응시할 뿐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철수하네요.”


그의 말대로 특수부대원들은 그렇게 오래도록 도시를 지키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저 멀리 한강이 보이는 루프탑에서 머리 위로 강하게 내리쬐던 햇빛이 점점 고개를 감춰갔다. 조금은 차가운 바람이 휑하며 불기 시작하더니 이내 도시를 뒤덮은 피냄새가 코 끝에 닿았다.


“윽...”

“들어갑시다. 혜린아. 식수 얼마만큼 받아놨냐?”


피비린내 나는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우리는 문을 닫고 바 안으로 들어갔다. 통신이 끊긴 휴대폰에 시계는 어느덧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4시간이었다. 유정이가 입에 거품을 문채 사람들에게 달려들어 목을 뜯는 그 모습을 본 시간은 불과 교수님의 강의가 끝난 네시 인근. 4시간 만에 도시는 완전히 핏빛 지옥에 빠져들어 버렸다.



악마가 원두 커피를 갈고 있는 그림_3.png


[ 카페인의 반란 ] -> 웹소설 링크

https://www.blice.co.kr/web/detail.kt?novelId=100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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