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만연 할 텐데...
원래는 봄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았다. 봄은 뭔가 금방이라도 무더운 여름이 찾아올 것 같다는 공포감이 드는 계절이다. 그런데, 최근에 봄이 조금 다르게 보이는 것 같다.
“하아... 난 가을은 안 타는데 봄만 되면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하지?”
“...”
“대답 안 하냐?”“잘못 들었습니다.”
군대에서 함께 근무를 서고 있던 선임이 내게 한 질문이었다. 사실 질문인지도 몰랐는데 난데없이 뭐라고 해서 당황한 기억이 있다. 우리 부대는 봄이 정말 이뻤다. 근무했던 부대 쪽으로는 오줌도 안 싼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도 정말 이뻤다. 인위적으로 조경해 놓은 벚꽃이 아니라 산등성이 중간중간에 자리 잡은 벚꽃들이 바람에 날려 꽃잎을 흩날리는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 ]
“완벽한 벚꽃이다.”
원래 일본 영화를 그렇게 선호하지는 않았는데 톰크루즈가 나온 ‘라스트 사무라이’는 꽤나 인상 깊게 봤다. 개화기에 반대하는 사무라이들이 기관포대와 싸우다 전멸하며 이방인인 네이선의 힘을 빌려 목숨을 끊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지막에 벚꽃이 흐드러지는 장면을 굉장히 아름답게 보여주었다. 차후에 영화가 사무라이를 미화시켰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영화 자체는 정말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
“일본의 국화인 벚꽃의 원류가 제주도 왕벚나무에서 시작되었다는 학계의 이야기가...”
한때 뉴스에서 벚꽃의 원류가 제주도 왕벚나무에서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일본이 국화로 지정할 만큼 벚꽃이 이쁜 것은 사실이다. 매년 점점 더 짧아지기에 벚꽃의 희소성이 조금 더 큰 게 아닌가 싶다.
“석촌호수 또 사람 터지네. 아...”
이전에 잠실부근에 살 때 정말 봄만 되면 항상 석촌호수에는 사람들이 미어터졌다. 안 그래도 사람이 많은 지역인데 봄만 되면 맛집 오픈런 하는 것 마냥 미치 듯한 숫자의 사람들이 그 좁은 호수를 찾아왔다. 이쁘다고는 하는데 그렇게 까지 볼 정도인가 싶었다.
“뭐야? 진짜 여기가 훨씬 이쁘네.”
사실 잠실 근방에 사는 친구들은 꽤나 아는 벚꽃 명소가 있다. 아산 병원 옆에 1킬로미터 이상 쭉 늘어진 뚝방길. 양쪽으로 쭉 늘어서 벚꽃이 정말 길게 뻗어져 있었다. 노란색 개나리와 연분홍 벚꽃이 만개하는 날이면 병원에 있는 사람들이나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지나가다 참지 못하고 하늘을 향해 핸드폰을 들이밀고는 했는데 아직도 나는 베스트 샷을 건지지 못했다. 사진으로 담기에는 그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웠기에 항상 그 순간들을 눈으로 더 많이 담으려고 했다.
[ 만화 '블리치' ]
“천본앵.”
좀 덕스럽기는 하지만 ‘블리치’라는 만화에서 벚꽃으로 공격을 하는 캐릭터가 나온다. 벚꽃이 여기저기 휘날리며 상대를 압도하는 기술을 쓰는데 밤바람이 강하게 부는 봄날에 내가 말한 뚝방길을 지나면 한 번씩 만화에서 봤던 기술들을 실제로 볼 수가 있었다. 물론, 만화처럼 피를 흘리는 일은 없지만 말이다.
‘냉이 1500원.’
‘달래 2500원.’
봄이 왔음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곳 중 하나는 바로 마트다. 겨울까지 볼 수 없었던 향긋한 봄나물들이 저가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라면에 넣어도, 된장찌개에 넣어도, 오일파스타에 넣어도 향이 몇 배는 증폭하는 봄나물은 모든 음식에 최소 3천 원 이상의 값어치를 올려주는 향을 내는 것 같다. 사실, 이 봄나물 냄새가 풍기면 겨울은 거의 끝났다고 봐야 한다.
“야... 이번에 두릅 사이즈가 진짜 좋네.”
우리 집 시골은 강원도 영월이다. 한 번씩 봄시즌에 시골에 내려가면 반찬 9가지가 다 나물일 때가 있다. 시기가 좋으면 시장에서 꽤나 빵이 좋은 두릅이 식탁에 올라올 때가 있다. 이외에도 돌미나리, 민들레무침, 달래무침, 씀바귀, 고들빼기 등 온갖 봄나물들이 식탁에 올라온다.
“사실 해외에서는 마늘은 향이 강한 향신료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밤잠을 설치며 봤던 한 유튜브 채널에서 해외에서는 향을 내는 데 더 많이 쓰이는 마늘을 대한민국 사람들은 고기에 넣어먹을 뿐 아니라 온갖 음식에 넣어먹는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고수를 먹지 않는 사람보다 깻잎을 먹지 않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이야기에 우리 민족은 어쩌면 허브와 향신료에 미친 민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봄은 아마 향신료가 극에 달하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곤드레 비빔밥 하나요.”
스폿이라고 할 거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봄이 되면 강원도 산자락 인근에 있는 곤드레 밥 집을 가는 걸 추천한다. 대부분 솥밥으로 나오고 평상시에 먹지 않았던 이런저런 봄나물들을 마구 내어 주시는데 봄나들이 갔을 때 식후경 하기에는 그만한 메뉴가 없다고 생각한다. 닭백숙보다 도토리묵이 더 당기는 나이가 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좀처럼 산불이 잡히지 않습니다. 이번 산불은 역대 산불 중 최악의 산불로 기록될 전망입니다.”
최근에 벌어진 산불 때문에 봄이 되고서 갈 수 있는 명소들이 많이 소실되고 있다. 명소들 뿐 아니라 민가에도 직접적으로 피해가 확산되고 있는데 건조할 때 산간지역에서 불조심 좀 했으면 좋겠다. 불이 좀 빨리 꺼져야 할 텐데...
범인들 꼭 잡아서 정말 제대로 처벌 좀 했으면... 또 이상한 핑계 대면서 솜방망이 처벌하지 말고...
몇 명이 죽고 몇 명이 피눈물을 흘리는 거냐... 도대체...