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존재지...
남사친, 여사친. 단어도 웃긴 것 같다. 남자사람 친구. 여자사람 친구. 사실, 나는 어느정도 남사친과 여사친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본질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 살짝 설렜어 (Nonstop)/오마이걸(OH MY GIRL) ]
무인도에 어느 날 떨어진 거야
둘만 남게 됐다면 넌 어떨 것 같아
생각만 해도 무섭다 얼굴을 찌푸렸지만
너에겐 얘기 못 해 절대로
살짝 설렜어 난 Oh nanananana
오마이걸이라는 아이돌 노래 중에 ‘살짝 설렜어’라는 곡의 노래가사이다. 남자와 여자가 태생적으로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아주 함축적으로 표현한 가사가 아닐 수 없다.
평상시에는 절친 같은 사이였지만, ‘무인도에 둘만 남는다면?’이라는 가설 하나로 심장이 뛴다면 아마 둘은 이미 남사친, 여사친이 아닐 것이다. 사실, 외모나 매력 이런 문제가 아니더라도 서로 기댈 곳이 없다면 우리는 DNA속에 깊이 박힌 본능을 따라 평생친구라고 생각했던, 반신욕을 같이 해도 몸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소위 여사친, 남사친에게 사랑을 느끼게 될 것이다.
[ 영화 '스웹트 어웨이' ]
유튜브에서 한 번씩 뜨는 하인과 무인도에 갇힌 부잣집 사모님 콘셉트의 리메이크 영화 ‘스웹트 어웨이’에서도 그렇게 멸시하던 하인이 음식을 구해오며 생존에 도움을 주자 그에게 빠지는 장면들이 연출된다. 그냥 영화적인 요소가 아니냐며 반박을 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우리가 이성에게 빠지는 가장 큰 감정이 결여에 대한 만족에서 나오는 감정이기에 충분히 합리적인 스토리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왜 남사친과 여사친이 존재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이거다.
“여기는 무인도가 아니잖아. 딱히 결여의 순간이 그렇게 많이 오지 않아.”
사랑을 갈구하고, 애정을 필요로 하며 누군가와 사랑한다는 교감과 자극을 충족하기 위해 우리는 연애를 시작한다.
“아... 이 정도면 쿨타임이 찼는데 그냥 아무나 보고 연애할까?”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관심도 없는 이성에게 다가가서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 1%의 남자와 여자라면 이 세상이 뷔페처럼 느껴져서 위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겠지만,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연애를 한다면 마음이 외롭거나 몸이 외로워서 임시방편으로 그 사람을 쓰는 게 아닐까 싶다.
즉, 서로가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는 한 남사친, 여사친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존의 법칙과 번식의 굴레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 지금의 사회에서는 말이다. 사람에 대한 외로움이 있을 뿐, 저 사람과 욕구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면 그때부터 둘의 사이는 찐친으로 많이 발전하는 것 같다.
“아... 또 이거 찐친이 생겼네.”
“혹시 미팅만 나가면 여사친 만드는 타입?”
“너두?”
“나두.”
“야나두.”
정말 가슴이 아프지만 위의 대사는 허구가 아닌 실화다. 물론 내 이야기이다. 글을 쓰다가 눈에 물이 고인 적은 오랜만인 것 같네. 여사친과 남사친의 관계는 개인적으로 지금 사회에서 꽤나 필요한 요소 중 하나인 것 같다.
“야. 이 세상에 남사친, 여사친이 어디 있냐?”
“그럼. 이 새끼야. 너는 여자면 다 애인 아니면 남이냐? 흑백요리사야? 왜 이렇게 각박하게 살아. 그냥 친한데 여자면 여사친인거지.”
“아... 난 그래도 내 여친이 남사친 많다고 하면 좀 짜증 날 것 같아.”
“남사친 있어도 남친 먼저 챙기면 되지. 뭘 그렇게 유난이냐?”
“다 위장 남사친이니까 그렇지.”
뭐...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정말 무(無)매력이 아닌 사람이고서야 여자 쪽에서 먼저 호감의 표시를 보내거나, 은근슬쩍 신호를 보냈을 때 넘어가지 않는 남자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다. 마치, 무인도에 갇힌 느낌이 들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남자들이 모든 여자들에게 다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가는 건 아니다.
음.... 아닐 것이다. 위에서 말한 무(無)매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은 아니고 남자의 입장에서 그 여사친의 매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면 나는 남사친과 여사친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고 본다. 즉, 이성으로 보이지 않고 그냥 성별만 다른 친구라는 기준이 선다면 남사친, 여사친의 개념은 꼭 전설 속에 나오는 동물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야. 바쁘냐?”
“어. 야동 보는 중.”
“아니. 미친놈아. 진짜 바쁘냐고.”
“아니. 왜?”
“술 한잔 하자.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또 까였냐?”
“하아... 술 살 테니까 나와.”
“네. 알겠습니다.”
종종 이런 관계가 유지되는 상황들이 있다. 서로에게 이성적인 관심은 없지만 친구처럼 의지가 되는 느낌. 나이에 상관없이, 성별에 상관없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같은 녀석들. 진짜 부랄친구들과 다른 점은 그냥 염색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덕분에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얻을 때도 있다. 마음에 가는 여자가 생겼을 때 대충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을 알려준다거나 여친 앞에서 절대 말하면 안 되는 그런 금기사항까지 알려주기도 한다. 나이가 먹었음에도 디테일하게 캐치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알려줄 때도 있고 사람을 상대함에 있어서 꽤나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물론, 쌍방으로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바쁨?”
“술 마시자고?”
“얍.”
부담스럽지 않은 관계로 부담스럽지 않게 서로를 대하면서 지내는 관계가 된다면 적어도 이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여사친, 남사친이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무인도에 갇히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그리고 또 조심해야지. 서울에도 무인도가 몇 갠데. 모텔에 호텔에 혼자 사는 1인 가구들까지. 무인도에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사람친구에서 사람 빼야지. 뭐. 알아서 잘들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