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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은...

뭐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지.

by 심색필 SSF

3월은 정말 정신없이 지나간 달이었다. 어렸을 때는 ‘언제 나이를 먹고 언제 어른이 되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면 요즘은 ‘진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 같다.


‘프로젝트 마감. D-9.’

‘업체 미팅.’

‘청첩장 모임.’

‘결혼식.’


캘리더에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정이 아닌 세상에 나를 맞추는 일정들이 가득 차있다.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 듯. 나를 위해 어머니, 아버지가 그렇게 살았듯.


“이번에 계약금 지급시기가 조금 늦어질 것 같아.”
“이번에 산불 때문에 업로드가 늦어져서 잔금이 늦어진다네.”
“요즘 회사 사정이 안 좋아서...”


근 몇 년 동안 일을 하면서 축축 처지는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들었다. 짜증이 나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었다.


“괜찮습니다. 뭐 어쩔 수 있나요.”


속은 부글부글 끓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을들이 사는 세상이 다 그런 거니까.


“혹시 언제 입금 가능하실까요?”

“죄송합니다. 저희도 아직 대금수령을 못 받아서요.”

“네. 그건 알지만 저희도 급해서요.”
“하아... 최대한 빨리 해결해 볼게요.”

나의 고통은 당연했지만 나의 고통으로 누군가가 힘든 것은 당연하지 않았다. 그들이 늦는 건 괜찮았지만 내가 늦는 건 안 되는 세상 같았다. 최근에 유튜브를 보다가 그런 영상을 봤다.


“맞으면서 자랐지만 때리면 안 된다고 하네. 남들만큼만 하라고 하면서 남들보다 뒤처지만 안된다고 하네...”

90년 대생들이 지금 느끼는 괴리를 정말 가사로 잘 표현한 노래인 것 같았다. 세상에 핑계를 미루고 싶지 않았고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변명하고 싶지 않지만 분명 힘든 순간들이 올 때마다 점점 더 작아지고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루하루가 빡센 와중에도 또 새로운 즐거움은 폭우 속에서 비를 피하려 지붕 아래로 찾아온 제비처럼 내게 다가왔다.


양들이 웃으면서 서로 악수를 하고 있다..jpg


“어? 우리 동갑이네요.”

“그러게요. 뭔가 좀 반갑네.”

“저도 같은 나인데...”

“그럼 우리 다 같이 말 놓을까요?”


운동을 하다가 같은 나이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새로운 모임과 새로운 환경에서 같은 나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그 자체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주변에 남겨진 사람들 이상의 관계를 구축하는데 힘을 빼게 되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 애써서 무언가를 더 만들기 힘들고, 공을 들여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가기도,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것도 이제 조금 지치는 나이가 된 것 같다.


“야. 우리 너무 자주 보는 거 아니야? 고등학교 친구 만나는 것 같아.”

“그러니까. 자제 좀 해야겠는데?”


그래서인가? 우연히 만난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된다는 게 꽤 뜻깊었던 것 같다.


“아직도 청춘이네. 무슨 대학생 때 얘기 듣는 것 같다.”

“그러게. 또 인연이 생기기는 하더라.”


재택근무를 하며 밖을 많이 나가지도 않지만 행동반경이 출장, 운동, 집 이렇게만 구성되어 있던 나에게는 이번 사건이 꽤나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사람을 만날 기회가 너무 많다 보면 인간관계를 덜어내는데만 급급한데, 오히려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않다 보니 이런 관계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짠.-


뭐 주정뱅이의 일상이 그렇듯이 여느 때처럼 우리는 술잔을 가득 채우는 시간을 가졌다. 유유상종, 근묵자흑. 왜 과거의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게 된 건지 알 것 같았다.


까마귀들이 신이 난 표정으로 술집에서 고기를 구우며 소주를 한 잔 기울이고 있다..jpg


“사람은 비슷한 사람에게서 무언의 인력을 느낀다.”


이전에 친한 선배가 술자리에서 했던 얘기다. 주변에 사람이 얼마 없지만 자신은 그 사람들만 챙긴다고 했던 선배였다. 아직도 자주 만나고 정말 친한 선배 중 한 명이라서 그런지 그 말이 생각보다 너무 가슴에 와닿았다. 무언의 인력을 느낀다.


“너희는 결혼 생각 있어?”


사실 친구라는 관계는 다 비슷한 것 같다. 서로 가지고 있는 추억이 다를 뿐 대부분의 이야기는 비슷한 주제로 이어진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다 거기서 거기인 듯이. 한 명씩 정말 재미있는 또라이들이 나오지만 그들마저도 인생의 굴곡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낀다. 머리가 터지기 직전에 참 신기하게도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의 시간을 지내다 보니 우연치 않게도 오래된 친구들에게도 연락이 왔다.


“잘 지내냐? 한 번 봐야지.”
“그래. 일단 주둥이로는 한 열 번은 본 것 같은데. 아예 날을 잡자.”


아무도 없는 방에서 타탁거리는 노트북 타자기 소리와 고요한 집소리를 들으며 하염없이 작업을 하다 보면 사람의 목소리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다양한 느낌의 글과 각기 다른 캐릭터에 빠져서 매번 다른 목소리를 머릿속에서 그려보고 글로 표현해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 머릿속에 있는 등장인물들은 결국 내 목소리인 것 같다.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혼자 아무리 소리를 친다고 해도 돌아오는 건 메아리일 뿐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니까. 인간은 결국 인간을 만나야 되는 것 같다. 좋은 사람들만 만나는 시간도 아깝다고는 하지만 결국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다양하게 만나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의 경험과 추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니까 말이다.


“야. 근데 너 말 진짜 많다.”


이상하게 술만 마시면 평소보다 더 말이 많아진다. 주변에 ENFP 친구들이 많은데 그 친구들을 만나면 분명 지하 1층에 있는 술집을 들어가도 자리가 끝나고 나면 건물 꼭대기 루프탑에서 술을 먹고 있는 것 같다. 끝없이 올라가는 텐션에 서로가 서로에게 진이 빠지다가 술 한잔에 다시 재충전을 하고 달이 지고 해가 뜰 때까지 말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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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능 '패밀리가 떴다.' ]


“내가 이 키조개를 건진 얘기만 해도 한 3박 4일은 떠들 수 있는데...”


옛날에 ‘패밀리가 떴다.’라는 예능에서 유재석님이 한 말이다. 그 짧은 순간의 에피소드를 3박 4일 동안 풀어낼 수 있다니 엄청난 재능이데... 그런데, 주변에 그런 재능이 특출 난 인간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어쩌면 평상시 일할 때 말없이 그냥 노트북을 보면서 조용히 타자기를 두들기고 있는 게 쪽쪽 빨린 기를 다시 충전하려고 그러는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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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3월이 꽤나 빡셌는데... 4월은 그냥 즐겁기만 했으면... 그런데 매일, 매주, 매달, 매년 빡센 것 같네. 도대체 언제쯤 걱정 없이 살려나... 걱정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대가리가 온통 꽃밭이었으면 좋겠다.


“걱정 마. 이미 대가리 꽃밭이야.”

“크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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