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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의미를 가진 단어

GIFT

by 심색필 SSF

근 몇 달 사이 받고 싶은 선물은 공모전 수상인 것 같다. 수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선물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근 몇 달 동안 계속해서 이런저런 공모전을 준비하다 보니까 뭔가 수상하는 것 자체가 선물을 받는 느낌일 것 같다.


“선물 따로 받고 싶은 거 없어?”

“생각 안 해본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 언제부턴가 따로 선물을 받는 것 자체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게 된 것 같다. 그렇게 원하지도 않았고 말이다. 크리스마스 인근에 붙어있는 생일과 항상 생일 전후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친구들과 술 한잔을 하면서, 가족들과 밥 한 끼를 하며 시간을 보낸 적은 있었지만 뭔가 생일에 축하를 받는 것에 어느 순간부터인가 큰 감흥이 사라진 것 같았다.


‘생일날 네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축하를 받냐? 엄마, 아빠한테 통화라도 한 통 넣어라.’


이전에 유튜브를 보다가 얼핏 본 영상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생일에 생일 당사자가 뭘 했다고 선물을 받느냐고.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축하파티와 기념선물과 같은 것에는 고생해서 무언가를 이룩한 사람들이 그 선물을 받아가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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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역을 먹는 고래의 모습 ]


고려 시대 사람들이 고래가 출산 후 미역을 먹으며 회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역이 산후조리에 좋다고 여겨 미역국을 먹게 된 것이 지금까지 내려와 우리가 그 풍습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사실, 생일상이라는 것이 원래는 산모들을 위한 밥상인데 언제부턴가 그 밥상이 아이를 위한 것으로 치환된 것이다.


“그래도 선물 받으면 좋잖아. 뭔가 좀 챙겨주는 느낌도 나고.”


확실히 생일에 선물을 주는 게 이제는 정말 조그만 정성을 표시하는 부분이 된 것 같다.


‘배달의 민족 쿠폰이 도착했습니다.’

‘BBQ 황금올리브 교환권이 도착했습니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교환권이 도착했습니다.’


최근에는 이 선물이라는 개념이 대부분 기프티콘으로 대체가 된 느낌이다. 생일이라고 파티를 하기도 애매하고 다들 각자의 삶이 친구의 생일보다 중요해졌기에 정성으로 누군가의 생일을 챙기기가 힘든 것 같다. 12시가 지나면 카톡상단에 뜨는 오늘의 생일자를 보고 선물하기를 들어가 쿠폰을 선물하는 게 최근의 선물하기 문화가 된 것 같다.


“덕분에 당분간은 치킨 걱정은 없겠네.”


사실, 나도 생일선물로 가장 애호하는 쿠폰이 치킨 쿠폰이다. 요즘 닭값이 너무 올라서 치킨 먹기가 두려워질 때가 있는데 치킨 쿠폰을 받게 되면 밥 하기 귀찮거나, 나가서 먹기 귀찮을 때 요긴하게 쓰게 되는 것 같다.

GIFT. 영어로 선물이라는 이 단어의 다른 이름은 재능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재능의 영역을 굉장히 맹신하는 편이다. 운동을 하거나 음악을 할 때뿐 아니라 공부를 할 때도 특히나 그런 걸 많이 느꼈다.


“너 턱걸이 처음 아니야?”

“어.”

“그런데 어떻게 13개를 하냐?”

“그냥 되던데?”


어릴 적 학교에 가면 전교에 꼭 한 명씩 좋은 의미에 미친놈들이 있었다. 운동을 배우지 않고도, 전혀 다른 운동을 하지 않고도 온몸에 근육이 덕지덕지 붙어 남들이 피를 토하면서 갈고닦은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놈들.


“너 따로 노래 강습받았어?”

“노래를 강습도 받아?”


뭘 배우지 않고도 그냥 타고나게 노래를 잘하는 놈들. 그냥 존재 자체가 사기인 녀석들이 하나씩 있었다.


“쟤는 매일 노는데 어떻게 매일 1등이냐?”“못하면 노력을 해야지. 남하고 비교하지 말고. 빨리 가서 숙제나 해.”


밤새 코피 흘리며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는 녀석을 손에 연필도 잡지 않은 채 눈으로 시험을 보며 압도하는 놈들도 있었다. 물론 공부라는 영역에서는 그런 돌연변이 때문에 꽤나 고달픈 학창 시절을 보내야만 했지만 말이다. 지금에서야 그 친구들이 뭘 하고 사는지 잘 모르지만 살다 보니까 일반적으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조금 더 편하게 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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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도 금메달리스트 '김재범' ]


“타고나야 하는 건 재능이 아니라 노력이다.”


한때, 유도 올림픽 메달리스트 김재범 선수가 했던 말이다.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성공을 한다. 한때 심금을 울리는 말이었지만 현실을 살다 보니 재능이 있는 놈들이 재능이 없는 놈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하는 걸 느끼게 되었다. 백번을 연습해야 한 단계를 나아갈 수 있는 친구에 비해 한, 두 번만 연습을 해도 다음 단계를 넘어갈 수 있는 친구들은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 대해서 쉽게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심지어 옆에서 재능 있는 친구가 성장하는 과정을 보는 것 마저 재밌었다.


‘다음에는 어떤 짓을 할까?’ 궁금하기도 하고 괜히 나도 모르게 그 친구들을 응원하고 있던 적이 있는 것 같다.


“원래 애매한 재능이 사람 미치게 해.”


무언가 비관적이긴 하지만 최근 가장 많이 공감하는 말이 이 말이 것 같다. 애매한 재능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 100등 중에 10등 안에만 들어도 재능 있다는 소리를 듣겠지만 그 10등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답답할 것 같았다. 어느 분야에서나 압도적인 재능을 마주할 때가 있고 그런 천재들을 보면서 나름 잘났다고 생각하는 수재들은 항상 좌절을 맛보는 것 같다. 천재인 줄 알았던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인지한 순간이 얼마나 비참하고 힘들었을까 싶다.


우물 안에서 개구리들이 우물 밖을 나가려고 점프를 하고 있다. 한 개구리가 너무 쉽게 점프해서 우물을 나가자 다른 개구리들이 부러워하고 있다..jpg


이 세상은 대부분의 둔재들의 노력에 의해서 굴러가지만 사실 천재로써 살아가고 싶은 것이 모두의 욕망이 아닌가 싶다. 둔재라도 노력하면 언젠가 천재를 꺾을 수 있다고 믿지만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조금은 알기에 그 믿음이 흔들릴 때가 많은 것 같다. 자기 자신을 끝까지 믿을 수 있는 정신력을 가지는 것도 어떻게 보면 하늘이 내려준 선물 일건대 아직 나는 그 선물을 받지는 못한 것 같다.


이것도 둔재가 느끼는 아픔이려나... 그래서 그냥 최근에는 공모전에 한 번이라도 당선되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는 하품하면서 대충 뛰어오르면 넘을 수 있는 장벽이라도 나에게는 천우신조가 겹쳐야지 넘을 수 있는 장벽이라 한 번이라도 당선이 되면 꽤나 여러 선물을 받을 것 같다.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지금까지 들인 시간에 대한 가장 큰 보답이자 선물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뭐... 원래 선물은 받을 때까지 떼를 써야지 받을 수 있는 건데... 땡깡은 계속 부려봐야지. 그래도 진상이라는 재능은 수재급인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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